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신고리 5·6호기 포기 여부를 시민배심원단 판단에 맡기겠다는 것은 법 절차로 봐도 문제가 있다. 신고리 5·6호기는 법 규정에 따라 원자력안전위원회가 3년 7개월의 안전성 심사를 거쳐 작년 6월 승인을 내줬다. 원안위는 여야가 추천한 4명을 포함해 9명 위원으로 구성돼 민주적 대표성도 갖춘 조직이다. 원안위 심사를 통과해 이미 1조6000억원이 투입된 원전 건설을 정부가 교체됐다고 중단시키고, 민간인 비(非)전문가들에게 재(再)심사를 맡기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것이다. 계약 불이행 보상금을 합쳐 2조6000억원 손실은 국민 세금으로 메꿀 수밖에 없다.

정부는 새 원전은 짓지 않는 대신 풍력·태양광 등의 신재생에너지를 늘리겠다고 하고 있다. 현재 풍력·태양광 전기 비중은 채 1%도 안 된다. 이걸 20%까지 늘리려면 서울 절반 면적(3억㎡)에 꽉 들어찬 태양광과 제주도보다 넓은 면적(29억㎡)의 풍력 설비를 갖춰야 한다. 우리 같은 좁은 국토에서 가능한 일인가. 탈원전 결정을 하려면 에너지 조달의 안정성 예측, 전기 요금 인상에 따른 산업 경쟁력 영향, 경합 에너지 대안들의 기술 진보 전망 등 복잡한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이런 문제에 대해 전문 지식이 없는 시민들이 틈틈이 전문가 설명을 들으면서 석 달 안에 균형 있는 판단을 내리길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다. 원자력은 비전문가로선 용어 이해조차 어렵다. 그 시민배심원이 정말 균형 있게 뽑힐 가능성도 높지 않다.

우리는 프랑스·중국·러시아와 함께 4대 원자력 기술 강국으로 꼽힌다. 연관 일자리만 10만개라고 한다. 5년 임기 대통령이 반도체·휴대폰에 못지않은 기술 경쟁력을 갖춘 산업 분야의 문을 닫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원자력엔 사고 가능성과 사용후 핵폐기물 처리라는 난제가 있다. 반면 석탄은 석탄대로, 풍력·태양광은 그것대로 문제를 안고 있다. 결국 적절한 배분으로 에너지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기술 진화에 대응해가야 한다. 정부는 그런 선택지 자체를 걷어차려 하고 있다.

에너지 전공 대학교수 230명은 지난 1일 "전문가가 배제된 채 추진되는 일방통행식 탈원전 정책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냈다. 그런데 28일 탈원전 배경 설명에 나선 청와대 측 입장은 '자세한 로드맵은 올 연말 나올 전력수급 계획에서 마련될 것'이라는 정도였다. 국가 에너지 정책이 이런 식으로 졸속으로 흘러가도 되나. 어이없다는 말밖엔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