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제천 조용한 시골을 발칵 뒤집은 건 벌거벗은 사람들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성인 남녀가 무리 지어 숲을 거닐자 경악했다. 이들은 '한국의 누드 비치' 탄생을 꿈꾸는 자연주의 동호회 회원들이었다. 2009년에 이미 '국내 최초의 누드 펜션'으로 유명세를 탔는데 주민 반대로 운영이 중단됐다가 다시 회원을 모집했다.

운영자에 따르면 '자연주의'를 표방하는 회원들과 좀 더 편하게 모임을 하기 위해 이 펜션을 지었다고 한다. 동호회 회원들은 가입비 10만 원과 연회비 24만 원을 내고 월 1~2회 이 펜션을 이용했다. 이곳에서 나체로 수영, 배드민턴 등 운동과 실내 게임을 즐겼다는 게 펜션 운영자의 전언이다. 남녀가 나체로 함께 생활하지만, 성행위나 성행위 유사 행동을 하면 강제 퇴소다. 이들은 자신들의 목적이 '성(性)적 쾌락'이 아니라 자연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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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 (Naturalism, 自然主義)'는 개념이 매우 광범위하고 복잡하며 적용되는 분야가 다양하다. 출발은 예술에서 찾을 수 있다. 미술, 문학, 영화 등의 작품을 만들 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묘사하고자 하는 사조를 자연주의라 한다. 19세기인 1800년대에 등장한 개념이다. 현대에 오면서 자연주의는 의·식·주의 모든 분야에 적용할 수 있을 만큼 의미가 확장됐다. 불필요함을 제거한 단순함, 인위적이지 않은 것, 자연 친화적인 소재 등이 오늘날 자연주의를 표현하는 큰 줄기들이다.

그렇다면 '벗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의 사상도 자연주의에 포함될 수 있을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말처럼 포함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오히려 자연주의보다는 '나체주의(Nudism, 裸體主義)'라고 하면 좀 더 의미가 가까워진다.

나체주의는 1800년대 후반 독일에서 시작돼 제1차 세계대전 종전(1918년) 직후 유럽 전역에 퍼졌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무렵에는 미국 땅에도 나체주의가 상륙했다. 당시 미국의 부호에게는 유럽인 관광객을 끌기 위해 누드 비치를 개장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독일에서 나체주의가 태동한 까닭은 일조량이 적었기 때문이다. 맑은 날에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강이나 호수에 나와 나체로 수영을 즐기고 일광욕을 했다. 1900년에 들어서는 'FKK(Freikörperkultur)', 독일어로 '자유로운 나체 문화'라는 용어가 아예 일반화됐다. 1903년에는 독일 북부에 나체주의자들의 공원이 생겼고, 1931년엔 라이프치히에서 첫 나체 수영축제가 열렸다. 한때는 히틀러가 나체주의를 금지했던 적도 있는데, 전쟁이 끝난 후에 다시 성행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지친 사람들에게 자연과 동화되는 나체주의는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독특하게 통일 전 독일에서는 서독보다 동독에서 나체문화가 더 발달했다. 종교를 비롯해 개인의 자유가 제한된 상황에서, 정부가 억압된 욕구를 풀도록 나체 문화를 장려했기 때문이다.

나체주의의 기원을 아예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 시대로 보는 시각도 있다. 고대의 사람들은 나체로 일광욕을 즐기는 것을 넘어, 아예 맨몸으로 다니기도 했다. 초기의 올림픽 경기도 나체인 상태로 이뤄졌다. 다만, 이 때는 '평상시에 옷을 입어야 한다'는 개념조차 없었던 시기이기 때문에 이것을 나체주의의 시작으로 보는 건 무리가 있다.

-하인리히 푸도르 (Heinrich Pudor)
독일 '나체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인물. 1900년 초반부터 나체주의자들을 이끌었다. 그는 나체주의와 포르노가 뒤섞이는 것에 대해 매우 분개했으며, 이를 구분하기 위해 '나체문화'라는 용어를 따로 썼다. 그러면서 진정한 나체문화는 가정의 사적 공간이나 태양 아래에서만 존재한다고 했다.

-리하르트 운게비터(Richard Ungewitter)
푸도르와 함께 독일 나체주의 운동의 창설자 중 한 명로 꼽힌다. 나체주의와 민족주의를 결합해 주장한 것이 특징이다. 나체주의 운동이 혁명과 타락의 위협으로부터 독일을 지킬 것이라고 믿었다. 또한 술·담배 등 우리 몸에서 '낯선 것' 을 추방해야 한다고 했다. 운게비터는 1906년 출간한 '나체'라는 책에서 남자와 여자가 나체로 서로 어울리며 사는 이상적인 모습을 제시하기도 했다.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
영국의 역사가 겸 문학가. 직접적으로 나체주의를 주장하진 않았지만, 1830년대 잡지 연재글을 통해 "대자연이 신의 의복이고, 모든 상징·형식·제도는 가공의 존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람이 의복을 입지 않을 때 더 건강하고 행복해진다고 했다.

