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륙하는) 제트기 엔진 뒤에 서 있는 느낌입니다. 강풍이 온몸을 쿡쿡 찌르는 것 같습니다."

10일(현지 시각) 오전 허리케인 '어마(Irma)'가 상륙한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비치에서 생방송 마이크를 잡은 CNN의 데릭 반 댐 기자는 강풍에 몸을 가누지 못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얼굴을 때리는 비바람을 조금이라도 막기 위해 투명 스포츠 고글을 낀 채 방송을 진행했다. 재킷 모자를 꽉 조였지만, 계속 벗겨졌다. 마이애미의 이날 최대 풍속은 시속 160㎞에 달했다.

9일(현지 시각) 초대형 허리케인‘어마’의 상륙을 앞두고 플로리다주 남부 에스테로시에서 주민 수천명이 임시대피소로 지정된‘저메인 아레나(실내 체육관)’를 가득 메우고 있다.

초대형 허리케인 어마는 이날 오전 7시쯤 미 최남단 플로리다주 키웨스트에 상륙했다. 이 때문에 키웨스트의 한 트럭 기사는 강풍에 휩쓸린 차량을 통제하지 못해 사망했고, 지역 고속도로에선 차량 충돌로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어마 상륙 2시간 만에 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이다.

어마는 지난주 최고 등급인 5등급 허리케인의 위력을 과시하며 카리브해 섬나라들을 초토화시켰다. 이후 위력이 3등급으로 약화됐으나 이날 밤 다시 4등급으로 강해졌다. 시속 208㎞의 강풍을 동반한 어마는 시속 12㎞로 플로리다주 서쪽 해안을 향해 북상하고 있다. 11일 오후 2시 이후 약화된 형태(1등급)로 조지아, 앨라배마주 쪽으로 빠져나갈 것으로 관측된다. CNN은 "플로리다주가 앞으로 36시간을 이겨내야 한다"고 했다.

어마 상륙이 예보됐던 플로리다주에선 9일 낮부터 '엑소더스(대탈출)'가 벌어졌다. 이날 오전 릭 스콧 플로리다 주지사는 기자회견을 열고 주 인구(2061만명)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630만명에게 대피령을 내렸다. 그는 어마를 '살인자(killer)'로 부른 뒤 "오늘 밤도, 1시간 이내도 아니다. 지금 당장 떠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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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의 주'로 불리는 휴양도시 플로리다는 허리케인 공포에 사로잡혔다. 플로리다 일대 고속도로는 피난길에 오른 차량들로 극심한 정체를 빚었고, 주유소는 기름이 동나 문을 닫았다. 대형 마트 앞은 식수와 비상식량을 사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쳤다. 탬파와 마이애미 등 주요 도시 공항은 한때 피난민들로 북새통을 이뤘지만 오후부터는 기상 조건마저 악화돼 항공편이 무더기 결항됐다. 이날 하루 생필품과 담요, 애완동물 정도만 챙겨 대피소로 이동한 주민만 7만2000여 명으로 집계된다.플로리다주 남동부는 어마 상륙 전부터 그 위력을 실감했다. 9일 오후 키웨스트 해안에는 시속 119㎞의 강풍을 동반한 폭우로 부두에 정박해놓은 선박들이 침수된 채 육지로 떠밀려왔다. 대규모 정전 사태도 이어졌다. 플로리다 전력 당국은 "어마가 지나가는 동안 미 역사상 최대 규모인 900만명이 정전 사태를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플로리다주 정부는 침수 피해를 가장 걱정하고 있다. 어마가 플로리다에만 500㎜ 이상의 비를 뿌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미 국립허리케인센터는 "어마가 해안에 상륙하면 최고 6m의 해일이 덮쳐 올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2층 높이의 집도 삼킬 수 있는 높이다. 어마는 이동 경로에 있는 키웨스트와 탬파베이, 세인트피터즈버그 등 플로리다 서부 도시들에 큰 피해를 가져올 전망이다. 주정부는 대피소 390곳을 열었고, 연방 방위군 7000여 명을 배치했다. 연방 정부는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함'과 호위함, 구축함 등을 플로리다 서부로 이동시켜 구조 활동에 대비했다.

현재 플로리다 주민들은 허리케인 공포에 물가 폭등이란 이중고에 시름하고 있다. 플로리다주 법무장관실에는 항공료를 비롯해 물과 휘발유 등 가격이 부당하게 인상됐다는 항의성 민원이 7000여 건 접수됐다. 일부 항공사가 어마를 벗어나려는 플로리다 주민들에게 '바가지요금'을 씌웠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NYT에 따르면 평소 500달러 정도이던 델타항공의 마이애미발 피닉스행 편도 요금이 최근 3200달러로 6배 가까이 뛰었다고 한다. 플로리다의 민주당 소속 상원 의원 2명은 일레인 차오 연방 교통장관에게 조사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