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뒤는 임종석 비서실장.


청와대는 11일 사상 초유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준 부결에 대해 "상상도 못했다"면서 야당을 향해 "무책임의 극치이자 반대를 위한 반대"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춘추관 브리핑에서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에 대해 "야당이 다른 안건과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연계하려는 정략적 시도는 계속됐지만, 이렇게 부결까지 시키리라곤 상상도 못했다"며 "김 후보자에게 부결에 이를만한 흠결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늘 국회에서 벌어진 일은 무책임의 극치이자, 반대를 위한 반대로 기록될 것"이라며 "(야당이)국민의 기대를 저버리고 철저히 배반한 것이며, 헌정질서를 정치적이고 정략적으로 활용한 가장 나쁜 선례로 기록될 것"이라고 밝혔다.

윤 수석은 또 "이번 사태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국민들이 가장 잘 아실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로 인한 헌재소장 장기 공백 사태의 원인이 김 후보자의 정치 편향이나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 등의 문제가 아니라 철저히 '야당의 정략'이라는 것이다.

현재 헌재는 김이수 소장 대행 체제에다, 최근 이유정 헌법재판관 후보자 낙마 사태로 인해 7인 체제로 유지되는 비정상적 상황이다. 이 경우 향후 헌재 판결에 대한 위헌 논란과 함께 각종 문제가 대두되는데, 이 책임이 모두 야당 탓이 된다는 이야기다.

새로 들어선 청와대가 그동안 공식 성명을 통해 야당에 대해 '무책임' '정략' '배반' 등의 용어를 동원해 직접 비난한 것은 처음으로, 사실상 '대야 선전포고'로 해석된다.

그동안 문 대통령과 참모진이 '협치'를 명분으로 여야정 국정 상설협의체나 여야 대표 회담 등을 제안하는 등 물밑 노력을 기울여왔음에도 '배신'을 당했다는 것이다.

특히 청와대는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에 대해 "어떠한 정당성도 없이 111일이나 끌어오던 표결을 하면서 그걸 부결시켰다"며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청와대도 당분간 이런 대야 협치 제안을 거둬들이지 않겠냐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이 경우 정기국회가 시작되고 북핵 안보 위기 등이 겹친 상황에서 정국이 급속히 경색될 전망이다.

청와대는 그간 캐스팅보트로 결정권을 쥔 국민의당 등을 제대로 포용하지 못한 여당 지도부 책임론이 이는 데 대해서도 "여당은 최선을 다했다"(고위 관계자) "청와대 내부 문책은 없다"며 화력을 오로지 야당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한편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김이수 후보자 인준안 부결 소식을 듣고 "굉장히 굳은 표정이었다"고 전했다.

청와대는 일사부재리 원칙에 따라 이번 국회에선 김이수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다시 제출할 수 없다. 그러나 새로운 후보자 물색 여부는 아직 확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악의 경우 청와대가 새 후보자를 지명하지 않고 김이수 헌재소장 대행 체제를 앞으로 1년여 더 끌고 가게 해, 사실상 '헌재소장 공백 장기화+7인 체제' 책임을 야당으로 돌리는 여론전을 하려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