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을 따라 달리는 여성. 미국 의류 브랜드 애버크롬비 앤 피치의 몸매 차별적 광고에 항의하는 파격적인 화보 캠페인을 벌인 저자는 “사람들이 칭찬하는 이른바 ‘완벽한 몸’을 갖게 된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그는 ‘뚱뚱하다’는 건 부정적인 단어가 아닌 크기를 형용하는 객관적 표현일 뿐이라고 정의한다. 끊임없는 다이어트, 제멋대로 몸을 평가하는 사람들로부터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서 저자는 먼저 자신의 몸을 사랑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내가 소설 '다이어트의 여왕'을 썼을 때, 취재원 중 가장 인상적인 말을 남긴 건 식이 장애 환자들을 상담하던 의사의 말이었다. "거식증 환자들의 가장 큰 특징은 병이 주는 보상이 너무나 확실하고 크기 때문에 자기 병을 사랑한다는 거예요. 낫고 싶다고 말하지만 실은 낫고 싶지 않은 거죠. 병원에서 치료 때문에 정기적으로 체중을 잴 때가 되면, 일부러 물을 잔뜩 먹고 오는 분도 있어요. 몸무게가 늘었다고 주장하면서요."

대개의 거식증 환자가 식욕이 없어 먹는 것에 관심이 없을 것이란 생각은 완벽한 착각이다. 그들의 머릿속이 오직 먹을 것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이건 칼로리가 높아서, 이건 섬유질이 없어서, 이건 기름에 튀겨서 먹을 수 없다는 생각과 동시에 그 모든 조건에도 '먹고 싶다'란 욕망 사이에서 싸우느라 이들은 세상의 다른 소리에 쉽게 귀를 열지 못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삶과 사랑의 문제를 '식욕'이라는 주제로 축소시키고, 자존감을 바닥까지 폭락시키는 위험한 병. 그것이 의사가 진단하는 거식증의 본질이었다. 흥미로운 건 대개의 거식증 환자가 폭식증을 앓은 적이 있다는 것이다. 전혀 별개의 병으로 보이지만 이것은 동전의 양면과 비슷하다.

제스 베이커의 '나는 뚱뚱하게 살기로 했다'를 읽었을 때, 별 수 없이 '다이어트의 여왕'을 쓰던 9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식이 장애 환자들, 의사, 간호사, 다이어트 서바이벌 프로그램 우승자와 해당 프로그램 작가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가장 깊이 만나 대화했던 사람은 고3 시절의 나였다. 내 안의 소녀, 잔뜩 주눅 들어 있던 그 어린 소녀 말이다. 당시 내 몸무게는 73㎏이었다. 가족은 물론이고 친척들까지 내게 "살 좀 빼! 그래서 연애나 하겠어?" 같은 말을 무심히 했다. 대학 입학 기념으로 옷을 사러 간 백화점에서 엄마는 직원들이 묻지도 않은 말을 반복해서 했다. "우리 아이가 이전에는 뚱뚱하지 않았는데, 고3 때 공부만 하느라 퍼져서." 엄마가 창피해야 하는데 나는 내가 창피했다. 내 몸은 77사이즈보다 약간 커서 백화점에 '내 옷' 같은 건 걸려 있지 않았다. 말하자면 55사이즈와 48㎏의 세계로 재편된 모든 공간에서 그 시절의 나는 외로운 이방인이었다.

어째서 우리는 몸무게에 이토록 집착하는 시절을 살게 된 걸까? 1㎏ 감량에 웃고, 2㎏ 증가에 우는 이 세계에서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어째서 거울을 보며 매번 내 몸을 잘라내고 뜯어내고 제거하는 상상을 하게 될까. 언제쯤 내 '잘못된' 몸은 수정 없이 '옳고 아름답다'는 인식을 갖게 될까. 미국 여성 91%가 자신의 몸에 불만족하며 다이어트에 의지한다. 미국 10세 아동 81%는 살이 쪘을까 봐 걱정한다. 암이나 전쟁, 부모의 사망보다 살이 찌는 걸 더 두려워한다. 통계가 말해주는 건 한 가지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우리가 우리 몸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는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

