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떠올라 런던이 떨었다]

영국 런던 서부 24층 아파트 '그렌펠 타워' 화재 참사를 수사 중인 런던경찰청 스튜어트 쿤디 국장은 17일(현지 시각) "이번 화재로 숨진 사망자는 58명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말했다. 일간 인디펜던트는 "이 희생자 수가 확정될 경우, 2차 대전 후 런던에서 발생한 최악의 화재로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쿤디 국장은 "확인된 사망자는 30명이며, 28명은 당시 건물 안에 있었던 실종자들로 생존 가능성이 없다"며 "방문객 등 경찰이 파악하지 못한 희생자가 있을 수 있어 최종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BBC는 "최종 사망자는 70명 정도일 것"이라고 했다.

세계 5위 경제 대국에서 발생한 '후진국형' 대형 참사에 분노한 희생자 가족과 시민들은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이날 오전 런던 시내 총리 집무실 부근에선 시민 수천 명이 "우린 정의를 원한다" "메이 퇴진" 등을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전날인 16일에는 시위대가 테리사 메이 총리가 유가족 등을 만나는 곳에 몰려가 메이 총리를 향해 '겁쟁이' '창피한 줄 알아라' 하고 소리쳤다. 시민들은 국회의사당과 그렌펠 타워를 소유한 구청 등에서도 항의 시위를 벌였다. 한 시민은 경찰을 향해 "당신들은 살인자를 보호하고 있다"고 소리치기도 했다. 주민 에이미 오워즈는 "우린 (정부로부터) 무시당했다"며 "메이와 보수당은 물러나야 한다"고 했다.

잇단 테러와 총선 패배로 휘청거렸던 메이 총리는 풍전등화(風前燈火) 신세가 됐다. 일간 더타임스는 "보수당이 메이에게 '남은 시간은 단 열흘뿐'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했다. 이 매체는 "메이에 대한 당내 신뢰가 수직 낙하하고 있다"면서 "향후 10일 이내에 메이가 총리직을 계속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면 당내 불신임 투표에 직면할 수 있다"고 했다. 이미 당 의원 중 10명이 불신임안을 제출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한 중진 보수당 의원은 "지역구에서 메이 퇴진에 나서라는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며 "메이가 (국민 앞에) 나타날 때마다 당엔 독이 되고 있다"고 했다.

메이의 운명은 오는 21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국정 연설' 직후 최대 고비를 맞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국정 연설에는 집권 여당의 한 해 정책 추진 계획이 담긴다. 당내 브렉시트 강경론자들은 메이가 기존 '하드 브렉시트(이민을 강력 통제하고 EU 단일 시장 등에서 탈퇴)'에서 후퇴한 내용을 이 연설에 담을 경우, 메이 축출을 위한 당대표 경선을 추진할 것이라고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반면, 브렉시트 온건파인 필립 해먼드 재무장관은 18일 BBC에 출연해 "브렉시트 협상 때 이민보다는 일자리와 경제가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