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 김주원이 처음으로 연극에 도전한다. 매번 마지막인 것처럼 무대에 올랐다는 그녀. 충실한 순간순간을 모아 하루를 만들고 그 시간을 쌓아 정성스러운 삶을 빚어내는 김주원의 오늘을 만나봤다.

데뷔 20주년에 처음으로 연극에 도전하게 됐어요. 어떤 작품인가요?
영화 <라빠르망>을 원작으로 하는 연극 <라빠르트망>이에요. 고선웅 연출님이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원작자인 질 미무니 감독을 수소문해서 두 번 정도 만나셨대요. 화면과 무대는 아주 다른 결을 갖고 있기도 하고, 또 작품에서 몸의 움직임을 많이 쓰시는 연출가셨으니 어떠한 언어로 새로운 작품을 탄생시킬지 기대하고 있어요.


연극 무대에 오르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고선웅 연출님과 무용가 최승희에 대한 작품을 만들자고 이야기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을 하셨어요. "김주원, 최승희 하기 전에 연극 하나 하면 어때?" 하시길래 "무대에서 제가 말을 하면 웃기지 않을까요?" 그랬죠. 그랬더니 "잘할 수 있어" 하고 끊으시더라고요.(웃음) 처음부터 연극이라는 게 목표에 있었던 건 전혀 아니에요. 원작 영화는 원래 좋아하던 작품이기도 했고요. 자연스럽게 하게 됐죠.


원작 영화를 보면서는 어떤 느낌을 받았나요?
20년 된 영화인데 꽤 오래전에, 그것도 여러 번을 봤어요. 프랑스 영화가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죠. 사랑 이야기인데도 사랑 이야기 같지 않은 느낌이 있고, 미묘하고 섬세하면서 미스터리한 느낌도 있고요. 출연하는 배우들도 매력적인 데다 순간순간 보이는 컷들과 파리의 거리들이 지금도 떠오를 만큼 영상미가 있는 작품이에요. 지금 다시 봐도 굉장히 세련된 영화죠.


모니카 벨루치가 연기한 주인공 리자 역을 맡게 됐어요. 세기의 미녀인데 부담이 되진 않았나요?
그 질문을 정말 많이 받고 있어요.(웃음) 모니카 벨루치는 전 세계 역사상 유일무이한 캐릭터잖아요. 그녀의 이름이 대명사로 느껴지니까요. 그런데 연출님의 표현을 빌려 이야기하면 무대라는 공간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모니카 벨루치의 경우 얼굴과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것들이 있었는데 공연이 올려지는 LG아트센터는 1천 석 정도 되는 곳이에요. 표정보다는 몸짓과 몸짓이 주는 느낌으로 무대를 장악하는 면이 크거든요. 연출님은 아마 발레리나가 그런 매력을 발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저는 30년째 춤을 추면서 어떻게 하면 무대 위에서 관객들에게 아름다운 감동을 심어줄 수 있을지 평생을 생각해왔거든요. 저에게는 몸짓으로 표현하는 것이 너무나 익숙하니까, 공연을 보시면서 모니카 벨루치의 화면 속에서의 느낌을 몸짓으로도 느껴보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뮤지컬을 두 편 했지만 대사가 거의 없었던 걸로 알아요. 이번 작품은 연극이고 주인공이니 대사량이 많을 텐데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나요?
낯설죠. 몸짓으로는 제가 여러 언어를 표현할 수 있거든요. 감정에 따라 동작을 다 다르게 할 수도 있고 같은 동작이라도 작품에 따라 또 다르게 표현할 수 있어요. 아주 자유롭죠. 제 생각에는 언어에도 그런 스킬들이 있을 것 같아요. 감정, 장면, 시대에 따라 말을 하는 방법이 엄청나게 많을 거예요. 풍부한 표현을 하기 위해 많이 고민하고 노력하려고 해요. 좋은 배우님들이 많이 나오시니까 많이 배워야죠.

