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장관 후보자(지금은 후보자가 아니다)가 '골프' 때문에 구설에 올랐다. 해군참모총장 출신의 이 후보자는 천안함 폭침과 연평해전 추모식날 골프를 쳤으며, 최근 5년간 군 골프장에 무려 295차례 방문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됐다.

물론 이 논란을 키운 핵심은 골프가 아니다. 하필이면 골프를 친 날이 국가적인 추모일이었다는 게 문제였다. 그런데 만약 이 후보자가 골프가 아닌 배드민턴을 쳤거나 헬스장에 갔다면 어땠을까? 비난의 강도가 조금은 줄어들지 않았을까. 골프는 왜, 유독 정치인과 만나면 '밉상 운동'이 되는 걸까.

골프는 600년의 역사를 지닌 스포츠다. 정확한 유래는 불분명한데, 유럽의 목동들이나 항구의 상인들이 막대기로 공을 치며 놀던 것에서 시작됐다는 게 유력한 설이다. 문헌에 남은 기록에 따르면 15세기 중엽부터는 스코틀랜드의 왕족과 정치인들 사이에서 '골프 경기'가 치러졌다. 1575년엔 스코틀랜드의 국가 관리자들이 국방을 위한 활쏘기 훈련은 소홀히 한 채 골프에만 몰두하자 '골프 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메리 여왕은 평생 골프채를 놓지 않을 만큼 골프를 즐겼다고도 한다.

우리나라에 골프가 들어온 건 1900년이다. 정부 세관관리를 담당하던 영국인들이 원산 바닷가에 있던 세관 건물에서 6홀의 코스를 만들어 놓고 골프를 친 게 최초다. 이후 대한제국의 영친왕이 현재의 서울 어린이대공원 땅을 무상으로 대여하여 대한민국 최초의 18홀 골프장을 만들었고, 1929년 개장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골프는 매우 생소한 운동이었다. 골프가 비로소 전 국민에게 익숙해진 건 1998년 박세리가 LPGA 투어에서 우승하면서부터다.

한국에서 '귀족 스포츠' 딱지 붙은 배경은?

사실 골프는 한국뿐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귀족 스포츠'란 인식이 강하다. 어떻게 즐기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대체로 골프 장비와 회원권을 장만하는 데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골프가 상대방에 대한 매너를 중요시하며, 상류층 인맥을 쌓을 수 있다는 점도 이를 '귀족 스포츠'로 자리매김하게 한 이유가 됐다.

한국에서는 지형적인 여건 때문에 골프 대중화가 쉽게 되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국토가 좁을뿐더러, 넓고 평평한 땅도 부족해 골프장을 짓기 위해서는 산을 깎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환경 파괴 문제도 거론돼 골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더욱 키웠다. 골프장 건설이 어렵다 보니 이용 요금도 세계에서 비싼 축에 속한다.

한국 골프산업은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울고 웃었다. 대부분의 한국 대통령은 골프를 좋아하고 즐겼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역대 대통령과 골프에 얽힌 이야기들을 살펴보자.

(왼쪽부터) 이승만대통령배골프대회에서 트로피를 수여하고 있는 이승만 전 대통령, 청와대 골프장으로 이동 중인 박정희 전 대통령, 골프를 치고 있는 전투환·노태우 전 대통령.

