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앙 부처 한 공무원에게 들은 얘기다. 그는 국정자문기획위에 업무 보고한 새 정부 공약 이행 방안을 다시 청와대에 보고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보고 직전 청와대로부터 "일정을 무기 연기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보안 유지가 안 됐다는 게 이유였다. 사정을 알아보니 한 언론사 기자가 청와대에 업무 보고하기로 한 날짜를 전해 듣고 이 사실을 바탕으로 청와대에 문의한 것이 문제가 됐다고 한다. 해당 부처에서는 "보안 유지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보고서 내용도 아니고 보고 날짜가 알려졌다는 이유로 일정 자체를 연기하는 건 좀 심하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면서도 이 사실이 알려져 부처가 불이익을 받지나 않을까 쉬쉬하고 있다.
이런 일도 있었다. 한 부처가 국정기획위에 업무 보고한 내용 일부가 1주일쯤 지나 언론에 나왔다. 보도 당일 국무총리실 공직기강감사팀은 어떤 경위로 업무 보고 내용이 언론에 유출됐는지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 한 관계자는 "아직 조사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우리 부가 아니라 국정기획위 쪽에서 새나간 것 같다"고 안도했다.
새 정부 들어 '공직 기강' '보안 유지'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검찰의 '돈 봉투 만찬', 국방부의 사드 발사대 반입 보고 문제만이 아니라 일반 부처에서도 요즘 흔히 나오는 말이다. 새 정부 인사들 입장에서는 새로 등장한 권력의 엄정함을 보이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러나 관가에서는 "정권 초기 보안을 강조할 수는 있지만, 좀 심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공무원은 "과거 인수위 시절 공약이나 정책이 언론에 나오면 혼란스러운 면도 있었지만 그에 따른 여론이 형성되면서 '옥석'을 가리는 효과도 있었다"며 "이번 정부가 '철통 보안'을 강조하면서 그런 순기능도 사라지는 것 아닌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6일엔 국민안전처가 국정기획위에 업무 보고하기로 한 내용 일부가 사전에 보도되자 업무 보고를 무기 연기한 일도 있었다. 국정기획위 박광온 대변인은 "언론은 취재 경쟁하는 게 생리지만 자칫 이 경쟁 때문에 공직자들이 어려운 일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달라"고 말했다. 당시에도 강도 높은 경위 조사가 진행됐고 안전처 업무 보고는 5일이 지나서야 이뤄졌다. 교육부도 업무 보고한 내용 일부가 유출돼 감사를 받았다. 관가에서는 "업무 보고하기 싫으면 언론에 살짝 흘리면 되겠네"라는 우스갯소리도 나돌고 있다.
이번 정부는 대통령 탄핵으로 과거 다른 정부들보다 준비 기간이 부족한 채 출범했다. 그런 만큼 정상적으로 정부가 출범했을 때보다 덜 익은 정책, 서둘러 발표한 정책이 적지 않을 것이다. 어느 정권 초기보다 국민과의 활발한 소통과 여론 수렴이 필요한 이유다. 그런데 지금 청와대와 국정기획위는 "우리가 (공식) 발표하기 전까지는 모두 입을 다물라"는 식이다. 상당히 이상하고 문제 많은 방식이라는 것은 본인들이 더 잘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