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교부장관, 초등학교 운동회를 부활시키시오."

1976년 9월 2일 박정희 대통령이 정부여당 연석회의에서 지시했다. 1975년 운동회비 징수가 부조리라는 이유로 못 걷게 해 학교 운동회를 못 하게 만들었던 정부가 1년 만에 다시 열게 했다(조선일보 1976년 9월 4일자). 국가 최고 통치자가 초등학교 운동회 개최 여부에 관해서까지 직접 지시를 한 것은 유신정우회(유정회)의 건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유정회는 유신 시절 대통령 추천을 받아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뽑힌 국회의원들의 단체다.

1978년 한 초등학교 운동회의 모습. 박정희 대통령이 국가 안보를 강조하며 즐겨 쓴 글귀 ‘유비무환’과 새마을운동의 구호 ‘근검절약’ 등을 적은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정책 추진에 앞장서던 친위대적 성격의 정치 단체가 어린이 운동회를 되살려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당국은 운동회를 부활시키면서 몇 가지 '주문'을 했다. 절약을 내세워 '운동회에서 상품은 주지 말라'는 지침을 내리는 바람에 "아이들 꿈을 무시한 맥 빠진 운동회가 된다"는 교육계 반발을 불렀다. 더 큰 논란은 '특별한' 종목들의 신설 때문에 빚어졌다. 1976년 문교부가 새로운 운동회 실시 요령을 하달하면서 "새마을정신을 고취하기 위한 '가마니 짜기' '새끼 꼬기'를 하고, '화생방 대비 경기' '대피 운동' 등 '총력안보 국방 경기'도 벌이라고 '권장'한 것이다. 말이 권장이지 실상은 타율적 지시였다. 그해 가을 한 초등학교는 아예 운동회 명칭을 '총력안보 대운동회'라고 내걸었다. 어떤 학교는 운동회 종목에 '초전박살'을 넣었다가 당시 언론으로부터도 "너무 시사에 편승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어느 명문 사립 초등학교의 운동회 종목엔 '공산당이 미워요' '겨레의 소망' 등 '반공 안보 경기'가 포함됐다(경향신문 1976년 9월 20일자). 마치 1938년 일제가 이 땅의 소학교 운동회에서 '적전도하(渡河)' '기병 습격' '돌격전' 등 '전시 적응 종목'을 하도록 지시한 일을 연상시켰다. 아동문학가 윤석중씨는 1976년 "(운동회 종목에 관해) 일률적으로 이러이러한 것을 하라는 것은 학교에 고통을 주는 것"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언론은 "모처럼 부활한 운동회에서 겨우 한다는 것이 가마니 짜기, 화생방 대비 경기 등 살벌하고 딱딱한 종목이냐"고 따졌다.

한국군이 베트남전에 참전 중이던 1960년대 후반엔 어린이 운동회에 '베트콩 잡기' 종목도 있었다. 1968년 가을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아들 지만군이 다니던 서울사대부속초등학교 운동회에 찾아갔을 때, 지만군이 출전했던 종목이 베트콩 잡기였다. 하필이면 이날 지만군의 성적은 좋지 않았다. 육영수 여사는 "대통령이 보고 계셔서 지만이가 긴장한 나머지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얼마나 서운해하겠냐"고 아쉬워했다.

대통령까지 운동회에 관심을 쏟았지만 지난 반세기, 어린이들 운동회가 걸어온 길은 순탄치 못했다. 경제가 어려웠던 1960~1970년대엔 숱한 학교가 돈이 없어 운동회를 못 열었다. 이젠 경제적 형편도 나아졌고, 운동회에 대한 권력의 간섭도 없다. 하지만 또 다른 방해자가 나타났다. 미세 먼지다. 5월 들어 심해진 미세 먼지 때문에 운동회가 잇따라 취소되는가 하면, 마스크를 쓰고 경기하기도 했다고 한다. 충분히 뛰어놀지 못하는 요즘 아이들이 하루만이라도 맘껏 몸과 마음을 풀 수 있도록 어른들이 묘안을 짜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