-월트 휘트먼 (Walt Whitman)
미국의 유명 작가인 월트 휘트먼도 나체를 예찬했다. 평소 옷을 입지 않고 한적한 시골이나 해변가를 산책하는 것을 즐겼던 휘트먼은 자전시 '나 자신의 노래'에서 "이렇게 자연과 가까이 있었던 적이 없다… 상쾌하고 머리가 맑고 고요한 자연 속의 나체"라고 노래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Henry David Thoreau)
고전소설 '월든'으로 유명한 미국의 작가. 호숫가에 직접 오두막을 짓고 살았을 정도로 자연인의 삶을 추구했다. 그는 집 앞 호수에서 나체 수영을 즐겼다고 전해진다.

나체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외설'로 비치는 것을 철저히 경계한다. 옷을 벗는 이유는 온전히 자연과 하나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나체주의는 노출증과는 구분되는데, 자의(自意)로 옷을 벗는다는 점은 같지만 후자는 성적 쾌락이나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목적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일부 나체주의자들은 '우리가 오히려 성적으로 더 보수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나체주의'는 어쩐지 입에 담기도 민망한 주제이지만, 전세계적으로는 나체주의를 지향하고 나체주의자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 나체주의는 왈가왈부할 논란의 대상이 아니라 오랜 세월동안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문화다.

(왼) 독일의 '자유로운 나체 문화'를 뜻하는 단어 'FKK'. 독일 누드비치에는 이와 같은 표지판이 있다. (오) 누드 비치의 모습.

누드 비치·누드 공원·누드 마을…

나체주의의 탄생지 독일과 인근의 프랑스에는 누드 비치가 100여 곳에 이른다. 대부분의 누드 비치는 현지인이나 관광객 구분 없이 즐길 수 있고 수영복을 착용해도 된다. 누드 비치라고 해서 반드시 알몸일 필요는 없지만 알몸이 되고 싶은 사람들의 자유를 허용해 주는 것이다.

최근에는 누드 비치에 한 술 더 떠, 아예 리조트나 마을 전체가 '누드촌'인 곳에서 즐기는 여행 상품이 인기다. 대표적인 곳이 프랑스의 카프다드(Cap d'Agde) 나체촌이다. 이곳에서는 단지 휴양을 즐기는 것 뿐 아니라 모든 일상적인 생활을 나체로 할 수 있다. 가령 마트에서 장을 본다거나 은행일을 보거나 하는 것들이다. 다만 누드 비치처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건 아니고 회원제로 운영된다. 입구에서 검문을 거치고 옷을 벗어 맡긴 뒤 퇴장할 때 되찾는다. 독일 뮌헨에도 나체 산책이나 일광욕이 가능한 '영국 공원'이 있으며,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누드 비치인 '시체스(Sitges) 비치'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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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에도시대에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일본의 공중목욕탕을 방문한 뒤 쓴 책에 있는 삽화. (오) 독일 혼욕 사우나의 모습.

혼탕

누드 비치만큼이나 역사가 깊은 것이 혼탕(混湯)이다. 독일과 일본에서 발달되어 있다. 독일 혼탕은 고대 로마시대의 공중목욕탕에서 시작됐다. 그러던 것이 19세기 FKK(나체 문화)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사우나를 하는 것이 건강과 휴식을 위한 필수 요소라는 인식이 퍼졌다. 왜 남녀가 함께 나체로 사우나를 하느냐에 대해서는 정확한 이유를 찾을 수 없는데, 과거부터 해오던 문화를 굳이 부정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많은 독일인들은 건강과 휴식을 목적으로 혼욕 사우나를 즐긴다. 참고로 사우나에서 낯선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는데, 성에 관한 주제는 배제하는 것이 에티켓이다.

일본의 남녀 혼욕은 1600년 에도시대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일본의 혼욕은 독일의 혼욕과 다른 점이 있었는데, 때를 밀어주는 여성 세신사들이 지금으로 치자면 성매매를 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서양 사람들로부터 '문란하다'는 소리를 듣던 일본은 근대화를 거치며 혼욕을 금지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남아있는 일본의 혼탕은 수영복 등을 입고 들어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가족끼리는 나체로 목욕할 수 있는 가족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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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체로 미술관을 관람하는 사람들.