한국 최초의 골프장은 일본보다 빨랐지만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주둔하며 모두 군사 시설로 사용됐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당시 주한 미군들이 한국에 골프장이 없어 주말마다 일본 오키나와에 간다는 얘기를 듣고 골프장 복구를 지시했다. 미군들이 오키나와에 간 사이에 전쟁이 발발할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1950년 5월, 이 전 대통령의 지시로 어린이대공원 자리의 군자리 골프장이 재개장했다. 그리고 한 달 뒤인 6월, 6·25 전쟁이 발발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걱정대로 미군과 정부 관리들이 오키나와로 골프라도 치러 갔더라면 역사가 어떻게 뒤바뀌었을지 모를 일이다. 비록 미군을 위해서였지만, 이 전 대통령은 한국 골프 발전의 포문을 열었다. 다만 본인은 고령의 나이 때문인지 골프를 치지 않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테니스를 좋아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골프도 그것 못지않게 좋아했다. 한국 대통령 중에선 필드에서 골프를 친 최초의 인물이다. 해외 순방 때 외국 정상들이 골프를 즐기는 모습을 보고는, 한국에 돌아와 "미래의 인재들이 골프를 모르면 나라 망신"이라고 했다. 본인이 아끼던 육군사관학교 인근에 골프장을 짓고, 정부 관리들에게도 골프를 권장해 청와대에는 한때 '골프 붐'이 일었다. 골프대회도 수시로 열어 골프 활성화에 기여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공을 친 뒤 골프채를 캐디에게 주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스스로 총대를 메듯 골프채를 걸치고 "잔디밭이 좋다"며 걸었다고 한다. 또 라운딩이 끝난 후에는 막걸리를 마셨다. 훗날 이런 그의 독특한 스타일을 일컬어 '박정희식(式) 골프'라는 말이 생겨났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정치인들의 골프에 관대했고 자신도 골프를 매우 사랑했다. 타고난 운동신경 덕에 실력도 좋았다고 한다. 대통령 전용 별장이던 청남대에 간이 골프장을 만들고 연습에 매진했다. 전 전 대통령의 골프 이야기는 퇴임 후가 더 흥미롭다. 가진 재산이 29만 원뿐이라면서 무려 20년 동안 30여 곳의 골프장에서 VIP 대접을 받으며 라운딩을 즐겼다. 심지어 전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순자 여사는 홀인원 기념으로 수백만 원짜리 나무도 심었다. 전 전 대통령 일가가 가진 회원권은 전체 골프 회원권 시세를 좌지우지할 정도였다. 의외로 인심이 후했던(?) 전 전 대통령이 골프장에서 풀 뽑는 아주머니들에게 즉석에서 금일봉을 주곤 했다는 일화도 전설처럼 전해진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집권한 6공화국은 '골프 공화국'이었다. 골프장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고, 일반 국민들도 골프를 즐기기에 이르렀다. 다만 노 전 대통령 본인은 '보통 사람' 이미지의 극대화를 위해 조용히 골프를 쳤다. 퇴임 후인 2003년에는 '골퍼들의 로망'이라는 홀인원을 기록하기도 했는데, 당시 노 전 대통령은 국민 정서를 고려해 이를 비밀에 부쳤다. 그의 홀인원 소식은 대한골프협회의 홀인원명부에 이름이 오르며 뒤늦게 알려졌다.

(왼쪽부터) 골프를 치던 중 균형을 잃고 넘어진 김영삼 전 대통령, 박세리 선수와 악수하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 골프를 치는 노무현 전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은 골프장에서 엉덩방아를 찧은 뒤 '임기 중 골프를 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인물이다. 사건은 1989년 김종필 당시 신민주공화당 총재와의 골프장 회동에서 발생했다. 비록 망신을 당하긴 했지만, 김 전 대통령은 이 회동을 통해 3당 합당을 이뤄냈고,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의 '불(不) 골프' 선언 때문에 골프 업계에는 먹구름이 드리울 수밖에 없었다. 청와대 골프장은 사라졌고 골프는 사치성 스포츠로 분류돼 많은 세금이 부과됐다. 일각에선 '김 전 대통령 자신이 골프를 못 쳐서 골프를 잡는다'는 얘기도 나왔다.

첫 진보정권을 연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골프를 치지 않았지만 골프 발전에는 관심이 많았다. 특히 1998년 박세리 선수가 US여자오픈에서 맨발 투혼으로 우승하자 골프를 '국민 통합'의 계기로 삼고자 했다. 박세리, 최경주, 김미현 등 골프 선수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훈장도 수여했다. 또한 '일반인을 위해 저렴한 골프장을 많이 건설해야 한다'고도 했는데, 덕분에 전임 김영삼 정부에서 꽁꽁 얼었던 골프업계가 해빙기를 맞았다. 한국골프장경영인협회는 '골프 광복일'이라는 표현을 써 담화까지 발표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골프를 좋아했던 대통령 중 한 명이다. 노 전 대통령은 1996년 총선에서 낙선한 뒤 골프를 시작했다. 대통령이 된 후에는 종종 청와대 뒤뜰에서 셔츠 차림으로 골프 연습을 했다. 골프 업계에서 '골프장 하나 지으려면 도장을 780개 받아야 한다'는 푸념이 나오자 규제 완화에 적극적으로 나섰으며, 일반 국민들을 위한 '반값 골프장' 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왼쪽부터) 부시의 골프 카트를 운전하는 이명박 전 대통령, 프레지던츠컵 관계자들과 기념촬영 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은 시간만 나면 테니스 코트로 달려갔다고 할 만큼 소문난 '테니스 광'이었다. 하지만 현대건설 재직 시절부터 골프도 즐겼으며, 재임 중에는 골프를 외교에 가장 잘 활용한 대통령이었다. 2008년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함께 골프 카트를 탄 다정한 모습이 사진에 찍혔다. 이 전 대통령은 추후 자신의 자서전에서 "골프 카트에서 부시와 대북정책 등 매우 중요한 현안들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며 "그 곳에서 어려운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풀려 나갔다"고 썼다. 하지만 골프장 과세 등의 문제는 별달리 손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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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성 대통령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본인도 골프를 치지 않았으며, 공직자 골프에 칼을 들이댄 인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취임 초인 2013년 북한의 도발 위협이 고조된 상태에서도 군 장성들이 골프를 쳐 물의를 빚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은 직접적으로 '골프 금지령'을 내리진 않았지만 청와대 수석들이 모인 자리에서 "바쁘셔서 (골프 칠) 시간이 있겠어요?"라며 우회적으로 말했다. 안타깝게도 골프가 한창 위축된 상황에, 우리나라에서 아시아 최초로 PGA 프레지던츠컵을 유치하게 되어 크게 화제가 되지 못하고 지나갔다. 박근혜 정부의 골프 금지령은 2016년, "좀 자유롭게 했으면 좋겠다"란 박 전 대통령의 말 한 마디로 비로소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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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통령과 골프의 묘한 상관관계]

