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베이징 시내 곳곳의 공터에 공중전화박스 같은 시설들이 하나 둘 등장했다. 베이징미파오(北京覓

)라는 스타트업이 선보인 공유 헬스장이었다. 내부 면적이 4㎡로 TV가 달린 러닝머신이나 헬스사이클이 들어서 있고 최신 공기청정기도 설치돼 있다. 전용앱을 휴대폰에 다운받아 회원으로 등록한 사람이 휴대폰으로 QR코드를 스캔하면 문이 열린다. 이용료는 30분에 5위안(약 870원).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사용할 수 있도록 온라인 예약도 가능하다. 이 공유 헬스장은 1000가구 이상이 거주하는 베이징의 주택가 10여 곳에 등장했다. 중국의 대표적인 외식배달앱 중 하나인 어러머의 창립 멤버 출신이 시작한 이 회사는 벤처캐피털들로부터 수천만위안을 투자받았고 기업 가치가 벌써 1억위안을 넘어섰다.

그 한 달 뒤, 중국 랴오닝성의 수도 선양 시내에서는 화사한 색상만으로도 눈길을 끄는 로열 블루 BMW1 시리즈 승용차가 크게 늘었다. 현지의 한 벤처기업이 중국 최초로 BMW 공유 자동차 1500대를 도입, 시내 곳곳에 배치한 것이다. 이 BMW 공유 자동차를 이용하려면 휴대폰에 전용앱을 깐 뒤 보증금 999위안(17만원)을 결제하면 된다. 원하는 차량을 골라 탑승한 뒤 지문·안면인식 시스템에 의한 본인 인증을 거치고 음주 여부 진단을 통과하면 운전이 가능하다. 요금은 ㎞당 1.5위안(260원), 하루 이용 한도 200위안(3만4000원)이다. 중국 대륙을 휩쓸고 있는 공유 자전거의 최고급 승용차 버전이 탄생한 것이다. 사업을 시작한 쑤이훙양씨는 "선양 시내 1400여 개 주차장에 무료 주차할 수 있고 주유는 회사 측에서 부담한다"고 말했다.

차량·숙소·자전거를 함께 쓰는 데서 출발한 중국의 공유경제가 각 분야로 퍼져 나가고 있다. (위)공유 고급 승용차, (아래 왼쪽부터)공유 헬스방, 공유 세탁기, 공유 우산 등. 하지만 대다수 공유경제 상품이 수익 모델이 분명치 않고 우후죽순 격으로 늘고 있어 공급과잉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두 사례는 끝없이 새로운 사업 모델을 만들어 내고 있는 중국 공유경제의 단면을 보여준다. 차량·숙소·자전거를 함께 쓰는 데서 출발한 대륙의 공유경제는 세탁기·냉장고 같은 가전에 우산과 농구공까지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이제는 공유 BMW에 공유 헬스장까지 등장한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지하철, 쇼핑몰에는 박스형 공유 가라오케가 등장했고 공유 전기스쿠터, 공유 유아보행기까지 이제 없는 게 없을 지경이다.

그러나 중국의 공유경제는 기업이 유휴 자원과 그걸 필요로 하는 사람을 연결해주는 본연의 공유경제와 달리, 기업 주도의 저가(低價) 단기 렌트 형태에 가깝다. 공유 BMW, 공유 헬스방도 예외가 아니다. 기존의 자원을 활용하는 게 아니라 기업 주도의 대규모 투자가 불가피한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의 끝 간 데 없는 공유경제 붐이 또 다른 공급 과잉의 주범이 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중국 관영 매체들 "中 공유경제, 공급 과잉으로 돈·자원 낭비"

