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작품은 사람들을 침묵과 명상으로 이끌고 세상과 바람, 하늘, 땅, 심지어 지하의 마그마 소리까지 듣게 하는 한 편의 시(詩)다."

프랑스 파리 기메미술관의 수석큐레이터 피에르 캄봉이 한 편의 시로 상찬한 이 그림은 재불화가 이진우(58)의 것이다. 꼭 1년 만에 신작을 들고 모국을 찾은 그의 전시 문패는 '침묵으로의 초대'. "요즘 죽음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해요. 잠깐 왔다 가는 세상인데 나의 그리는 행위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기도 중 가장 큰 기도는 침묵의 기도'라던 마더 테레사 수녀의 말씀을 새기며 그린 작품들입니다."

숯과 한지로 작업하는 방식은 예전과 다름없다. 캔버스에 검정 숯을 가지런히 앉힌 다음 얇은 한지를 얹고 쇠솔(와이어 브러시)로 두드리고 긁어내는 노동의 반복. 온몸이 땀과 숯검댕으로 범벅이 되는 순간 흑돌 가득한 바닷가, 눈 덮인 평원, 혹은 안개 속 거대한 숲 같은 풍경화가 태어난다.

숯과 한지를 겹겹이 쌓아 쇠솔로 긁어내기를 반복하는 이진우의 무채색 풍경화는 묵직한 감동을 안겨준다.

[이진우, 거친 노동 흔적…오직 몸으로 그려내다]

이진우는 지난해보다 작업 만족도가 높다며 웃었다. "하얀 반점 같은 게 보이나요? 수십 겹 붙인 한지가 마르면서 생긴 흔적이죠. 나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는 이런 우연들이 좋아요. 작가의 흔적, 인공적 체취가 사라질수록 좋은 그림이 나온다고 믿지요."

회색, 검정톤의 무기질적 색계로 이뤄진 이진우의 추상(抽象)이 묵직한 감동을 주는 건 생의 굴곡과도 관계 있다. 1983년 군부독재정권을 혐오하며 도망치듯 떠난 파리, 어머니의 죽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인한 생계적 고통…. "20대는 반(半)거지로 살았어요. 밥은 얻어먹고, 담배는 주워서 피우고, 작품에 쓸 재료는 쓰레기더미에서 뒤졌죠. 숯과도 그렇게 만났어요. 스파게티 국수를 삶은 뒤 시커멓게 탄 재와 숯을 물감으로 삼았지요."

세종대, 파리 8대학, 파리국립미술학교까지 학교 세 곳을 다니며 공부했지만 정작 타국 생활 34년을 버티게 해준 건 아내라고 했다. "굶기면 안 되니까 진짜 열심히 그렸어요. 하루 18시간씩 그렸죠. 땅바닥을 기면서, 절실하게 기도하면서."

그렇게 탄생한 숯 그림은 파리 화단에서 먼저 '차세대 단색화'로 주목했고, 박서보 화백 눈에 띄어 국내에까지 그 이름을 알렸다. "타다 남은 숯을 사용한 '아르테 포베라', 일명 거지 미술인 셈인데도 좋아해주시는 분 많아서 감사하죠. 제 그림 앞에 3시간 동안 서서 우는 관람객도 봤어요." 이진우는 자신의 기도가 통해서라고 했다. "매일 새벽, 내 그림이 가는 곳마다 평강이 강물처럼 흘렀으면 좋겠다고 묵상한 뒤 붓을 들어요. 어린애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저는 제 그림으로 전쟁이 그치고 평화가 오기를 꿈꿔요." 전시는 서울 광화문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9월 3일까지. (02)724-7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