제스 베이커가 '잘나가는 애들=근육질의 마른 아이들'이라는 애버크롬비 대표의 캐치프레이즈를 공격한 건, 다이어트에 대한 우리의 강박이 어디에서 왔는지 되묻는 과정이다. 그녀는 하기 싫은 근력 운동에, 먹기 싫은 당근 주스에, 맞기 싫은 미용 주사에 이미 엄청난 돈과 시간을 지불한 사람들이 날씬한 게 좋고 뚱뚱한 게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기존의 믿음 밖으로 나가긴 쉽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뚱뚱함이 건강에 치명적이며 잘못된 것'이라는 믿음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전개한다. 뚱뚱함에 대한 혐오는 철저히 학습된 것이며,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과 자본주의적 예쁨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그녀는 우리가 인간이라서 쉽게 빠지는 함정이 몇 ㎏을 뺀 다음에 뭘 하겠다고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멋진 남자와의 소개팅? 5㎏만 빼면! 이번 여름 해변 여행? 7㎏만 빼면! 어쩐지 익숙하지 않은가? 나 역시 매번 가족사진을 찍거나, 해변으로 여행을 이런 식으로 미루곤 했다. 체중이 삶을 옭아매는 것이다. 저자는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최근 다이어트 산업이 교묘히 진화하며 발생한다고 말한다.

'몸매는 걱정하지 말고, 건강에만 신경 써!' 이런 말을 하면서 힘을 되찾고 있다고 생각했다면 멋지게 속은 거다. 표현만 달라졌을 뿐이지, 우리의 신체는 전과 똑같이 억압당하고 있다. 다이어트 산업은 라이프스타일 변화 산업으로 탈바꿈 했다. … 건강이 가치의 최고 잣대가 되는 순간 곧바로 추방되는 사람은 누구인가? 신체장애가 있는 사람들, 만성질환이나 불치병을 앓는 사람들, 가난 때문에 균형 잡힌 식사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 … 건강을 잣대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단순한 몸매 차별이 아니다. 이는 계급주의이자 인종차별이자 장애인 차별이고, 나아가 그 이상이기도 하다. … 이건 엘리트주의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라 해도 과장이 아니다."

그녀는 이상적 미의 기준이 갈 데까지 갔다는 증거가 '신경성 건강식품 탐욕증'처럼 새롭게 추가되는 식이 장애 리스트라고 말한다. 매일 유기농 농장에서 직접 배송해주는 샐러드를 먹는 건 그 자체로 문제가 아니지만 밖에서 먹는 음식의 위생이 의심스러워 도저히 여행을 떠날 수 없다면 그건 장애다. 쿠키나 케이크를 먹으며 죄책감을 느끼고 요가 수업을 빠질 때마다 엄청난 우울감에 시달린다면, 이 역시 새로운 아름다움의 기준이 당신을 압박하고 통제하는 것이다. 건강 염려증을 동반한 다이어트는 의사들이 한목소리로 얘기하는 자존감 도둑이다.

셀룰라이트가 드러난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 산후의 몸과 시간에 따라 생기는 주름살, 모래시계형 몸매가 아닌 플러스 사이즈의 몸. … 포토샵을 통과하지 않은 일상의 몸을 자주 볼 수 있게 된다면 몸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은 서서히 바뀌지 않을까. 우리는 어쩌다 우리가 살아온 흔적들을 지우기 시작했을까. 인생이라는 엄청난 경험을 했음을 알려주는 증표들을 말이다. '다이어트의 여왕'의 주인공 정연두는 요리사다. 그녀가 했던 말 중, 내가 가장 예쁘다고 생각한 말이 떠올라 적어본다.

"요리사는 배고프면 안 돼. 그러면 음식에 너무 관대해져. 그런 사람이 만든 음식에 디테일이 있을까? 좋아! 나 뚱뚱해! 근데 그건 내 직업병이야. 난 직업윤리를 가진 요리사고, 무엇보다 내 직업병이 자랑스러워!"

나는 뚱뚱하게 살기로 했다 —제스 베이커의 책

'Why?' 조선일보 土日 섹션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