공유공제에 우려를 내놓고 있는 건 중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관영 매체들이다. 관영 영자지인 글로벌타임스는 "중국의 공유경제 업체들은 정확하고 합리적인 비즈니스 모델도 없다"며 "돈을 끌어들여 무작정 투자를 하지만 어느 시점에 투자를 멈추고 본격적으로 수익을 내기 시작할지 계산조차 없다"고 질타했다. 예컨대 현재까지 등장한 공유 모델 중 가장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듣는 공유 자전거만 해도 이미 대부분의 업체가 돈벌이 되기 힘든 구조라는 것이다. 각 업체가 보급하는 자전거의 대당 비용은 평균 33만500원. 이 같은 투자 비용을 건지려면 자전거당 사용 빈도가 하루에 최소 5번은 돼야 한다. 하지만 2014년 베이징대 재학생들이 만든 오포, 상하이에서 시작된 모바이크 단 두 개 업체뿐이었던 공유 자전거 시장엔 이제 70개 업체가 할거하고 있다. 업체가 늘면서 자전거 대당 사용 빈도는 턱없이 낮아지고 있다. 그런데도 공유 자전거 업계로는 지금도 중국 벤처캐피털 업계의 투자금이 물밀듯이 밀려들고 있다. 이 시장에 투자된 금액만도 10억달러(1조1300억원)를 넘어섰다.

중국 신문망은 "일부 공유경제 사업 모델은 말 그대로 '돈과 자원의 낭비'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공유 우산이다. 이 분야의 초기 주자인 상하이의 셰어링 E 엄브렐러라는 업체는 비가 잦은 중국 남부지역 도시 11곳에 개당 60위안(1만원)을 들여 총 30만개의 우산을 뿌렸다. 사용자들이 보증금 19위안만 내면 30분당 0.5위안의 저렴한 사용료로 언제든 우산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단 몇 주 만에 30만개 우산이 모두 사라졌다. 처음 우산을 사용한 사용자들이 집이나 직장 등으로 우산을 그냥 들고 가버린 것이다. 결국 이 업체는 우산 30만개 제작, 보급에 들인 1800만위안(31억원)의 초기 투자금을 몽땅 날렸다. 그런데도 이 업체는 "실망하지 않는다. 30만개로 안 되면 3000만개 우산을 뿌리겠다"는 식이다. 유치한 투자금이 아직도 남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 남부를 중심으로 이미 20여 개의 공유 우산 업체가 등장한 상황에서 이 사업이 더 이상 지속 가능할지 의문이라는 견해가 다수다.

거리 점령한 공유자전거에 분노

처음에는 값싼 공유경제 서비스의 등장에 환호하던 중국인들도 차츰 부작용에 신물을 내고 있다. 그 극단적인 형태가 '공유 자전거 반달리즘(파괴행위)'이다. 단 3년 만에 무려 1600만대로 늘어난 공유 자전거가 중국 주요 도시의 도로와 인도, 공공주차장, 공원, 주택가를 모조리 점령하면서 화가 난 주민들이 자전거를 훔쳐서 숨겨버리거나 건설 현장에 파묻고 심지어 강이나 호수에 던져버리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는 것이다.

공유 자전거가 버려져 있는 모습. 공유 자전거가 3년 만에 1600만대로 늘어나면서‘자전거 공해’가 심해지자 일부 주민이 공유 자전거를 내다 버리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현재 중국 공유경제의 문제는 제대로 된 수익 모델을 갖춘 곳이 없다는 점이다. 선양의 공유 BMW만 해도 차량 가격은 대당 수십만위안이지만, 사용료는 몇십위안에 불과하다. 베이징의 공유 헬스방도 10대의 운영 수익이 하루 70위안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버티는 것은 사용자들이 미리 낸 보증금 덕분이다. 이 돈을 굴려 형편없는 수익을 보전하는 것이다. 하지만 보증금 돈놀이도 이제 어려워지고 있다. 도산으로 인해 사용자들에게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하는 사례가 나오지 않도록 중국 정부가 엄격하게 감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유경제의 미래가 중국에 있다'고 극찬하던 서구 매체들도 이제 "중국의 공유경제(sharing economy)가 과잉공유(oversharing)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