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9일 발생한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으로 ‘캐릭터 커뮤니티’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피의자인 김양이 공범 박양을 만난 곳이 캐릭터 커뮤니티(커뮤)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영향이 컸다. 지난 17일 방영한 ‘그알’에서는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을 다루면서 두 여고생을 이어준 캐릭터 커뮤니티의 존재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소위 아는 사람만 알던 커뮤니티세계가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방송 이후 캐릭터 커뮤니티는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올랐다. 온라인에서는 ‘캐릭터 커뮤니티가 뭐냐’는 질문이 쇄도했다. 이번 살인사건과 결부돼 주목을 받고 있는 커뮤니티에서 ‘캐릭터 플레이’를 하는 이들은 어떤 마음일까. 커뮤니티 이용자 A씨(20대 초반·여성)와 B씨(20대 후반·여성)을 만났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하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다. 현재 내부 분위기는 어떤가.
A: 진짜 그들(김양·박양)이 이상한 사람들인데 어쩌다 커뮤(커뮤니티)가 걸린 거라고 말한다. 절대 커뮤 하나만으로 이렇게 된 게 아닌데 언론에선 그렇게 몰아가니까 속 터지는 거다. 마치 커뮤가 악의 근원인 것처럼.
B: 다들 문제가 있던 사람이 커뮤니티를 한 거지 커뮤니티를 했기 때문에 문제가 된건 아니라고 이야기 한다. 또 이 사건에 관해 트위터에 글을 남긴 적 있다. 는 내용이다. 이 글이 이쪽(커뮤) 사람들한테 RT(리트윗)가 굉장히 많이 됐다. 다들 공감해서 그런 것 같다.

―언론이 커뮤니티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B: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언론이 커뮤니티를 조명하는 이유는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인 것 같다. 예를 들면 산악회 회원 중 누군가 등산하는 부녀자를 살해 했다고 치자. 그때 사람들은 "산악회가 문제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산악회가 뭔지 아니까. 그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속한 집단과 사람을) 분리한다. 그런데 이쪽(커뮤니티)는 전혀 모르니까 그렇게 못하는 것 같다. 사실 또라이는 어디에나 있지 않은가.
A: 동의한다. 아무래도 만만해서 그런 거 같다. 서브 컬쳐고 건드리기 쉬우니까 다들 이렇게(커뮤가 문제라고) 말하는 거다.

―그런데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 무엇인가?
B: 개인적으로 이 사건은 강남역 살인사건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강남역 사건에선 여성들의 문제였는데 조현병으로 치부되지 않았나. 굳이 인터뷰에 응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내가 한 때 몸담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좋아하는 문화에 관한 일이니까 변호를 하고 싶었다.

―커뮤니티를 잘 몰라서 커뮤의 문제로 몰아간다고 말했다. 커뮤니티가 무엇인지 설명해달라.
B: 총괄(운영자)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게임의 세계관처럼 세계관을 만들어 놓는다. 예전에는 개인 홈페이지 제작을 통해 이뤄졌는데 요즘에는 네이버 카페나 트위터, 카카오톡을 통해 이루어진다. 총괄 및 운영진이 앞으로의 이야기가 진행될 세계관을 제공하고 기본적으로 그 세계의 한계나 캐릭터들의 외모·종족을 설정해준다. 그리고 참가자 모집기간을 연다. 커뮤니티 홍보글이 올라오면 사람들이 그 홍보를 읽고 들어와 가입신청서를 넣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게임의 경우 그 세계관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캐릭터를 '고른'다면 커뮤에선 참가자가 직접 캐릭터를 그린다. 자캐(자신이 만든 캐릭터)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구성한 신청서를 제출하고, 합격자 발표가 나면 카페나 트위터를 비공개로 전환하고 커뮤를 시작한다. 게임에 창작, SNS가 더해졌다고 보면 된다.

―커뮤에선 주로 뭘 하는가?
A: 컴퓨터로 그림을 그린다. 주로 한역(한줄 역할극)이라는 걸 한다.
B: 세계관을 바탕으로 스토리를 진행하는 게 목적인 경우엔 합발(합격자 발표) 하자마자 미션을 발표하고 그 미션에 맞춰 릴레이 만화를 그린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냥 온라인으로 모여서 그림을 이어 그리며 놀았다.

―한줄 역극이 뭔가?
A: 자캐(자신의 캐릭터)로 짧게 댓글로 역할놀이를 하는 것이다. 커뮤를 시작할 때 캐입(캐릭터 이입)과 오입(오너 이입)으로 나뉘는데 이 설정에 맞춰서 역할 놀이를 진행한다. 예를 들어, 어떤 스토리가 담긴 그림을 올린 후 댓글을 달 때 캐입의 경우에는 캐릭터에 이입해 연기를 한다. 반면 오입의 경우 캐릭터 창작자로서 이야기한다.
B: 캐입과 오입의 차이는 연극에 비유하자면 무대 위에 선 배우와 스텝의 차이다.

―캐입(캐릭터 이입)을 하다보면 현실과의 경계가 무너진다거나 너무 몰입하거 할 위험은 없는 건가.
A: 오입보다 캐입이 동화가 더 쉬운 건 맞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라면 그 사람 자신이 캐릭터가 아님을 안다.