남자 주인공 막스 역은 오지호 씨가 맡았어요. 마찬가지로 연극에 처음 도전하는 거라고 들었는데 서로 많이 의지할 수 있겠어요.
대본 리딩을 한 번 했는데 워낙 오랫동안 연기를 하신 분이잖아요. 정말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잘하시더라고요. 장르가 다를 뿐 갖고 있는 진심을 표현하는 것은 비슷할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많이 의지를 해야 할 것 같아요.(웃음)


대사 연습은 어떤 식으로 하고 있나요?
이제 일요일부터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가는데요. 지금은 혼자 읽어보는 정도예요. 왜냐하면 너무 제 생각이나 선입견, 색깔이 들어가지 않았으면 좋겠거든요. 연출가가 의도하는 대로 연기하고 싶고 연출가의 의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춤을 출 때에도 안무가가 가장 원하는 몸짓과 표현이 작품에 녹아들어 가는 데 초점을 맞춰왔거든요. 연극도 공연예술이고 종합예술이니까 춤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제가 자부할 수 있는 건 누구보다 열심히 할 수 있는 재능은 갖고 있다는 거예요. 저는 노력할 수 있는 것도 재능이고, 그 재능을 가진 사람이 천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무대 위에서의 몸짓이나 표현, 그리고 노력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무대에 대해서 시간이 흐를수록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곳이라고도 했는데 어떤 의미에서 그러한가요?
겸손함과 자신감은 다른 이야기인 것 같아요. 무대에서 진짜로 춤을 춘다, 춤추는 게 행복하다고 느낀 건 5~6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어요.


그럼 그전에는요?
물론 살아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춤을 출 때였죠. 아주 어릴 때 스스로 선택한 제 길이었고요. 하지만 춤 때문에 괴로울 때도 많았고 정말 죽고 싶을 만큼 힘들 때도 많았어요. 콤플렉스 덩어리로 살았던 순간도 많고요. 발레와 애증의 관계였다고 할까요. 자신의 부족함을 평생 느끼면서 사는 거니까요. 점점 더 라인이 나아져야 하고, 더 아름다워져야 하고, 더 설득력 있어져야 하잖아요. 누군가와의 경쟁이 아니라 지극히 자신과의 싸움이더라고요. 그런데 경험이 쌓이고 시간이 흐르다 보니 어느 순간 춤을 추는 덕분에 제가 살 수 있다는 것, 춤 때문에 위로를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함께 무대에 서는 무용수들, 스태프분들,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물론이고 주변의 모든 분,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저 자신이 별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는 매번 마지막인 것처럼 춤을 추게 됐죠.

필연적으로 부상이 따를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해요.
사실 4월에도 디스크가 터져서 춤을 관둬야 하는 상황이 왔었어요. 3주 동안 꼼짝도 못 하고 누운 자리에서 화장실까지 해결해야 했죠.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전문의들이 이제 과도하게 움직이는 건 할 수 없다고 무대에서 춤추는 건 포기하라고 했어요. 납득할 수가 없더라고요. 저랑 15년 넘게 함께하고 있는 물리치료사 선생님과 정말 말 그대로 '미친 재활'에 들어갔어요. 그때 예정돼 있던 모든 공연을 취소했어요. 그런데 재활을 하는 목표가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뮤지컬 <컨택트> 하나만 남겨뒀죠. 공연 2주 전까지도 회사에서 계약을 안 했어요. 제가 무대에 못 오르면 어떻게 할지 대비하고 있었고요. 사실 재활치료가 정말 힘들거든요. 그래서 포기하는 사람이 많은데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열심히 했어요. 재활하고 공연 연습하고 운동하고 리허설하고. 의사들도 기적이래요. 공연도 잘 마치고 끝난 이후에는 오히려 상태가 호전됐거든요. 다시 춤출 수 있고 토슈즈도 신을 수 있어요.


