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포털사이트에서 '위장전입'을 검색하면 위와 비슷한 질문과 답변들이 무수히 나온다. 원하는 학교 배정을 위해, 공무원 시험 응시를 위해 위장 전입을 했는데 혹시 처벌 받는 거냐는 질문이 줄을 잇는다. 현행 주민등록법에 따르면 본인이 '불법 행위를 했다'고 스스로 밝히는 셈이다.

사실 위장전입은 적발되면 이유를 불문하고 최장 징역 3년까지 받을 수 있는 '중범죄'다. 그럼에도 국민 대다수가 위장전입을 가볍게 여기는 이유가 뭘까? 한국에서의 위장전입 실태와 논란에 대해 알아보자.

위장전입, 첫 시작은 '강남 8학군 병(病)'

80년대엔 '강남 학교', 90년대엔 '아파트 당첨' 목적
위장전입이 한국 사회의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건 1980년대다. 80년대를 전후해 주요 명문고(高)들이 강남으로 옮겨가면서 학부모들 사이에서 '강남 붐'이 일었다. '강남 8학군 위장 전입' 등의 굵은 헤드라인이 수시로 신문 사회면에 나왔는데, 얼마나 심했으면 실제 강남에 사는 학생이 위장전입자들에 밀려 강북 학교로 배정받는 일도 발생했다. 강남은 학생 뿐 아니라 교사들에게도 '1급 근무지'로 꼽혀, 강남 학교 발령을 위해 위장전입하는 경우도 있었다.

90년대 들어서는 학군보다 땅 투기를 위한 위장전입이 만연했다. 1990년 중계동 등 재개발 지역의 아파트 분양권을 받기 위해 위장전입을 한 7명이 '투기용 위장전입' 적발의 첫 사례다. 이들은 재개발 지역에 있는 무허가 주택을 구입한 뒤, 무주택 친척들의 이름으로 전입 신고를 했다. 1996년에도 용인 수지지구에서 위장전입자 2700여 가구가 적발돼, 아파트 당첨 취소 및 주민등록이 말소됐다.

['8학군병' '강남 위장전입'…1980년대 사회면 단골 이슈]

'강남 학교' 진학을 목적으로 한 위장전입은 90년대 이후 수학능력시험과 고교 내신 도입 등으로 점차 줄었다. 이후, 서울시가 본인이 원하는 학교에 지원할 수 있는 '고교선택제'까지 도입하며 과거처럼 강남지역에 사는 사람만 강남 학교에 갈 수 있다는 원칙도 사라졌다. 하지만 거주지 중심으로 배정되는 초·중학교나 전학을 위한 위장전입은 여전히 행해지고 있다.

부동산 투기의 세계에서 행해지는 '위장'은 수법이 다양하다. 서울지역의 경우 세대원은 1순위가 될 수 없다는 조건이 있어, 세대를 분리하고 위장전입신고를 한 뒤 별도의 세대주가 되는 사례가 가장 흔하다. 다른 지역 거주자의 청약통장을 사들여, 마치 본인이 그 지역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점프통장' 역시 위장전입의 한 방식이다. 위장전입을 통해 신규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실이 적발되면, 계약 취소와 일정 기간 주택입주자 자격이 제한된다.

취업난에 '공시생'이 급증하며 2030세대 사이에서 늘고 있는 위장전입 사례다. 특히 대도시에 비해 경쟁률이 낮은 농촌지역이 표적이 된다. 지방직 공무원에 응시하려면 '3년 거주'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폐가나 창고 등으로 미리 주소지를 옮겨놓는다. 이렇게 합격한 공시생들이 의무 근무기한이 지난 후 본인의 연고지로 다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아 이 또한 문제가 된다.

