한국 축구가 '히딩크 소용돌이'에 빠졌다.
거스 히딩크(71)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14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한국 축구를 위해, 한국 국민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어떤 형태로든 어떤 일이든 기여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 발언만 보면 한국 대표팀의 사령탑을 맡고 싶다는 의지를 간접적으로 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날 히딩크 전 감독의 기자회견은 모호함으로 가득했다. 그는 딱 부러지게 '한국 감독을 맡아보겠다'고 하지도 않았고, '맡을 생각이 없다'고 하지도 않았다.
히딩크는 "나는 체면이나 명성이 상하는 것은 상관 안 한다. (월드컵에서) 실패할 수 있으니 큰 위험이라고 생각하는 게 나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대한축구협회가 감독직을 제안하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는 "러시아월드컵 때 미국 폭스 TV로부터 해설자 제안을 받았고 약속했다. 지금 상황에서 감독은 어려울 것이고, 자문을 하는 상황을 염두에 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로서는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단 그렇게 말해두겠다"고 여운을 남겼다. 그는 또 "감독으로서 2002년 월드컵의 영광을 다시 재현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며 "(신태용 감독을 선임한) 축구협회의 결정을 존중한다"고도 했다.
'히딩크 소동'은 신태용호가 러시아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한 6일 '히딩크 측근발' 보도가 나오며 시작됐다. '한국 국민들이 원한다면 히딩크가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을 용의가 있다' '한국행에 몸값은 상관없다'는 뉴스가 이어졌다. 그러자 여론은 '신태용 용퇴론'으로 호응했고, 빨리 히딩크 전 감독을 선임하지 않는 협회를 '적폐'로 규정했다. 2500여 명이 참여한 청와대 청원 운동까지 벌어졌다.
일각에선 러시아월드컵행을 확정했지만 팬들의 성원에 부응하는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한 한국 축구가 '히딩크 대망론'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히딩크 전 감독은 "한국 선수들이 지금까지 해외에서 펼친 수준에 비해 (최근 전력은) 부족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협회는 내부적으로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입장이다. 한국 대표팀의 경기력에 대한 비판과는 별도로 위기 상황에서 투입돼 월드컵 본선행을 이룬 신 감독을 지금 흔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히딩크 전 감독은 "(한국에 있는 히딩크) 재단 사람들을 통해서 지난여름 협회 내부 인사에게 협회가 원한다면 한국 축구를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협회는 "전·현직 기술위원장을 포함해 누구도 히딩크 전 감독 측 입장을 전달받지 않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아무리 히딩크라고 하더라도 협회가 먼저 요청하지 않았는데 '감독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하는 건 축구의 ABC에도 맞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협회는 이날 "히딩크 감독의 한국 축구에 대한 관심과 사랑에 감사드린다. 신 감독 등과 협의해 조언을 구할 사항이 있으면 언제든지 요청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사실상 히딩크로의 감독 교체는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를 담은 반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