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란 원래 그런 것이고, 욕하면서 보는 것이 이른바 ‘길티 플레져’의 속성이다. 인간이란 매우 다면적이어서, 도덕적인 것을 보고도 즐거워하지만 비도덕적인 것에도 끌린다.

그걸 가장 잘하는 곳이 CJ계열의 Mnet이다. 시즌 1, 2가 방송된 ‘프로듀스 101’은 절박한 아이돌 지망생들을 모아놓고 ‘인성의 바닥’까지 보여준다. 여성 아이돌 편이 방송됐을 때는 또래 아이들은 물론 ‘삼촌팬’까지 달려들었고, 남자 아이들이 나오면 또래 여자 아이들과 ‘이모팬’이 가세한다. 실시간방송, 다시보기, 실시간투표 돈 나올 구멍에서는 돈을 쏙쏙 빼낸다. 삼촌팬이나 이모팬이라는 말은 얼마나 도덕적인가. 미성년(혹은 그렇게 보이는)에 대한 ‘성적 욕망’을 ‘근친의 배려’로 치환해준다.

일개 기자가 아무리 비판한다해도, 이런 대단한 프로그램이 폐지될 일도, 그 인기가 떨어질 일도 없다. 그러나 대체 우리가 무슨 짓을 하는지를 적어두는 것이, 훗날 이 변태적 욕망의 실재화에 대한 하나의 증거는 될 수 있을 것이다.

Mnet에서 지난 13일 ‘아이돌학교’가 새롭게 방송됐다. ‘걸그룹 인재육성 리얼리티’, ‘노력으로 성장해가는 학생들의 꿈이 이루어지는 학교’라는 말이 붙어있다. 여학생들에게 물 뿌리기, 옷을 젖게 만들어 클로즈업으로 잡아내기 같은 포르노적 카메라 움직임을 다 말하는 건 시간낭비다.

아이돌학교 숙소.

가장 눈길을 잡은 장면은 40명의 '아이돌 지망생'이 잠드는 공간이었다. 온통 핑크벽에 핑크 잠옷, 핑크 침구…. '이러고도 유아성애자가 되지 않을테냐'고 묻는 듯한 화면 요소로 시선을 잡는다.
'핑크'보다 더 주목해야 하는 건, 학교가 제공하는 숙소다. '아이돌학교'는 학교라는 설정임에도 '군대식 내무반'처럼 꾸몄다. 과거 '내무반'이 침구를 오와 열을 맞춰 생활했다면, 2010년 이후 군 '생활관'에서는 10명 내외가 침대에서 잔다. 요즘은 군대에서도 줄 맞춰 TV에서처럼 40명이 요 깔고 자는 경우는 드물다.

요즘 병영 생활관.

일부러 이렇게 단체숙소를 만든 것은 ‘소녀들이 같은 이불을 덮고 단체로 누워있는 샷’을 연출하기 위해서다. 성적 도착자들이 몸매를 과감히 드러낸 프로패셔널 누드 모델보다 미숙한 아이들의 치맛 속에 더 집착한다는 건 알려진 사실이다. 변태가 아닌 ‘오타쿠’ 문화만 봐도, 비슷하다. 집체(集體)가 주는 몰개성, ‘집단성’에 숨겨진 여학생의 ‘섹시함’을 발견하는 과정, AV오타쿠 상상력의 시작이다.

아이돌학교 이미지.

분홍의 침구에 흐트러짐 없이(그러기 위해 아이들은 잠자리에서도 메이크업을 지우지 않았다) 누운 여학생들. 방송이 보여주는 것은 ‘교복이나 단체복 속에 집단적으로 갇힌 소녀들’이다. 핑크색 잠옷을 입은 소녀가 떼로 누워있는 장면은 대놓고 ‘성적 판타지’를 자극한다. 소녀들은 ‘집단, 수동적, 몰개성’에 갇혀있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소비자(시청자)가 돈(인터넷투표)을 내면 하나하나의 개성을 가진 아이돌이 되는 구조니까 말이다. 돈을 쓸 창구는 언제나 열려있다.

이 화면을 보고 떠오른 것은 군국주의적 행렬의 모습이었다.
1930년대 나치가 뉘른베르그에서 전당대회를 열 때 가장 공들였던 퍼포먼스는 집단 행진이었다. 남성들만의 몫은 아니었다. 나치는 '독일소녀연맹(German Girls' League)'을 만들어 '바람직한' 여성상을 주입했다. 히틀러의 개인적 여성관은 "부드럽고, 상냥하고, 맹해야(tender, sweet, and stupid)한다"였지만, 이 소녀연맹에서는 가정과 국가에 봉사하는 여성들을 키워낸다고 했다. 그 중엔 10세 소녀도 있었다.

1930년대 독일소녀연맹.

‘반복성’ ‘집단성’은 CNN이 “지구상에서 가장 놀라운 쇼이자, 동시에 최악의 잔인함을 도출한 쇼”라고 평가한 북한의 집단체조를 연상시키도 한다. 북한에서는 ‘아리랑’ 같은 집단체조를 “체육기교와 사상예술성이 배합된 대중적인 체육형식”이라고 정의하고, “청소년 학생들과 노동자들을 건장한 체력으로 튼튼히 단련시키고 조직성, 규율성, 집단주의 정신을 키우는 효과적 수단”이라고 한다.

2013년 아리랑게임 퍼레이드의 한 장면.

독일과 북한의 '여성집단'이 국가이익에 봉사한다면, '아이돌학교'의 소녀집단은 성적환상에 복무하라는 뜻일까.
12세에게 화장을 시켜서, 22세 여성에게는 '세일러 교복'을 입혀 모든 출연자의 나이를 '여고생'으로 수렴시킨다. 그리고 이 '여고생 '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세일러 교복'과 '부루마'를 단체로 착용함으로써 완성된다.
부루마는 미국의 '블루머'를 일본식으로 발음한 것. 20세기 초 여성운동가들이 '여성복을 간소하게 만들자'는 취지로 만들었던 블루머(bloomers)는 일본 1930년대 일본으로 건너가 부루마가 됐다.

1900년 미국의 블루머.

이름만 바뀐 건 아니었다. 부루마는 일본 여학생의 체육복으로 채택되는데, 어쩐 일인지 길이는 점점 짧아졌다. 주로 일본 애니메이션에 ‘팬티 보인다’하는 장면에 등장하는 부루마는 그 모양은 반바지이되 길이는 팬티급이다. 당연히 유아성애자들의 애착 아이템이다. 여권(女權)이 낮은 일본에서도 이 부루마의 부적절함은 논란이 됐고, 결국 1990년대 이후 학교에서 퇴출 단계에 접어들었다.

1960년대 '부루마'를 입은 일본 여학생들.

단체로 짧은 반바지를 입히고, 여자라고 침구까지 분홍색으로 통일하고, 밤에는 줄을 맞춰 이불을 깔고 자는 학교…. 이런 시대착오적인 학교에서 ‘사랑하는 아이돌’ ‘K팝 산업 역군들’이 길러지고 있다. 이런 프로그램의 지원자가 미어 터진다해서, 그 부도덕함이 상쇄되는 건 아니다. 집단적으로 소녀들의 성적 이미지를 착취하는 이 프로그램을 앞으로 10주 더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