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에 사는 주부 김모(37)씨는 미국 영어교재를 쓴다는 학원에 다섯 살 딸을 보내고 있다. 유아 음악교실엔 일주일에 두 번 간다. 사립 유치원에선 수업이 끝나면 영어·발레·과학 놀이 수업을 별도로 해준다. 김씨는 "그래도 딸이 남들 다 하는 학습지도 안 하고 중국어 공부도 안 해서 불안하다"고 했다.

우리나라 영·유아들의 하루를 조사했더니 학습시간은 과한데 반해, 바깥에서 뛰노는 시간은 부족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육아정책연구소 '영·유아의 하루 일과에 비추어 본 아동권리의 현주소 및 개선 방안' 연구에 따르면 5세 아동의 평일 기준 학습 시간(가정 양육 아동 기준)은 3시간에 육박할 정도인데, 바깥 놀이 시간은 1시간 4분 정도였다. 지난해 전국의 2세와 5세 아동을 보살피는 부모·교사 총 2276명의 응답을 분석한 결과다.

호주에선 신체 활동 3시간 권장

사교육을 시키는 시기가 앞당겨지면서 한국 아이들은 영·유아 때부터 공부에 찌든다. 이번 조사에서 가정 양육 아동을 기준으로 만 2세 아이는 학습 시간이 하루 1시간 9분, 5세 아이는 2시간 55분으로 나타났다. 해외에선 영·유아에겐 아예 권장 숙제 시간(집에서의 공부 시간)이 존재하지 않고, 초등학교 저학년이라도 '하루 30분 이내' 혹은 '일주일에 15~20분 걸리는 1~3개 숙제' 정도가 적당하다고 권장한다.

한 유치원에서 어린이들이 컴퓨터 수업을 받는 모습.

[영국연방에 속하는 나라 호주]

취학 전부터 공부에 매달리다 보니 밖에서 뛰놀 시간은 부족했다. 평일 만 2세 놀이 시간 중 신체 활동 위주의 바깥 놀이 시간은 1시간 10분이었다. 만 5세도 1시간 4분에 불과했다. 호주 보건부의 경우 적당한 놀이 시간을 정해 권장하는데, 특히 만 3~5세는 '최소 3시간 이상의 신체 활동을 하라'고 한다. 영·유아 모두 1회에 한 시간 이상 앉아있거나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면 안 된다는 내용도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의 영·유아는 신체 활동 시간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육아정책연구소 연구팀은 "과다한 사교육으로 영·유아들의 건강한 성장 발달이 저해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전자기기 노출은 '비상'

이번 연구에선 TV·스마트폰 등 전자기기에 빠진 우리나라 영·유아의 놀이 문화 실태도 나왔다. 평일 전자기기에 노출되는 시간은 만 5세가 1시간 12분, 만 2세는 1시간 14분으로 조사됐다. 시청각 프로그램이나 인터넷을 통한 교육 시간까지 합하면 전자기기에 노출되는 시간은 영·유아 모두 2시간을 넘어선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미국 소아과의사협회(AAP)와 호주 보건부는 2세 이하의 영아는 TV나 다른 오락 매체에 아예 노출되지 않도록 하고, 만 2~5세 경우에도 1시간 이하(호주 보건부)로 권고한다. 김은영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과도한 사교육이 되레 아동들에게 불안·우울과 같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