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에서 여성 시인은 크게 '성녀(聖女)'와 '마녀(魔女)'로 나뉜다. 전통 서정시를 쓸수록 '어머니', '누이', '소녀' 이미지를 누리지만, 페미니즘을 내세우거나 언어 해체와 같은 실험시를 쓰면 대부분 '문학의 마녀'로 꼽힌다. 1980년대 이후 '마녀'시를 대표해 온 김혜순(62·서울예술대 문창과 교수) 시인이 시론집 '여성, 시(詩)하다'(문학과지성사)를 냈다. 제목은 "시는 본래 여성적 자리이고, 여성은 시를 쓰는 게 아니라 시의 내부에서 행동하는 사람"이라며 정한 것. 지난 15년간 시에 대해 쓴 산문 9편을 모았다.

최근 광화문에서 만난 김 시인은 "남자 평론가들이 늘 나를 '마녀' 계열로 분류하는데, 조금만 실험적이면 초현실로 규정하고 본다"며 "여성에게 가해지는 억압이 유난히 심한 한국에서 쓰이는 여성시의 특징은 '마녀'보다는 '유령'이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김 시인은 "나를 포함해 한국의 숱한 여성 시인들은 '유령'의 목소리로 시를 쓴다고 볼 수 있다"며 시론집에 실린 글 '여성시와 유령 화자(話者)'를 가리켰다. 그녀는 고정희 시인의 시 '독신자'를 인용했다. '뒤늦게 달려온 어머니가/ 내 시신에 염하시며 우신다/ 내 시신에 수의를 입히시며 우신다/ 저 칼날 같은 세상을 걸어오면서/ 몸이 상하지 않았구나, 다행이구나/ 내 두 눈을 감기신다'.

최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김혜순 시인은 “여성 시인의 언어는 이방인, 난민, 성 소수자, 사회적 약자의 언어들과 같다”고 말했다.

[봄이 오려나보다… 만개한 김혜순의 시처럼]

죽은 어미가 죽은 딸을 수습하는 환상이 기괴한 출산 과정처럼 느껴진다. '칼날 같은 세상'에서 태어나 고통을 겪은 여성은 제 죽음을 바라봐야 비로소 제대로 태어난다는 절규가 담겨있고, 세대를 초월해 여성을 상징하는 모녀(母女)가 유령으로 등장해 저마다 독백한다. 이처럼 김 시인은 강은교·고정희·김승희·최승자·김정란 등 여성 시인들의 시 세계를 '유령 화자'의 관점에서 재조명했다. 여성 시인은 영매(靈媒) 또는 무당처럼 시를 씀으로써 현실과 언어를 해체해 기존의 남성/여성 이분법을 벗어나 새로운 공간을 제시한다는 것.

김 시인은 "나 자신도 아직 태어나지 않은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며 "나는 시를 씀으로써 '나'를 출생시켜야 하는 과정 속에 있는 사람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 시인이 아니면 건질 수 없는 시론(詩論)인 것. 그 바탕에는 '바리데기' 설화가 놓여있다. 김 시인은 "서양 시인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시론의 전거를 구하는데, 나는 '바리데기'를 통해 여성적 글쓰기를 말해왔다"며 "딸이라서 버려진 '바리데기'는 '쓰레기'인 셈이다"라고 풀이했다.

"바리데기는 버려진 위치에서 다른 장(場)을 찾은 여자인데, 그 장이 이승과 저승 사이에 있다. 그 공간에 여성 시의 근본적 특징이 있다고 본다.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시스템이 장악한 곳도 아니고, 환상 그 자체도 아니다. 바리데기가 통과 제의를 거칠 때마다 생기는 자리는 쓰레기의 자리, 결혼의 자리, 모성의 자리, 죽어서 가는 뱃사공의 자리도 있다."

김 시인은 "시를 잘 쓰는 남성도 어찌 보면 여성적 입장을 지니고 있다"며 "남성성이라는 것의 반대 자리에서 남성/여성 이분법을 바라보는 자리를 '시인의 자리'라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