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신고리 원전 5·6호기 존폐 여부를 공론조사(公論調査)로 결정하기로 했다. 약 30년 전 미국에서 개발된 공론조사는 국내에서 실시된 적이 10여 차례도 안 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용어조차 낯설다.
국민 여론을 신속하게 파악하는 수단인 여론조사는 전 세계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여론조사만으로 국가 정책을 정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가장 큰 이유는 일반 대중이 최선의 결정을 내릴 만한 충분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미국 스탠퍼드 대학 제임스 피시킨(James Fishkin) 교수가 고안한 것이 공론조사다.
공론조사는 과학적 표본추출에 의한 여론조사에다 응답자들의 학습 및 토론을 결합한 방식이다. 조사는 네 단계로 진행된다. 첫 단계는 특정 주제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다. 두 번째 단계는 1차 여론조사 응답자 중 성·연령·지역별로 대표성 있는 토론 참가자(시민 배심원)를 선정한다. 1차 여론조사 표본이 2000~3000명일 경우 시민 배심원은 200~300명 이상이 바람직하다는 게 학계 정설이다. 세 번째 단계는 시민 배심원을 한자리에 모아 균형 잡힌 정보를 제공하고 전문가 강연과 상호 토론(공론화 과정)을 거치도록 한다. 심도 있는 학습과 토론을 위해 1박 2일 이상 합숙을 권장한다. 네 번째 단계는 시민 배심원을 대상으로 1차 여론조사와 동일한 질문으로 2차 여론조사를 실시한다. 첫 여론조사와 최종 여론조사 결과의 차이는 (학습과 토론을 거치는) 공론화 과정으로 발생하는 의견 변화로 간주한다.
공론조사의 이론적 배경은 고대 그리스의 직접 민주주의다. 당시 아테네 프닉스(Pnyx) 언덕에서 시민들이 모여 정치인들의 찬반 의견을 듣고 토의를 거쳐 투표로 정책을 정했다. 프닉스 언덕은 전체 시민 6만명 중에서 6000명만 수용할 수 있어서 제비뽑기로 참석자를 정했다. 오늘날 여론조사의 무작위 표본추출과 비슷한 방식이다. 피시킨 교수는 "고대 아테네인의 아이디어가 2000년간 역사의 먼지 더미에 묻혀 있다가 공론조사로 부활했다"고 했다.
공론조사 기간은 주제에 따라 다르다. 간단한 주제라면 2~3개월로 가능하지만,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고 찬반이 대립하는 사안일수록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원전 정책도 에너지와 경제, 환경 등 여러 이슈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정부는 공론조사를 3개월 내에 실시하겠다고 했지만, 지역별 사전 공청회를 포함해 대규모 전국 여론조사와 충실한 자료집 준비 등에 필요한 시간 등을 감안하면 시간이 빡빡할 것"이라고 했다.
공론조사는 장점 못지않게 한계도 분명하다. 우선 "시민 배심원이 전체 국민을 대표할 수 있는가"란 문제를 제기하는 전문가가 많다. 공론조사는 1차 여론조사 응답자 중 시민 배심원을 선정한다. 최근 들어 여론조사 전화가 걸려오면 귀찮다는 이유 등으로 거절하는 사람이 갈수록 늘고 있다. 이른바 표본의 대표성 문제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10분 남짓한 전화 조사 응답률도 계속 떨어지는 상황에서 합숙까지 해야 하는 시민 배심원에 뽑히기를 거부하는 사람이 많다면 대표성 있는 인물로 구성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진다. 2013년 한국리서치 조사에선 국민 중에서 공론조사 시민 배심원에 '참여하지 않겠다'(68.3%)가 '참여하겠다'(31.7%)의 갑절 이상이었다.
한규섭 서울대 교수는 "사회참여에 적극적인 진보층의 공론조사 참여 의사가 보수층에 비해 일반적으로 높다"고 했다. 국내외 주요 공론조사에서 일반 국민 대상 1차 여론조사에 비해 시민 배심원 대상 2차 여론조사가 진보 쪽으로 쏠리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있다. 2006년 한·미 FTA 관련 공론조사에서 '일정보다 늦춰서 추진해야 한다'는 협상에 부정적인 의견이 1차 조사 54.3%에서 2차 조사에선 65.3%로 늘었다. 일본이 2012년 실시한 공론조사에서도 1차 조사 때 32.6%였던 '원전 제로(0)' 의견이 최종 조사에선 46.7%로 올랐다.
공론조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학습과 토론, 즉 숙의(熟議) 과정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는 학자도 있다. 조성겸 충남대 교수는 조사연구학회지 논문(2007년)에서 "토론이 의견 형성에 역할을 하기 위해선 토론 문화에 친숙할 필요가 있다"며 토론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 문화의 한계를 지적했다. 토론에서 모호한 언어를 쓰거나 핵심을 돌려 말하는 경향이 심한 우리나라에서 공론조사의 효용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공론조사가 고안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해본 경험도 적고 우리나라 여건에 맞는 방법론 개발을 위한 연구도 빈약하다. 그동안 공론조사 방법론과 관련한 국내 대학의 석·박사 논문이 단 한 편도 없을 정도다. 조사연구학회와 정치학회 등 관련 주요 학회들의 학회지에 실린 연구 논문은 3편에 불과하다. 공론조사에 국가 정책의 결정을 맡기는 것이 불안한 이유 중 하나가 우리나라의 공론조사가 아직 걸음마 수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