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8시 8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굳은 얼굴로 도쿄 도심 신주쿠의 프랑스 식당을 나섰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 등과 이른 저녁을 먹고 귀가하는 길이었다. 식당 앞에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이 "도쿄도의회 선거에 대해 한 말씀 해달라"고 외쳤다. 아베 총리는 '할 말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한마디도 없이 차에 탔다.

아베 총리는 2012년 12월 재집권한 뒤 중·참의원 선거 4차례, 중·참의원 보궐 선거 3차례에서 연승했다. 선거 날마다 전국 각지에서 자민당 당선자와 당직자들이 "반자이!(만세)"를 외치고, 아베 총리가 카메라 앞에서 환한 얼굴로 감사 인사를 하는 장면이 반복됐다. 이날 선거는 그런 장면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고이케 유리코 일본 도쿄도지사가 2일 치러진 도쿄도의회 선거에서 당선이 확실한‘도민 퍼스트회’ 소속 후보 이름 위에 장미 모양의 리본을 붙이고 있다.

오후 8시 투표가 끝나기 무섭게 NHK가 출구 조사를 토대로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 과반 달성할 듯'이란 자막을 띄웠다. '자민당 패배 확실시'라는 자막이 곧이어 '자민당, 역사적 대패 가능성'으로, 다시 '최악의 참패 될 듯'으로 바뀌었다. 고이케 지사가 이끄는 신생 정당 '도민퍼스트회' 상황실에서 "반자이!" 함성이 연거푸 터져 나왔다. 3일 0시20분 현재 고이케 지사 세력이 도민퍼스트회(49석)와 공명당(23석), 고이케 지사와 연대한 지역 정당 및 무소속 당선자(7석)를 합쳐서 127석 중 79석을 확보했다는 집계가 나왔다. 반면 자민당은 23석을 확보하는데 그쳤다. 기존 의석(56석)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기존 최저 의석 기록(2009년 38석)에도 15석 모자라는 결과다.

일본 언론은 이날 선거로 고이케 지사가 '포스트 아베' 위치를 굳혔다고 분석했다. 올 하반기부터 개헌 정국으로 가겠다는 아베 총리의 구상도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고이케 지사의 도민퍼스트회는 창당 6개월 만에 처음 치른 선거에서 출마자 50명 중 49명을 당선시켰다. 고이케 지사는 "'도쿄 대개혁'에 대한 유권자들의 기대가 가져온 결과"라고 했다.

[일본 언론 "아베, 소녀상 조기철거 요구할 것"]

마이니치·니혼게이자이 신문 등은 "아베 정권 핵심 인사들이 총리 친구가 운영하는 사학법인에 수의학부 신설 특혜를 주도록 공무원들에게 압력을 넣은 '가케학원 스캔들' 등이 최대 패인"이라고 보도했다. 정권의 독선에 대한 불만도 '아베 피로감'을 부추긴 것으로 보인다.

고이케 지사는 민영방송 앵커를 거쳐 40세 때 정계에 입문했다. 2002년 자민당에 정착하기 전까지 당적을 여섯 번 바꿔 '와타리도리(渡り鳥·철새)'라 불렸지만, 이후 '자민당 당3역을 지낸 첫 여성 정치인', '자민당 총재 선거에 도전한 첫 여성 정치인' 등의 기록을 세우며 승승장구했다. 아베 총리가 1차 집권했을 때 첫 여성 방위상도 지냈다.

하지만 2012년 자민당 총재 선거 때 아베 총리 말고 다른 후보를 지원해, 아베 총리가 2차 집권에 성공한 뒤 이렇다 할 역할을 맡지 못했다. 절치부심하던 고이케 지사는 작년 7월 전임 도쿄도지사가 돈 문제로 사임했을 때 당내 반대를 무릅쓰고 출마해 당선되면서 다시 주목을 받았다.

당선된 이후 쓰키지 수산시장 이전 문제, 도쿄올림픽 경기장 예산 재검토 등 실생활과 관련된 이슈를 골라 피부에 와 닿는 개혁을 추진해 60% 이상의 높은 지지율을 확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