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조사 방법론 논문 하나 없는 나라에서…]

공론조사가 우리나라에서 주요 정책 결정에 처음 등장한 것은 2003년 7월이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의 대선 공약이던 서울 외곽순환도로 사패산터널 공사 백지화에 대해 결론을 못 내리다가 "공론조사로 정하자"고 제안하면서다. 그러나 터널 공사에 반대하던 측이 이에 응하지 않으면서 공론조사가 무산됐다. 이후에도 공론조사가 몇 차례 실시됐지만 성공적인 정책 수립과 사회 갈등 해결에 기여한 사례는 거의 없다.

노무현 정부는 2005년에 8·31 부동산 대책 수립을 위해 공론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를 두고 수도권으로 조사 대상을 한정하고, 1차 여론조사 표본도 511명에 불과해 '끼워맞추기식 여론 수렴'이란 비판이 있었다. 당시 정부는 공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강력한 부동산 규제를 실행했지만 집값을 잡는 데 실패했다. 2006년 9월에는 SBS 방송이 한·미 FTA를 주제로 공론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대상이 서울 800명에 그쳐서 전 국민 의사 파악에는 부족했다는 평가다.

2007년 1월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연초 기자회견에서 제안했던 헌법의 대통령 임기 조항만 고치는 이른바 '원 포인트 개헌'에 대한 공론조사가 이뤄졌다. 원포인트 개헌 찬성이 1차 조사 41.8%에서 2차 조사 56.1%로 상승했지만 야당의 반발로 개헌은 무산됐다.

2013년 10월부터 20개월간 운영됐던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는 공론조사 등으로 권고안을 마련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정부는 최근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사용후핵연료 정책에 대해 "다시 공론화를 거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