누드 미술관 투어

호주 시드니 국립미술관은 2012년부터 나체로 명작 작품들을 둘러보는 투어를 기획해 진행하고 있다. 고상한 미술 작품들을 '고상 떨지 않고' 보기 위한 목적의 이 투어는 매년 매진 행렬이다. 관람객은 물론이고 작품을 설명하는 큐레이터, 경비 요원까지 모두 알몸이다. 시드니 국립미술관은 최근 이 누드 투어를 위해 656억 원을 투자할 만큼 공을 들이고 있다.

나체주의자들의 모임

세계 각지에는 나체주의자들의 NGO 단체인 '누디스트 클럽(nudist club)'이 있다. 기록에 따르면 1930년에 최초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나체주의자 국제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는 유럽 각국의 나체주의자 대표 3,000명이 모였다. 스페인에는 소규모이긴 하지만 나체주의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인 '나체당'도 있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남녀 혼욕이 허용되던 시절이 있었다. 고려시대의 자료들을 보면 당시의 남녀는 마을 냇가에서 함께 몸을 씻었다고 되어 있다. 물론 '나체주의'라는 사상에 입각한 것은 아니고 자연스럽게 해오던 관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시대로 넘어오며 유교 사상이 나라를 지배하게 되면서 남녀 혼욕과 같은 문화는 완전히 사라졌다.

전남 장흥에 있었던 '비비드 에코토피아'. 상의를 탈의하거나 종이옷을 입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지난 2011년, 전라남도 장흥에 우리나라 최초로 '누드 삼림욕장'이 문을 열었다. 장흥군이 45억 원을 들여 조성한 이 삼림욕장에는 편백나무 숲과 움막, 평상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산책로는 외부의 시선을 벗어날 수 있는 외곽에 만들어졌다. 당초 '누드 삼림욕촌'이라고 이름 붙었던 이곳은 종교인들의 반대로 '비비드(Vivid) 에코토피아'로 이름을 바꿔 개장했다. 이용객들은 대부분 완전한 나체가 아닌, 삼림욕장에서 판매하는 얇은 '종이옷'을 입고 삼림욕을 즐겼다. 하지만 이조차도 지역민들의 정서에 위배되는 것이었던지, 장흥 누드 삼림욕장은 얼마 못 가 폐장했다.

'누드 비치'는 전국 곳곳에서 더 활발하게 추진됐었지만 한 번도 실행에 옮겨진 적은 없다. 2005년에는 강원도 고성과 강릉에, 2009년에는 제주도에서 나체 해수욕장 구상이 나왔지만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강원도는 한 번의 실패에 굴하지 않고 2013년 또 다시 누드 비치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국민들의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 3단계에 걸쳐 (①단계: 경쟁을 통해 누드해변 시·군 선정, ②단계: 외부와의 차단 시설 설치, ③단계: 시범운영) 추진을 하기로 했으나 이 계획 역시 초기에 백지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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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겼던 제천의 누드 펜션은 결국 운영을 중단했다. 최근에는 운영자가 건물을 아예 매각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보건복지부는 숙박업소에 해당하는 누드 펜션이 숙박업소 신고를 하지 않고 운영해 공중위생관리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영업장 폐쇄 처분을 내렸다. 애초 주민들과의 갈등을 일으킨 건 '누드'라는 항목 때문인데, 처벌의 초점은 '누드'가 아닌 다른 것에 맞춰졌다. '누드'를 이유로 삼기엔 법적 처벌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공연음란죄' 적용 왜 힘든가?

우리나라에는 공연히 음란행위를 하는 자에게 1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하는 '공연음란죄(公然淫亂罪)'라는 것이 버젓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음란행위'란 다른 사람에게 성욕을 유발하고 수치심·혐오감을 주는 행위를 뜻하는데, 해당 행위가 벌어진 상황이나 관례 등을 고려해 범죄 여부가 결정된다.

'누드 펜션'의 경우, 인적이 드문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으며 나무와 계곡으로 둘러싸여 일부러 접근하지 않으면 나체를 쉽게 볼 수 없기 때문에 공연음란죄 적용이 어렵다. 펜션은 주민들의 거주지와도 100m 이상 떨어져 있었다. 만약 이 누드 펜션이 숙박업소가 아닌 '개인 사유지'로 판단됐었다면 공연음란죄와 더욱 멀어진다. 개방된 공공장소가 아닌 개인의 공간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옷을 벗을 자유'가 먼저냐, '타인의 벗은 몸을 보지 않을 권리'가 먼저냐는 질문에 정답은 없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르냐가 아닌,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느냐'를 놓고 합의점을 찾아 나가야 한다. 다만,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권에서는 아직 나체문화를 받아들이기에 시기상조라는 견해가 많다. 제천 '누드 펜션' 사건은 한바탕 소동으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인간에게 자유롭고자 하는 욕구와 성적 수치심이라는 감정이 남아있는 한, '나체주의' 논란은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