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아침 부산은 예기치 않은 '물 폭탄'에 마비됐다. 오전 6시 50분쯤 호우 경보가 내려진 이후 출근 시간까지 비가 집중되면서 도로와 주택·상가 등이 침수되거나 자동차들이 물에 잠기고, 집 등이 무너졌다. 시민들의 출근 시간은 평소보다 1~2시간씩 더 걸렸다.
부산교육청은 집중호우에 따른 등교 중 사고 등을 우려해 오전 7시 45분쯤 시내 모든 유치원과 초·중·고교 등 1047개 학교에 임시 휴교령을 내렸다.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가 도로가 막혀 돌아온 학부모, 학교에 도착하고 나서 휴교 사실을 알고 귀가한 학생도 많았다. 부산 김해공항 국제선 청사 1층에선 폭우로 빗물이 고이면서 천장 일부가 내려앉아 로비가 물바다를 이뤘다. 폭우와 강풍으로 김해공항의 항공편 10여 편이 결항되기도 했다.
◇침수, 도로 고립… 악몽의 출근길
부산 영도구에서는 한때 시간당 116㎜ 물폭탄이 쏟아져 동삼동 한 아파트 1층 안방까지 물이 차오르는 등 저지대 곳곳에서 침수 사태가 빚어졌다. 오전 7시 27분쯤에는 연제구 거제동 한 굴다리 아래 도로가 물에 잠겨 차량이 고립, 6명이 구조됐다. 오전 8시쯤 부산 부산진구 범천동 가야 굴다리 삼거리 주변 도로에 50~100㎝가량 물이 고이면서 지나던 승용차 등이 잠겨 2~3시간 넘게 교통이 통제됐다. 오전 8시 28분쯤엔 금정구의 금정산성을 오가는 셔틀버스와 승용차가 접촉사고를 일으며 25명이 경상을 입었다.
[기상청 강수 예보 적중률 절반에도 못 미쳐…감사결과 보니]
해운대 우동에 사는 강모(52)씨는 "집에서 연제구 연산동 사무실까지 평소 20~30분이면 갈 수 있었는데 오늘은 교통 통제, 차량 정체로 2시간 20분쯤 걸렸다"고 말했다. 부산 남구에서 버스를 타고 가던 한 승객은 침수된 도로 위를 달리는 시내버스 안으로 물이 넘쳐 들어온 장면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물이 차오른 택시, 산복도로 등의 비탈진 계단 위로 빗물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장면 등도 인터넷에 퍼졌다.
오전 10시 21분 중구 동광동에선 3층 벽돌건물이 넘어지면서 인근 1층짜리 주택 2채를 덮쳤다. 인명 피해는 없었다. 소방 관계자는 "60∼70년가량 된 낡은 3층 건물인 데다 폭우로 지반이 약해진 탓에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원인을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부산소방본부는 "11일 오후 3시까지 230여 건의 구조, 배수 등 요청 신고를 접수했다"고 밝혔다. 부산시 시민안전실에 따르면 이날 도로와 주택 등 500여 곳가량이 침수되거나 파손되는 피해를 입었다. 또 침수·배수 지연·낙석 등의 피해 113건이 소방 당국에 접수됐다.
◇빗나간 예보에 분통 터뜨린 시민들
11일 부산 지역에 기상청 예보의 2배 이상 비가 집중적으로 쏟아지자 시민들은 "예보가 너무 빗나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기상청은 지난 7월에도 충북 청주에 "30~80㎜ 비가 내릴 것"이라고 예보했지만 290㎜ 폭우가 쏟아지면서 여론의 비난을 받았다.
기상청은 전날인 10일 오후, 부산을 포함한 남해안 지방에 '많은 곳은 150㎜ 이상' 비가 쏟아질 것으로 예보하고 호우 예비특보를 발령했다. 11일 오전 5시엔 부산 일대에 호우주의보, 오전 6시 50분엔 부산·울산·경남 일대에 호우 경보를 발령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기상청 예측보다 훨씬 많은 비가 쏟아졌다. 영도구의 낮 12시 현재 강우량은 358.5㎜에 이르렀다. 부산 평년 연간강수량 1519.1㎜의 24%에 해당하는 양이었다. 이날 부산의 강수량은 대표 관측소인 중구 대청동(263.2㎜)을 기준으로 1904년 부산 기상청이 관측을 시작한 이래 9월 하루 최대 기록을 넘어섰다. 1984년의 246.5㎜가 종전 최고였다.
경남 통영·거제에도 200㎜ 넘는 비가 내렸다. 기상청 레이더 영상을 보면 호우 경보가 발령되기 전인 오전 5시쯤부터 집중호우를 몰고오는 비구름대가 남해안 지역을 통과 중이었다. 오전 6시 50분에 내려진 기상청 호우 경보가 너무 늦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기상청 관계자는 "전날부터 큰비를 예보했기 때문에 오보는 아니다"면서 "300㎜ 넘게 비가 내렸다고 해서 예보가 두 배 이상 틀린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했다. 민간 기상업체 케이웨더의 반기성 예보센터장은 "하루 300㎜ 폭우는 과거 3~4년에 한 번 정도 있는 일이었는데, 올해는 홍천·청주·군산에 이어 부산까지 네 번이나 발생했다"면서 "기존 기상 자료를 토대로 삼았다가 기후변화 때문에 예보가 크게 어긋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