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음악 축제에서 울려 퍼지던 단단한 기타 소리가 말랑말랑해지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이 시장의 주류였던 록(Rock) 페스티벌이 변신 중이다. 록 밴드 위주였던 출연진들 대신 힙합, 일렉트로닉, 포크, 팝 등 다른 장르 가수의 비중이 점점 늘고 있다. 국내 록 페스티벌의 양대 주자인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펜타포트)과 지산밸리 록 페스티벌(지산밸리)의 올해 출연자들 명단을 보면 이런 경향이 뚜렷하다. 올해 펜타포트엔 아이돌기획사 YG 소속 '악동뮤지션', 개그맨 정형돈이 결성한 남성 듀오 '형돈이와 대준이', 최근 인기를 끈 여성 듀오 '볼빨간 사춘기' 등이 출연한다. 지산밸리 역시 이적이나 지코, 딘 등 록 음악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대중적인 인기가 높은 뮤지션들이 무대에 선다. 반대로 올해 처음으로 펜타포트 티켓을 예매했다는 김가은(27)씨는 "록 페스티벌은 20~30대 남자들이 가는 거친 곳이란 이미지가 있었는데 출연진을 보니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이 많아서 한번 가보려 한다"고 했다.

록 페스티벌을 찾는 남녀 관객 비중은 올해 3대7 정도로 여성이 늘어났다. 사진은 작년에 열린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여성 관객들이 공연을 즐기고 있는 모습.

◇공연 시장은 여성이 움직인다

록 페스티벌의 변신은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른 결과다. 축제가 성공하기 위해 공연 시장 주 고객층인 20~30대 여성 관객의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30대 여성 관객층은 록 음악보다는 일렉트로닉이나 포크, 팝 등 다른 장르의 음악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록 음악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관객이 줄어드는 게 현실. 주최 측도 여성 관객을 불러들이기 위해 이들 취향에 맞는 뮤지션들을 무대에 올려야 한다. 자연스럽게 출연진의 변화와 여성 관객 증가로 양자 간 선순환 구조가 강해졌다. 록 페스티벌 초창기였던 2006~2010년쯤에는 관객 중 남녀 비중이 비슷하거나 남자가 더 많았지만, 최근 그 비중이 여성 쪽으로 쏠렸다. 펜타포트의 경우 남녀 비중이 2015년 43대57에서 올해 28.3대71.7(예매표 기준)로 더 벌어졌다. 지산밸리도 2015년 남녀 비중이 45.8대54.2였는데 올해 33대67(예매표 기준)로 격차가 커졌다. 지산밸리 주최 측 관계자는 "전 세계적인 음악 트렌드가 록 음악에서 힙합이나 일렉트로닉 쪽으로 이동 중인데 음악 축제가 그런 흐름을 반영하지 않는 것은 무성의한 것"이라며 "한국처럼 규모가 작은 시장에서는 특정 층이 아니라 다양한 관객을 아우르는 '빅텐트(Big tent)' 전략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정체성과 대중성 조화가 숙제

록 페스티벌의 변신은 전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다. 영국의 대표적 음악 축제인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이 대표적인 경우다. 주로 록 밴드들이 헤드라이너(간판 출연자)를 독점했던 이 축제는 2008년 힙합 뮤지션인 '제이지(Jay-Z)'를 헤드라이너로 세웠다가 온갖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에도 비욘세, 카니예 웨스트, 퍼렐 윌리엄스, 아델, 에드 시런 등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을 주요 출연자로 계속 무대에 올리며 외연을 확장 중이다. 코첼라, 프리마베라 등 성공적인 음악 축제들도 특정 장르 음악에 치우친 것이 아니라 여러 장르의 뮤지션들을 고루 섭외하는 추세다. 록 페스티벌이란 이름을 아예 뮤직 페스티벌로 바꾸는 등 방향 전환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대중성을 확보하려고 지나치게 다양한 가수를 섭외하다 보면 축제 자체의 정체성이 흐려질 위험이 있단 점이다. 음악평론가 이경준씨는 "트렌드를 선도하는 뮤지션들을 잘 섭외해 성공한 코첼라 페스티벌처럼 성공하는 축제는 그만의 정체성이 뚜렷하다"며 "국내 음악 축제 역시 특정 장르의 음악이 아니라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축제 고유의 정체성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