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낙마시킨 40년 전 ‘몰래 혼인신고’ 논란을 두고 ‘안경환 판결문’ 유출 음모론이 번지고 있다. 정부·여당은 ‘누가 어떻게 알고 언론사에 흘렸는지’에 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하는 중이다. ‘검찰개혁 반대세력이 배후’, ‘국정원이 안경환 뒷조사를 도왔다’ 같은 낭설도 돌아다니고 있다. 논란의 불씨를 잡고, 판을 흔드는 데엔 역시 ‘소스 색출’과 ‘배후 공작설’만한 게 없는 걸까.
최민희 민주당 전 의원은 판결문을 공개한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40년 전 자료를 어디서 구하셨느냐"며 "인청(인사청문회) 많이 해봤지만 특이한 경우"라고 했고, 민병두 민주당 의원은 "나도 36년 전 내 사건 판결문 구하기 힘들다"고 했다. 이정렬 전 판사는 "주 의원이 판결문을 구하고 언론에 공개한 것은 가사소송법 위반"이라고 했다.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도 19일 "40년 전 개인 사건이 이렇게 신속하게 언론에 공개되고 보도된 경위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며 "이 모든 행위가 법무부와 검찰개혁을 막고자 하는 의도된 어떤 행동이라면 당장 중단돼야 한다"는 논평을 냈다.
이들 주장처럼 검찰 개혁에 반대하는 불순한 세력이 안 전 후보자의 '사생활 폭로'를 기획한 걸까. 정말 주광덕 의원이 '어둠의 경로'로 판결문을 빼냈을까. 은 이 참에 조선일보 양은경 법조전문기자에게 판결문 유출 배후설에 대해 물어봤다.
-주광덕 의원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판결문을 받았다고 하지만 의구심이 듭니다. 안 전 후보자 본인도 애초에 청와대에 '자진납세' 않고 감쪽같이 숨겼던 판결문 '사건번호'를 주 의원은 대체 어떻게 알아내 법원에 요청했을까 하는 점이지요.
"주 의원은 법원에 '사건번호'로 판결문을 요청한 게 아니라고 합니다. 지난 15일 안 후보자 인사청문요청안에 포함된 부친의 제적등본에서 혼인무효 확정 판결 내역을 발견하고, 의정자료 전자유통시스템을 통해 대법원에 판결문 사본을 요구했어요. 이때 사건번호가 아니라 제적등본에서 확인한 '판결일자', '청구인·피청구인의 생년월일'로 요청했다고 합니다. 주 의원측이 당시 법원에 보낸 자료요구서에는 '1976년 4월 10일(→판결일자) 서울가정법원(→판결법원) 혼인무효심판확정(→사건명) 판결문 사본'과 안 후보자의 주민등록번호 일부(→인적사항)가 기재돼 있어요. 일각의 추측처럼 주 의원이 먼저 사건번호를 누군가에게 넘겨 받은 것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법원행정처가 사건번호도 모르는 판결문을 유독 '빛의 속도'로 찾아준 것 같다고 의심을 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주 의원이 판결문을 요청해 받는 데 불과 '37분' 밖에 안 걸린 것이 사실입니다. 이에 '법원이 미리 안 후보자 판결문을 준비해 둔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오고 있지요. 그런데 이번 판결문은 '법원 판결문 검색시스템'에 PDF 문서 형태로 디지털 변환이 돼있어 바로 검색이 가능했다고 합니다. 검색이 된다면 찾아서 보내주는 건 시간 많이 안 걸리죠. 물론 국회의원이 요구하니 더 빨리 진행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만…. 그러나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다른 판결문을 과거에 6분, 10분만에 찾아서 보낸 사례도 있었다'고 말합니다. 물론 모든 판결문 검색·송부가 이처럼 '빛의 속도'로 이뤄지는 건 아니에요. 경우에 따라 다릅니다. 일반 민원인이 요청하면 '세월아 네월아' 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대법원이 논란 초기에 '무려 40년 전 판결문이라 검색해도 안 나온다'고 해명한 건 잘못된 내용이라고 합니다. 답변자가 검색 요건을 충분히 넣지 않고서 '안 나온다'고 한 모양이에요. 판결문을 가장 빨리 찾는 법은 '사건번호'지만, 이번 안경환 판결문은 '판결 법원', '날짜', '당사자 이름', '인적사항', '사건명' 같은 다양한 검색 요건들이 있어서 사건번호를 몰라도 빨리 찾을 수 있었다 합니다."