지방자치단체별로 인구를 늘리기 위한 조직적 위장전입도 잊을 만 하면 발생한다. 주로 지자체의 공무원과 주민들이 공모해 타 지역에 사는 지인들을 관공서, 절, 식당 등의 주소로 위장전입 시키는 수법이다. 지자체들이 '인구 부풀리기'에 열을 올리는 까닭은 인구가 줄면 지방교부세도 줄고 선거구가 합쳐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市) 승격을 위해 허위로 인구를 끌어모으는 사례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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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나 LH 등에서 공급하는 임대주택의 입주 조건을 맞추기 위해 위장전입을 하는 경우도 있다. 세부적으로는 차이가 있는데, 공통적으로 '무주택 세대주'라는 조건 때문에 세대분리를 하고 다른 곳으로 주소를 이전하는 것이다.

[위장전입…왜 했는지 봤더니]

어느 순간 청문회 '단골 손님'으로 등극

위장전입은 2000년 국회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이후, 한 정부도 빼놓지 않고 청문회장에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300여 명 중 20여 명이 청문회 중 낙마했는데, 이 중 상당수는 위장전입이 원인이 됐다. 하지만 비슷한 사유의 위장전입인데도, 정치적인 상황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다. 위장전입으로 이슈가 됐던 주요 공직 후보자들의 사례를 모았다.

[청문대상 6명 중 3명 위장전입… 예전엔 통과·낙마 '복불복']

-주양자 前 복지부장관 "무거운 죄를 지었다"
1998년, 김대중 정부의 주양자 장관은 일가족이 무려 16차례 위장전입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취임 58일 만에 자리에서 내려왔다. 당시 주 장관은 본인과 남편·아들의 명의를 이용해 남양주·용인 등지로 주소를 옮긴 것으로 드러났다.

-장상 前 총리후보 "시어머니가 하셔서 몰랐다"
2002년, 장상 총리 후보는 부동산 투기 목적으로 세 차례의 위장전입 의혹이 드러나 낙마했다. 이로써 그녀는 '첫 여성 총리' 타이틀을 놓침과 동시에 청문회서 낙마한 '1호 총리 후보'가 됐다. 장 후보는 당시 신반포·구반포·목동 세 곳의 아파트 투기 의혹에 대해 "과거 시어머니가 하신 일이며 지금은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계셔서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해명했다.

-장대환 前 총리후보 "맹모삼천으로 이해해달라"
장상 후보가 낙마한 뒤 새로이 내정된 장대환 후보는 자녀의 진학 목적으로 인한 위장전입이 문제였다. 그는 청문회에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면서 "아이들을 위한 맹모삼천지교로 봐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은 "맹자 어머니 모독"이라며 그를 낙마시켰다.

-이규용 前 환경부장관 후보 "잘못된 일이지만 사퇴는 못 해"
2007년, 노무현 정부의 이규용 후보는 자녀 교육 목적의 세 차례 위장전입이 드러났지만 '시대를 잘 타고나' 청문회를 통과했다.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은 이명박 대선 후보 역시 자녀 교육을 위해 5번 위장전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이규용 후보의 결점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의 위장전입에 대해 질문하는 의원들.

-박은경 前 환경부장관 후보 "땅을 너무 사랑해서…"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위장전입 의혹을 받은 고위 공직자들이 20명에 달했다. 2008년, 박은경 장관 후보는 위장 전입과 더불어 투기, 논문 표절 의혹 등이 한꺼번에 불거지자 청문회도 치르지 못한 채 후보직을 자진 사퇴했다. 박 후보자는 친인척으로부터 농지를 증여받기 위해 주소지를 평창에서 인천으로 옮긴 것이 드러났지만, "땅을 사랑해서 그랬다"고 해명해 화를 더 키웠다.

-현인택 前 통일부장관 후보 "학사 일정 맞추느라 불가피"
'위장 전입' 전력을 가진 고위 공직자가 너무 많아지자, 정치권에서는 '자녀 교육 정도는 봐주자'는 일종의 관행이 생기기 시작한다. 2009년, 현인택 장관 후보는 자녀의 위장전입 문제가 불거졌지만 무사히 청문회를 통과했다.

