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 무대에 다시 서기까지 17년이 걸렸다. "국내에서 연락이 안 온 것도, 제가 일부러 피한 것도 아니에요. 연이 닿지 않았을 뿐." 21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소프라노 이하영(42·사진)은 "한국에서만 먹을 수 있는 감자탕, 콩국수, 순대, 족발로 무대에서 터뜨릴 에너지를 비축하고 있다"며 시원한 오미자차를 쭉 들이켰다.
26일 서울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에서 막 올리는 야외 오페라 '동백꽃 아가씨'에서 이하영은 여주인공 비올레타로 나온다. '동백꽃…'은 베르디의 대표작 '라 트라비아타'에 한복과 민화, 전통 춤사위 등 우리 색채를 입혀 국립오페라단이 새롭게 내놓는 작품. 애초 소프라노 홍혜경이 맡을 예정이었으나 건강을 이유로 출연을 고사했다.
연세대 성악과(94학번)와 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2001년 영국 런던 내셔널 오페라 스튜디오에 장학생으로 간 이하영은 2002~2005년 런던 로열 오페라하우스에서 주역 가수를 기르는 빌라 영 아티스트 프로그램에 몸담으며 '라 트라비아타' '마술 피리' 등에 출연했다. 독일 함부르크 국립극장의 극장장 겸 상임 지휘자였던 호주 출신 여성 지휘자 시몬 영의 눈에 띄어 2005년부터는 함부르크 국립극장의 전속 주역 가수로 활약하고 있다. 국내 무대에는 2000년 윤이상 오페라 '심청' 주역으로 출연했다. 40년간 우리나라 전통 매듭을 전 세계에 알려온 차명순 매듭 장인이 모친이다.
"지난달 20일 국립오페라단에서 비올레타를 맡아달라는 전화를 받고 스물두 시간 고민한 뒤 '예스!'라고 답했어요. 신기하게도 스케줄이 딱 맞아떨어졌죠." 이하영은 "계약서를 쓰고 나서야 야외 오페라인 줄 알았다"고 했다. "혹시 모를 빗줄기, 날아다니는 벌레를 피해야 하죠. 막과 막 사이에 휴식 시간도 없어요."
'라 트라비아타'는 지난 12년간 해마다 대여섯 번씩 60회 넘게 한 작품이라 자신 있지만 "비올레타는 베르디조차 한 공연에 프리마 돈나 세 명이 필요하다고 했을 만큼 힘든 배역"이다. 화려한 1막을 부르자마자 강렬한 2막을 소화하고, 쉴 틈 없이 3막에서 감정을 발산해야 한다. 이하영은 "하룻밤에 수영과 사이클, 마라톤을 뛰어야 하는 철인 3종 경기와 같다"며 한숨 쉬곤 이내 "별 수 있나. 성악가는 9할이 정신력"이라고 했다.
"'미스 파든(pardon)' 소리 들으며 입과 귀가 뚫릴 때까지 노래와 외국어에 매진했던 지난날을 밑거름 삼아 '동백꽃 아가씨'도 멋지게 해낼 겁니다. 기대해 주세요!" 1588-2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