-일부 공개된 판결문 표지를 보니 타자기로 직접 친 '유물급' 문서처럼 보이길래, 법원 관계자가 주광덕 의원 요청을 받고 국가기록원에서 종이 판결문을 찾아낸 뒤 '스캔 작업'을 떠서 보낸 줄 알았어요. 이 모든 걸 37분만에 제공했다고 오해하면서 의심이 커졌네요. 요즘 오래된 판결문이 모두 디지털 아카이브에 저장돼 있나요? 전 어디 창고에 있는 줄….
"모든 판결문은 원문을 보존하도록 돼 있어서 국가기록원·대법원 기록보존소에서 원문을 찾을 수 있어요. 현재 대부분의 판결문이 PDF문서 형태로 디지털 작업이 돼 있어서 컴퓨터로 검색하면 나와요. 안 전 후보자 판결문도 원문의 내용을 디지털로 다시 기록하는, 디지털 문서 작업이 돼 있었구요."
-민병두 의원은 36년 전 본인 사건 판결문 찾기가 힘들었다고 하는데요. 혹시 주 의원이 '검찰 적폐세력'의 도움으로 안경환 판결문을 찾았을 가능성은 없나요?
"민 의원 뿐 아니라 판사·법원 직원 외에는 본인 판결문에 쉽게 접근하기가 힘든 게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판결문을 찾는 데 '적폐'가 개입했다는 추측은 지금으로서는 설득력이 떨어져 보입니다. 안 후보자가 '검찰 개혁' 적임자로 임명됐다는 점에서 처음에는 '검찰에서 정보를 준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지요. 그러나 이 사건은 형사 사건이 아닌 가사 사건입니다. 검찰관계자는 '민사·행정·가사 등의 판결문에는 아예 접근 권한이 없다'고 해요. 형사 판결문 외에는 법원에 공문으로 요청을 해야 받을 수 있다는 것이죠. 만일 도장을 위조해 몰래 혼인신고를 한 행위가 사문서위조나 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죄 등으로 처벌됐다면 해당 기록이 검찰에 있겠지만 안 후보자는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형사판결문은 물론, 기소유예 등의 처벌 전력도 남을 일이 없는 사안이지요."
-이정렬 전 판사가 '안경환 판결문' 유출은 가사소송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는데요. 이 부분에 대한 팩트체크 부탁드립니다.
"가사소송법 위반 범죄에 대한 구성요건이 충족될지는 몰라도, '위법성 조각사유'로 인해 법적 책임이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이 전 판사가 가사소송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이 법 10조의 2에요. 재판서의 정본, 등본, 초본 발급은 '당사자 또는 이해관계를 소명한 제3자'만이 신청할 수 있다고 돼 있는데, 주광덕 의원은 당사자도, 이해관계를 소명한 제3자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이 이런 제한을 받지 않고 합법적으로 자료를 받을 수 있는 '만능 조항'이 있어요. 바로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2조입니다. 이 조항은 '국회에서의 안건심의 또는 국정감사나 조사와 관련하여 서류 등의 제출요구를 받은 경우 이 법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른 법률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누구든지 이에 응하여야 한다'고 돼 있어요. 다른 법에서 어떻게 정하든 국회가 요구하면 자료를 내야 한다는 아주 강력한 내용입니다. 유일한 예외사유는 '이 법의 특별한규정'인데 법 4조 단서에 '군사·외교·대북관계의 기밀로서 그 발표로 국가안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소명이 있는 경우'입니다. 이번 사건은 해당사항이 없으니 법원에서는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는 거죠. 법원 관계자는 '주 의원의 경우 비실명화된 상태로 제공했지만, 만일 실명 그대로 달라고 해도 이 법에 따르면 어쩔 수 없이 줘야 하는 상황'이라고 하더군요."
