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 출신 패션 마케터인 내게 세계적 패션 도시 뉴욕에서의 삶은 패션에 대한 애정을 더 열정적으로 피어나게 한다. 그런데도 아침만 되면 옷으로 가득 찬 옷장을 열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도대체 이 많은 옷 중에 왜 입을 옷이 없을까?'
영화 '섹스 앤드 더 시티'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옷장은 여자에게 마음의 안식처이자 치명적인 고민 덩어리다. 유명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는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면 거울을 보고 자기 자신부터 연구하라고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생각할 겨를마저 쪼개 살아야 하는 시대다. 누군가 내 스타일을 결정해 주고 그에 맞는 옷을 챙겨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온라인 패션 회사 '스티치 픽스'는 스타일에 맞게 옷을 추천해주는 퍼스널 쇼퍼와 온라인 매장을 절묘하게 결합했다. 신체 사이즈 정보를 입력하고,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시도해보고 싶은 옷 이미지를 선택한다. 이런 식으로 한참 고르다 보면 심리 테스트 받는 느낌이 든다. 스티치 픽스는 이를 데이터화한 뒤 최신 트렌드를 반영해 소비자 취향에 맞는 옷과 액세서리를 선택한다. 패션에 최적화된 인공지능(AI)인 것이다. 반품 관련 데이터도 축적된다. 내가 무얼 좋아했고,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는지 분석해 다음에 더 나은 스타일의 옷을 보내준다.
패션은 과학이다. 인간이 옷을 만들어 입기 시작한 이후 소재나 직조, 생산 공정 등 많은 것이 기술과 함께 진화했다. 이젠 인간 심리까지 파고들어 생활을 새롭게 재단하고 있다. SF 거장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 '파운데이션'에 나오는 새 학문 '심리역사학'은 과학적 데이터로 미래를 예측하고 인류와 문명의 멸망과 부활을 연구한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은 "아시모프의 심리역사학이 현존하지 않는 학문이어서 경제학을 택했다"고 했지만 패션계에선 AI 덕에 이미 '심리패션학'이 움튼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