―솔직히 캐릭터와의 경계가 무너지고 너무 이입한다 싶은 순간은 없었나.
A: 솔직히 있다. 밤샐 때. 마음에 드는 캐릭터를 만나서 고록(고백로그)을 밤새 열심히 팠는데(그렸는데) 그때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B: 개인적으로 그런 적 없었다. 고등학교 때 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매일 커뮤를 뛰었지만 이걸 하기 위해 오히려 일상에 충실했다. 커뮤를 더 잘 뛰고 싶어서.

―(A에게) 일상이 무너지는 것 같을 땐 어떻게 하는가?
A: 그냥 캐릭터는 캐릭터일뿐 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롤플레잉이 가진 힘이 있지 않냐. 두 분은 시리어스나 고어물을 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이 두 장르에 경우 롤플레잉이 갖는 힘에 자극적 요소까지 더해져 몰입이 더 쉬울 것 같다.
A: 보통 시리어스의 경우 스토리가 탄탄하다. 힐링물은 그냥 잔잔하게 가면 되는데, 시리어스는 클라이막스가 있다. '월드워Z'나 '부산행', '연가시' 같은 영화가 '시리어스 스토리'의 전형이라고 보면 된다. 기승전결이 확실해 묘미가 있는 것. 그 묘미를 알고 그것만 뛰는 사람들도 많다. 근데 모든 시리어스가 그렇진 않다. 고어는 한 번도 안 뛰어봐서 잘 모른다.
B: 조니뎁이나 히스레저처럼 배우들 중에 자기 캐릭터에 빠져서 그로인해 우울증이 오거나 현실과 (영화의) 경계가 무너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럴 경우에 개인의 정신적 문제로 접근하지 영화나 배우라는 직업이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말하진 않는다. 그 사람이 워낙 몰입을 잘 하는 사람이었던 거지 배우들 모두가 그런 건 아닌 것처럼.

―다른 사람한테 커뮤한다고 말한 적 있나.
A: 일단 만화 좋아한다고 하면 "쟤 오타쿠"라는 식으로 편견을 갖는다. 심지어 롤플레잉이지 않나. 그러면 어른들이 볼 때는 니 생활이나 잘 하지 왜 캐릭터를 만들고 노냐, 시간 낭비한다 라는 시선이 많다.
B: 주변에 말한 적 있지만 비웃음을 당한 적은 없다. 그런데도 스스로 경계를 하고 있더라. 고2때 만화부장이었다. 부장이 되자마자 했던 말이 '우리는 만화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업신여김을 쉽게 당한다. 아이돌 좋아하는 건 별 말 안하면서 만화 캐릭터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쟤 뭐냐는 식으로 쳐다보니 우리는 만만하게 보여서도 그렇다고 싸워서도 안 된다. 왜냐면 저들이 우리에게 가진 이미지를 강화시키는 행동일 테니까. 그러니까 최대한 노멀하게 행동하자'였다. 속으로는 걱정을 했던 것 같다.

―커뮤를 하는 이유는 뭔가?
A: 진짜 그냥 즐거워서 한다.
B: 내가 만든 캐릭터가 자기만의 스토리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정말 신기하고 재밌었다.

―구체적으로 뭐가 재밌는가?
A: 좋아하는 남자 배우가 누구냐.

―공유다.
A: 커뮤에 가면 공유 같은 캐릭터가 진짜 있다. 근데 그 캐릭터가 나한테 말을 건다. 심장이 떨리겠냐 안 떨리겠냐.
B: 드라마 볼 때 남주한테 설렌 적 없나. 저 캐릭터가 가짜인 걸 알고 작가와 PD, 제작진이 뒤에 있다는 걸 다 알고 저게 진짜가 아니란 걸 알지만 참 남자 주인공 잘생겼네 하면서 보게 되지 않는가. 커뮤에선 심지어 그 캐릭터가 내게 말을 건다. 그래서 그게 (캐릭터가) 가짜라는 걸 알지만 심장이 떨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유사연애 감정인가?
A: 그렇다. 캐입(캐릭터 이입)을 하면서 앤캐를 만들다보면 좀 더 유사연애 같은 느낌이 있다. 그래서 최대한 그 감정을 배제하고 선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이번에 김양과 박양도 앤오관계(애인오너)였다고 한다. 김양의 경우 너무 몰입한 나머지 애인관계인 박양의 지시를 거스를 수 없다고 했는데 이에 동의하는가.
A: 보통은 아무리 몰입한다고 해도 사람을 죽이거나 명령을 따르진 않는다. 앤오관계이기 때문에 서로의 감정을 더 긴밀하게 이해하거나 공감하는 건 이해할 수 있으나 이번 건 아니다. 보통의 경우라면 연을 끊거나 그건 아니라고 앤오에게 말을 할 것이다.

―커뮤가 자기계발에 도움이 되던가?
A: 현재 전공과 관련이 있어서 도움은 됐다.
B: 그림 실력이 많이 늘었다. 밤새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냈으니까.
A: 도움이 돼서 커뮤를 한 건 아니다. 빵집 차리려고 베이킹 취미를 만들진 않는 것처럼. 근데 베이킹은 너 왜 베이킹 하냐 돈 아깝게? 라고 묻지 않는다. 근데 만화 쪽은 시간 아깝게 이거 왜 하냐는 말이 꼭 나온다. 서브 컬쳐에 대한 편견 같다.

―본인에게 커뮤란?
B: 일상의 단비다.
A: 소통할수 있는 즐거운 곳이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많지 않고 취미도 맞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인터넷에 가면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이상한가?라는 생각으로 주눅이 들어 있었는데 커뮤를 뛰면서 난 혼자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서 아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다는 것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