-주 의원 뿐 아니라 이 사실을 보도한 언론사도 법을 위반한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는데, 어떤가요?
"가사소송법의 '보도금지' 조항을 두고 하는 얘깁니다. 가사소송법 10조는 "가정법원에서 처리 중이거나 처리한 사건에 대해서는 성명·연령·직업·용모 등을 볼 때 본인이 누구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정도의 사실이나 사진을 신문, 잡지 등 출판물에 게재하거나 방송할 수 없다'고 돼 있습니다. 이 조항을 역시 원칙대로 적용하면 유명인의 가사사건에 대한 보도는 모두 이 법 위반입니다. 최근 보도된 하리수-미키정 이혼 기사를 비롯해, 과거 김영삼 전 대통령의 혼외자 인지(認知)기사까지 모두 '2년 이하 금고 또는 100만원 이하 벌금' 대상입니다. 유명인은 그 자체로 누구인지 특정되니까요.
하지만 유명인 관련 보도가 '가사보도금지'로 처벌받은 전례는 한 번도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조항 자체가 일반인의 사생활 보호를 위한 것이고, 유명인의 가사 보도를 방어하기 위한 수단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 중견 판사는 '당사자 명예훼손 의도가 아니고 청문회 등에서 자질 검증을 위한 것이라면 '공익을 위한 것'으로서 위법성이 없어 무죄가 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합니다. 법 조항이 있다고 해서 모두 그에 따라 처벌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알 권리', 특이 이번 사안의 경우 공직후보자에 대한 검증이라는 다른 가치도 고려해 처벌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죠. 다만 안 후보자가 아닌 상대 여성에 대해 인적사항과 주소 등을 공개하는 것은 이 법 위반의 소지가 있습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안 후보자의 서울 법대 1966년 입학 동기생들은 '안씨가 여인과 헤어지면서 그녀의 장래를 위해 혼인의 흔적을 지워주기로 결심한 걸로 안다'고 말하고, 상대 여성의 가족은 '안 후보자가 일방적으로 혼인신고를 했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여성이 혼자 있는 집에 찾아와 고성을 지르며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고 말하는 데요. 당사자들이 입을 열지 않을 경우, 전문 진술과 목격자 진술 중에 어떤 내용이 신빙성이 더 있을지 궁금해요.
"안 후보자 본인의 해명은 '20대 중반에 벌어졌던 일로 당시 나만의 이기심에 눈이 멀어 사랑했던 사람과 가족에 어처구니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행위였다'고 했습니다. 사실상 '일방적 혼인신고'를 인정한 것에 더 가깝지요.
그러자 이를 두고도 '안 후보자가 기왕 혼인 전력을 가려주기로 한 마당에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만일 이 주장대로라면 더 큰 문제가 벌어집니다. '도장을 위조해 일방적으로 혼인신고를 했다'는 판결문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얘긴데 이런 의혹은 법원에 대한 '소송 사기'라는 새로운 문제가 불거질 수 있어요. 한 법원 관계자는 "만일 혼인 전력을 가려주기 위해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혼인무효 '판결문을 받았다면 법원을 속여 판결문을 편취(騙取)한 것이어서 위법의 정도가 더 클 수 있다"고 말합니다. 현재까지는 판결문 내용, 안 후보자 본인의 진술 내용 등을 종합할 때, '혼인의 흔적을 지우기 위한 것'이란 주장에 지나치게 무게를 둘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만일 '혼인 전력을 지워주기 위한 일'이었다는 내용이 허위 사실이라면, 피해 여성에 대한 명예훼손 문제로도 불거질 수 있는 사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