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여름에 찍은 한강 백사장 사진을 보는 순간 "어 한강 맞아?" 하는 감탄이 터진다. 60년 세월 저쪽 옛 풍광 속에 백수십만평 모래 비단이 가물가물 뻗어 있다. 용산 쪽으론 중앙박물관 자리까지 모래밭이다. 강 건너 흑석동 쪽은 가파른 언덕이다. 언덕 밑은 물살이 빠르다. 물 위에 놀잇배가 수백 척 떠 있는데, 검정 치마 흰 저고리 여성이 양산을 가린 채 무심하다. 모래밭에 파라솔이 꽂혔고 근육질 청년이 그늘에 누웠다.

▶어떤 미군이 한강대교에서 동쪽을 보고 셔터를 눌렀다고 했다. 너른 백사장에서 때로 공군 에어쇼도 펼쳐졌다. 실제 폭탄도 투하했다. 그만큼 넓었다. 신익희가 "못살겠다 갈아보자"며 백만 인파를 이곳에 모았고, 자유당은 "구관이 명관이다"고 응수했다던가. 6·25 불발 포탄이 묻혔던 곳이며, 전쟁 고혼을 달래기 위해 불교 수륙재를 지낸 곳이기도 했다. 70년대에 제방을 쌓고 안쪽을 메워 아파트를 지었다. 백사장을 보존했더라면 세계적 랜드마크가 됐을 것이다.

[한국에서 가장 큰, 세계적인 도시 서울]

▶몇 년 전 잠실 한강공원에 1500평짜리 인공 모래밭을 일구어 파라솔을 꽂고 선베드를 놓았다. 둘레에 나무와 화분을 꾸며 해변 분위기도 냈다. 올해는 내달 중순 잠수교에 '모래 해변'을 만든다. 잠수교에 모래 810t을 쏟아놓고 500m 구간에 넓게 깐다. 선베드와 파라솔을 예순 개씩 설치한다. 경사로에는 150m짜리 물 미끄럼틀도 세운다. 해변 입장은 무료고 이곳만 돈을 받는다. 교량 위에 들어서는 인공 해변은 처음 보는 것 같다.

▶파리는 2002년 여름 센강 강변도로를 막고 백사장을 만들었다. '파리 플라주'는 도심 인공 해변의 효시다. 5000t 모래를 붓고, 야자를 심고, 파라솔을 꽂았다. 발리볼 경기도 연다. 샘이 난 듯 베를린도 관공서와 언론사가 몰린 슈프레 강가에 모래밭을 만들고 '연방·언론 해변'이라 불렀다. 뒤늦게 런던 템스강에도 백사장이 생겼다. 모두 떠난 바캉스철, 고독한 '도시 원주민'을 달래려던 이벤트에 외지 관광객이 더 몰렸다.

▶1952년 심연옥이 가요 '한강'을 불렀다. '늘어진 버들가지가 어제 밤 이슬비에 목메어' 울건만, '떠나간 옛님'은 언제 오시려나 기약이 없다. 서울시는 한강 백사장 추억을 되살려 옛님을 다시 모시려 한다. '잠수교 해변'에는 모래 조각도 전시되고 무용 등 공연도 펼쳐진다. 먹는 즐거움도 준비됐다. 차량을 막아놓고 벌이는 일인데 방문객 수를 잘못 예상하면 낭패다. 안전사고도 걱정이다. 추억에 젖어 더위 피하려다 세금만 쓰고 눈살 찌푸리는 일이 없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