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영화 '택시운전사'가 천만 관객 고지를 돌파했다. 국내 개봉 영화 중 통산 19번째다. 영화진흥위원회는 20일 오전 '택시운전사' 누적 관객 수가 1006만 8708명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서남대는 교육부로부터 2018학년도 의학전공학과 입학정원 전원(49명)을 모집 정지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사실상 폐교 절차를 밟게 된 셈이다.

별 상관없어 보이는 둘을 엮은 데엔 이유가 있다. '택시운전사'에 나오는 병원 씬 모두가 서남대 의대 부속 병원에서 촬영됐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 김만섭(송강호 분)이 임산부를 태우고 내달리는 장면은 서남대 남광병원에서 찍었고, 초중반 이래 부상자가 끊임없이 들어오는 병원 모습은 서남대병원(舊 광주적십자병원)을 세트장 삼아 촬영했다. '택시운전사' 제작·배급을 맡은 회사인 쇼박스 관계자는 "두 부속병원 모두가 1980년대 당시 느낌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어서 그 분위기를 살려 찍었다"고 말했다.

영화 '택시운전사' 중 한 장면. 뒤로 보이는 건물이 남광병원(현 서남대남광병원)이다.

#남광병원

남광병원.

광주 서구 마륵동에 있는 남광병원은 지난 1988년 개원했다. 이 병원은 문을 연 이래 극심한 경영난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지난 1994년 10월 보건사회부(現 보건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당시 남광병원 부채는 15억9000여만원에 달했다. 원리금 연체가 있던 전국 병원 35개 중에서도 진 빚이 가장 많았다 한다. 당연히 1980년대 건물을 신식으로 리모델링할 여유는 없었을 것이다.

서남대가 병원을 인수한 1995년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2011년 보건복지부는 남광병원의 수련병원 자격을 박탈한다. 병원이 학생을 제대로 가르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서남대는 지정취소 처분 취소 소송을 걸었지만, 이 과정에서 오히려 남광병원 병상이용률이 2.8%에 불과하며, 지도전문의 16명 중 9명이 실제 진료를 보지 않고 이름만 걸어뒀다는 사실이 까발려지며 패소한다. 참고로 수련병원 지정기준 병상이용률은 70%다.

당시 박인숙 새누리당 의원(현 바른정당 의원)은 남광병원을 살펴보고 "환자는 없고, 병실은 자물쇠로 잠겨 있고, 시설물 곳곳이 거미줄로 둘러싸여 있었고, 응급실과 수술실에는 간호사도 없어 50년대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실정"이라는 평을 내렸다. 서남대 설립자 이홍하는 자신이 세운 학교법인 7곳에서 약 1004억원을 횡령해 2012년 구속된 인물이다. 학교를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만 봤으니, 병원 모양새가 이 지경이 되도록 손 놓고 있던 것도 의아할 일까진 아니다.

수련병원 취소 조치 후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됐지만, 외래환자 방문공간이나 의대 강의실 등 내부 일부만 손댔을 뿐이었다. 병원 대부분 공간은 당시 모습에서 변한 게 달리 없었다. 결국 오래지 않아 남광병원은 휴업 상태에 들어간다. 쇼박스 관계자는 "영화 촬영이 시작됐을 때(지난해 6월) 남광병원은 이미 폐병원이 돼 있었다"고 말했다.

#광주적십자병원

광주적십자병원.

광주적십자병원 원내는 5·18 사적지 11호다. 영화에서 묘사된 바와 같이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부상당한 광주 시민을 치료했던 역사적 장소이기 때문이다. 비단 5월 광주민주화운동이 아니더라도, 광주 적십자병원은 1967년 문을 연 이래 오랜 세월에 걸쳐 광주 시민과 함께해 온 뜻깊은 공간이다. 하지만 이 병원 또한 적자에 시달린 탓에, 병원 건물을 깨끗이 재정비할 여력은 없었다 한다. 실제로 1995년 11월 대한적십자사 광주·전남지사는 누적 적자를 견디다 못해 광주 적십자병원 폐원을 결정한다.

이듬해 서남대가 인수에 나선 덕에 병원 명맥은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로도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서남대 설립자 이홍하는 1998년부터 2010년까지 3차례에 걸쳐 교비 횡령 혐의로 처벌을 받았다. 2013년엔 서남대를 비롯해 이씨가 세운 대학 중 4곳이 경영부실대학으로 지정된다. 설립자와 학교가 이 지경이니 부속병원 또한 멀쩡할 리가 없었다. 광주적십자병원은 서남대가 인수한 이후로도 1980년대 건물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다, 2014년 3월 20일부터 무기한 휴업에 들어간다.

#떠나는 병원들, 서로 다른 뒷모습

지난 6월 폐원한 도티기념병원을 다룬 조선일보 카드뉴스 중 일부.

지난 6월 '활짝 웃으며 폐원(閉院)하는 병원 직원들'이 화제가 됐었다. 서울 은평구 도티기념병원 사람들이었다. 도티기념병원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35년간 무료진료를 해 온 곳이다. 병원 직원들은 한국의 의료환경이 나아져 이제 소명을 다 했다며, 웃음 띤 얼굴로 폐원 미사를 올렸다.

남광병원과 광주적십자병원은 주인 잘못 만난 탓에, 소명은커녕 대학 부속 종합병원다운 활약 한 번 제대로 해 보지 못한 채 '폐교' 불명예를 안고 문을 닫게 됐다. 더군다나 도티기념병원과는 달리, 떠나는 순간을 환자들과 함께하지도 못했다. 그들이 세상에 마지막 인사를 올릴 무대는, 얄궂게도 병원이 사망을 선고받은 바로 그날 천만 관객을 기록한 '택시운전사' 스크린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