누가 골프라는 스포츠에 이토록 '시커먼' 단어들을 결합하게 만들었을까. 아마도 우리나라의 뿌리깊은 '접대(接待) 문화'에 정답이 있을 것이다. 과거 요정(料亭)이나 유흥업소에서 술 접대를 하던 것에, 상류층 운동인 골프가 끼어들었고, 최근에는 골프 후 성접대까지 이어지는 '황제 골프'로까지 발전하게 됐다.

접대 골프의 유형은 다양하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끼리, 혹은 사업가가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에게 접대하는 경우가 그 예다. 접대 골프는 사실 직접적으로 로비를 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친목쌓기' 용이다. 한 번 골프를 치러 나가면 뒤풀이까지 7~8시간을 같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골프에 대한 인식을 나쁘게 만든 건 아무래도 그들 스스로의 탓이 크다. 국가 기념일이나 재난 상황에도 어김없이 골프장으로 향한 정치인이 있었고, 골프장에서 추태를 부려 문제가 된 정치인도 있었다.

골프 때문에 '욕'을 가장 많이 먹은 정치인은 아마도 이해찬 전 국무총리다. 그는 포천 군부대의 군인 14명 사망사건, 식목일 산불, 호의경보 발령 등 국가적인 사건 사고가 있을 때마다 골프를 쳐 비난의 대상이 됐다. 이미 여러차례 경고를 받은 상황에서 또다시 3·1절 기념일에 참석하는 대신 골프장으로 간 것이 드러나 결국 총리직을 내려놓고 말았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도 평소 성격처럼 거침없는 골프 사랑으로 몇 차례 논란을 일으켰다. 경남지사 재임 당시 미국 출장 중에 고급 골프장에서 라운딩 한 것이 발각된 게 시작이었다. 이후 박근혜 정부의 골프 금지령이 한창이던 2015년, 경상남도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골프대회를 열었다. 설상가상으로 무상급식은 중단한 채 그 세금을 골프대회 상금으로 사용해 비난의 목소리에 더욱 불을 지폈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골프를 친 것 자체가 아닌, 골프 도중 캐디를 성추행 한 혐의로 구설에 오른 전무후무한 인물이다. 박 전 의장은 당시 20대 캐디에 대해 "손녀 같아서 손가락으로 가슴을 툭 쳤을 뿐"이라고 기막힌 해명을 했다. 그는 이 일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건국대 석좌교수 재임용도 취소됐다.

미국도 예외는 아냐

정치인들이 골프 때문에 입방아에 오르는 건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오바마는 8년 재임 중 300번 이상의 라운딩을 즐겨, 미국 CBS가 선정한 '역대 두 번째로 골프에 성실한 미국 대통령'이 됐다. 그는 이라크 폭격이나 가뭄 중에도 어김없이 골프를 쳤으며, 특히 호화 골프 휴가로 논란이 된 적이 많다. 워싱턴포스트는 오바마가 나흘간의 골프 휴가에 혈세 40억 원을 썼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역시 소문난 '골프 광'이다. 그는 대선 기간 "대통령이 되면 골프는 안 칠 것"이라고 했지만, 이미 취임 164일간 35일을 골프장에서 보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내게 골프는 아름다움과 경쟁, 재미다. 나는 많은 거래를 골프 코스에서 성사시켰다"고 말했다. 최근엔 아베 총리와 함께 골프 회동을 하는 친밀한 모습이 화제가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연일 국제대회에서 승전보를 울리는 골프 선수들과는 다르게, 외교나 정치 환경에서의 골프는 상당히 위축돼 있다. 그 배경에는 골프에 대해 나쁜 이미지를 만든 정치인들의 잘못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골프는 '사치성 스포츠'로 몰려 국민들과 더욱더 멀어진다. 하지만 인류의 600년 된 놀이인 골프에는 죄가 없다. 그것을 잘못 즐기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