평소 몸 관리도 중요하겠어요.
매일 하루 2시간 몸 풀고, 2시간 운동하고, 2시간 남산을 걸어요. 사실 지금까지 사형 선고 같은 걸 세 번이나 받아봤어요. 춤을 못 춘다고 하는 게 저에게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거든요. 그런데 아무리 큰 부상을 입어도 '한번 해보자' 그렇게 돼요. 그래서 의사선생님들이 발레 하는 사람들을 싫어하죠. 저 걸어 다니는 기상청이에요. 일기예보 200% 맞아요.(웃음)


새로운 장르에 주저함 없이 도전도 잘 하고, 겁도 없는 것 같아요.
저는 큰 목표를 세우거나 무언가 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뭐랄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살아온 것 같아요. 저에게는 오늘 하루가,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중요해요. 순간이 쌓여 하루가 되고 하루가 쌓여 일주일이 되고, 그렇게 살다 보니 그때그때 집중하고 싶은 무언가가 나타나더라고요. 좋아하는 선배님이 그러셨어요. "작품도 사람도 운명처럼 다가오더라." 당시에 관심이 가고 욕심이 생기는 것에 최선을 다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인가요. 결과보다는 과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요.
충실한 순간순간이 정성스럽게 하나하나 쌓이면 결과도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성공 여부를 떠나서 결과적으로 제가 좋았다면, 겉으로 보기에 성공하지 못했다 해도 좋은 경험이 되는 거니까요.


부모님이 어떤 분들이신지 궁금해지네요.
저는 절대 그런 어른이 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분들이에요. 저희 어머니는 원래 선생님이셨는데 결혼하고 사남매를 두면서 주부로 사셨어요. 한 번도 어머니가 누군가에 대해 안 좋은 얘기를 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죠.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언제나 두 분이 테이블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계셨어요. 지금도 부모님 댁에 가서 보면 아침에도 서너 시간씩 대화를 나누세요. 아버지 같은 경우는 사업을 하셨는데 너무나 감사하게도 울타리를 잘 쳐주셔서 뭐든 경험해볼 수 있게 해주셨어요. 한 번도 공부해라, 뭐 해라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죠. 러시아에 오디션을 보러 간 것도 제 선택이었고 학교에 자퇴서를 낸 것도 제 선택이었어요. 부모님이 계시고 형제자매들이 있어서, 뭐든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튼튼한 뿌리를 만들고 중심을 세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제 춤만 고민하는 이기적인 예술가로 살고 있는데 두 분은 정말 따뜻하세요. 지금도 차를 타고 가다가 할머니가 걸어가고 계시면 내리세요. 어릴 때부터 항상 영아원에 봉사하러 다니셔서 거기에 따라다니기도 했고요. 저도 그렇게 되려고 열심히 살고 있어요.


조카들을 정말 예뻐하던데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드세요?
정말 너무 예뻐서 미쳐버릴 것 같아요.(웃음) 제 생명보다 소중한 아이들이에요. 조카들을 위해서라면 춤도 포기할 수 있어요.


정말요?
네. 저희 부모님이 자녀를 위해 그렇게 사시는 걸 봤으니까요. 딸들은 엄마를 닮잖아요. 저희 언니도 똑같이 살더라고요. 저도 조카들에게 희생적이게 되고요. 자기 아이에게는 더하다고 하던데 언젠가는 제 아이를 갖고 행복하게 살 수도 있겠죠?(웃음) 그러려면 좀 외롭고 그래야 하는데 외롭지 않다는 게 문제예요. 우선 조카가 넷이어서 괜찮고, 일이 없을 때는 집에만 있는데 책 읽고 음악 듣고 영화 보는 게 너무 재밌어요. 안무가인 제 가장 친한 친구가 있는데 저한테 아라베스크 할 때 빼고는 쓸모가 없대요.(웃음) 저희 집에 놀러 와서 "내가 왜 금요일에 너랑 앉아서 귤차를 마시고 있어야 하니" "내가 왜 토요일 저녁에 너랑 앉아서 빵을 먹고 있어야 하니" 그래요.(웃음) 사실 단조로워 보일 수 있지만 이 생활이 너무 좋아요.


항상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한 사람이니까 먼 미래의 목표 같은 건 세워놓지 않았겠죠?
제가 좀 단순한가 봐요. 내년까지 작품이 정해져 있긴 한데 지금은 <라빠르트망>이랑 곧 중국에서 있을 공연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허리.(웃음) 열심히 운동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