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희 TV조선 기상캐스터

이번 주말에도 중부지방에 비가 옵니다. 남부는 폭염이 이어지고요. 지난 주말 모습과 닮았지요. 저는 일주일 전, 서울에서 비를 좀 맞다가 폭염 속 울산으로 달려갔습니다. 20년 전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요.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나이 서른에 우린'이라는 노래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나이 서른에 우린/ 어디에 있을까/ 어느 곳에 어떤 얼굴로 서 있을까/ 무엇을 사랑하게 될까/ 젊은 날에 높은 꿈이 부끄럽진 않을까'라는 가사의 노래를 부르며 저와 친구들은 '서른의 나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항아리에 모아 방송실 앞 화단에 묻고, '만 서른 살, 2017년 7월 17일'에 열어보자고 약속했지요. 당시에는 제헌절이 공휴일이라 그리 정했습니다.

드디어 지난 주말, 1998년의 약속이 실현되었습니다. 20년 만에 6학년 4반이 학교에서 모였어요. 은사님을 마주할 때는 눈물이 왈칵 날 만큼 감동적이었습니다. 달려도 끝이 안 보이던 운동장은 아담하게 느껴졌고요. 교정에서 추억담을 나누다가 당시 소풍 명소였던 바닷가에 갔습니다. 선생님과 친구들 모두 얼굴도 성격도 어릴 때 그대로여서 잠시 세월을 망각했는데, 대부분 결혼해서 엄마 아빠가 되었더군요. 열세 살 어린이들이 그때의 담임선생님 나이가 되어 열심히 사회생활을 하고 있고요.

열대야 속 한여름 밤, 회상도 실컷 하고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눈 깜짝하면 또 50세의 우리가 만나고 있겠지요?

참, 편지는 결국 찾지 못했습니다. 지나간 세월만큼 화단도 훌쩍 높아졌더라고요. 진정한 타임캡슐은 어른이 되어 어릴 적 꿈을 떠올려보는 우리의 모습이었던 것 같아요.

서울로 돌아와 일을 하다가 문득 1998년의 여름 날씨를 찾아봤습니다. 확실히 지금보다 기온이 낮은데, 7월 하순의 서울 날씨는 올해와 비슷하네요. 30도 안팎의 무더위가 예상됩니다. 20년 후의 이맘때는 또 어떤 모습일까요? 다른 건 몰라도 날씨는 더 더워지지 않길 소망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