-천성관 前 검찰총장 후보 "학교를 옮기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
2009년,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는 위장전입과 더불어 아들의 병역특례, 부인의 고가 명품 구입, 스폰서 등 여러가지 의혹이 제기돼 자진 사퇴했다. 그는 잠원동에서 영등포구로 주소를 옮겼다가, 20여 일 만에 다시 강남구로 주소를 옮긴 것에 대해 "개인적인 사정으로 학교를 옮기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이동흡 前 헌재소장 후보 "투기가 아니라 교육 때문"
2013년, 박근혜 정부의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는 4개월간 가족과 세대 분리를 한 뒤 위장 전입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위장전입의 목적이 양도소득세를 피하기 위한 것이냐는 의혹이 불거지자, 이 후보자는 "자녀 교육 문제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밖에도 저작권법 위반, 특정업무경비 사적 사용 등 무려 20여 가지의 의혹이 제기되자, 스스로 사퇴하고 말았다.

-유진룡 前 문체부장관 후보 "투기 목적 아니었지만, 인정하고 사과"
유진룡 장관 후보는 배우자가 노원구의 한 아파트를 분양받은 뒤 거주하지도 않으면서 위장전입을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유 후보자의 부인은 5년여간 위장전입 상태를 유지하다가, 아파트를 팔아 2,800여만 원의 시세차익을 얻었다. 유 후보자는 이에 대해 "투기 목적은 아니었다"고 짧게 해명했는데 청문회의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문재인 정부의 첫 조각 인사에도 어김없이 위장전입이 등장했다. 이낙연 총리 후보자,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각각 배우자 및 자녀의 위장 전입 문제로 사과와 해명을 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위장 전입자를 공직에서 배제하겠다"고 했다가 다시 "현실적인 인선 기준안을 만들겠다"고 해 말 바꾸기 논란도 일었다. ▶관련기사

"나도 위장전입 했소"… 아름다운 고백?

문재인 정부의 주요 공직 후보자들이 위장전입 문제로 곤욕을 치르자, 문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에서 "나도 위장전입자다"는 고백이 쏟아지고 있다. 진학·공무원 시험·세금 등의 이유로 일상생활에서 위장전입이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투기 목적도 아닌데 물고 늘어지려면, 나부터 잡아가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위장전입 고백'에 대해 "자랑도 아니고, 무용담처럼 얘기할 일이냐"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지만 일부 옹호론자들은 주민등록법 자체를 폐지하자는 목소리도 내는 형국이다.

위장전입이 무슨 자랑거리라고…

위장 전입, 안 잡나? 못 잡나?

경찰에 따르면 인터넷상에서 자신의 위장전입 경험을 고백하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 처벌 대상이다. 하지만 적발이 쉽지 않으며, 사안에 따른 처벌 기준도 제각각이라 논란이 된다.

위장전입 단속은 본래 행정자치부 소관인데 실질적으로는 각 지역의 주민센터가 주도하고 있다. 주민센터는 집중 단속기간을 이용하거나, 일부 의심되는 집을 중심으로 현장조사를 벌인다. 때문에 위장전입자를 100% 잡아내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걸린다고 해도 우기면 그만인 경우가 대다수다. 실제로 거주하는 것처럼 물건들을 갖다놓고 "지금은 집을 비웠다"고 하면 사실상 더 이상 증명할 방법이 없다. 초·중·고교 전학생의 경우, 교사가 직접 학생의 집에 찾아가 거주 여부를 확인하고, 위장전입이면 원래의 주소로 돌려보내야 하지만 이 또한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똑같이 위장전입을 해도 누구는 처벌받고 누구는 처벌받지 않는 불평등이 발생한다. 청문회에 나온 공직 후보들을 보더라도 '복불복' 대응이 확연히 보인다. 실제 처벌까지 이르게 되는 경우도 많지 않다. 위장전입은 공소시효가 5년으로 길지 않을 뿐더러, 적발돼도 바로 처벌하지 않고 시정할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청문회 때마다 위장전입 문제로 진땀 흘리는 사회 지도층의 모습이, 국민들로서는 달가울 리가 없다. 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처벌을 더 강화해야 한다", "자녀 교육과 투기는 차별해야 한다", "생활형 위장전입은 봐줘야 한다"는 등 의견이 제각각이다. 이와 같은 논란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민적인 합의를 이끌어 법을 다듬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