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는 수산업? 한 벌에 물 7000 사용, 이산화탄소 32.5kg 발생
약품 바르고 긁어내고 빠는 수십 단계 워싱 공정 거쳐 완성
가격만 따지는 의류 업체들, 질 낮은 중국산 청바지 '난립' 부추겨
레이저 워싱, 워터리스 진 등 친환경 청바지를 위한 움직임도 일어

워싱은 청바지의 품질을 좌우한다. 한 벌의 청바지를 워싱하는 데는 약 30ℓ의 물이 필요하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 입는 청바지. 한 벌의 청바지를 제작하는 데는 무려 40여 단계의 공정이 필요하다. 면사를 만들기 위한 목화를 생산하는 것부터 염색, 직조, 워싱, 가공, 후처리까지 모든 단계를 거치는 데 수많은 인력과 환경자원이 활용된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청바지 한 벌을 생산하는 데 32.5kg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이는 어린 소나무 11.7그루를 심어야 상쇄할 수 있는 수준이다. 직조와 염색, 워싱 과정에서 사용되는 물은 약 7000ℓ로, 우리나라 4인 가족을 기준으로 잡을 때 5~6일 사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이다. 오죽하면 청바지 산업은 수(水)산업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 조사에 따르면 국내 청바지 시장규모는 2010년 4787억 원에서 2012년 5359억 원, 2015년 6115억 원 규모로 매년 성장하고 있다. 그만큼 더 많은 물이 사용되고 환경 파괴적인 과정이 동반됨을 의미한다.

◆ 새파란 생지가 밝고 부드러운 청바지가 되기까지… 파란 물은 어디로 흘러갈까?

동두천에 위치한 신진 워싱을 찾았다. 찢기고, 긁히고, 달궈지고, 삶아지고, 기자가 목격한 청바지의 워싱 과정은 그야말로 고문에 가까웠다.

원단의 색을 탈색시키는 세탁 공정인 워싱(Wahing)은 청바지의 품질을 좌우한다. 봉제 과정을 마친 빳빳한 생지 청바지는 약품을 바르고 긁고 빠는 수십 단계의 공정을 거쳐 완전한 청바지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공장을 운영하는 김광수 대표는 “같은 원단과 봉제를 한 청바지라도 워싱만으로 70개 이상의 다른 디자인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워싱 공정에는 많은 물과 전기, 화학약품이 사용된다. 모든 공정은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워싱 공정에는 많은 물과 전기, 화학약품이 사용된다. 이전에는 청바지와 화학약품을 함께 세탁해 탈색하는 수준이었지만, 요즘엔 낡고 헤진 느낌의 청바지가 유행하면서 공법이 다양해졌다. 화학약품을 사용해 특정 부분을 탈색시키거나, 부석(화산의 용암이 갑자기 식어 굳어진 돌)을 청바지와 함께 세탁해 물을 빼는 공법, 금강석을 강한 압력으로 쏴 마모시키는 샌드블라스트(Sandblast∙모래 분사) 공법, 뜨거운 철제봉에 청바지를 입혀 자연스러운 주름을 내는 엠보싱 공법 등 효과를 내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모든 공정은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작업자들은 각종 화학약품과 분진, 고열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김 대표는 “예전보다 환경이 많이 나아졌지만, 청바지 가공 과정은 결코 환경친화적이라 할 수 없습니다. 염색과 워싱 과정에서 인체에 해로운 화학약품이 사용되고, 인위적으로 마모하고 긁는 과정에서 섬유 먼지와 모래 분진 등이 발생해 호흡기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물과 가스 사용량도 엄청나죠”라고 말했다.

뻣뻣한 인디고(Indigo∙파란 염료) 생지가 옅고 부드러운 청바지가 되기까지는 여러 번의 탈색과 세탁 과정이 필요하다. 그만큼 많은 물이 사용되고 폐수가 배출된다.

워싱 공장에서 배출되는 폐수는 두 번의 정화를 거쳐 하수종말처리장으로 흘러간다.

공장 뒤쪽에 있는 폐수 처리 시설을 찾았다. 푸른 거품을 얹은 잉크색 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 폐수는 공장에서 두 번의 정화 과정을 거쳐 인근 하수종말처리장으로 흘러간다. 시설 안쪽으로 더 들어가니 역겨운 냄새가 났다. 미생물을 사용해 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이 미생물이 색소를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래서인지 물의 농도는 옅어졌지만, 푸른 빛은 여전했다.

자체 정화를 거친 폐수는 하수종말처리장으로 흘러가 또 한 번의 정화 과정을 거친다. 이옥란 동두천시청 환경보호과 팀장은 “동두천에 있는 모든 워싱 공장은 법정 기준에 준수해 폐수를 처리하고 있다. 폐수 방류 기준에 따라 정기적으로 점검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 청바지 한 벌 만드는 데 물 7000 필요… 화학약품 사용에 따른 안전성 논란도 제기

청바지의 안전성 문제는 여러 차례 제기돼 왔다. 2013년 한국소비자연맹이 시중에 판매되는 청바지의 안전성을 시험한 결과, 일부 청바지에서 발암물질이 기준치 이상 검출됐고 몇 개 제품에서는 내분비계장애 유발물질인 NPEs가 검출됐다. 2014년에는 녹색소비자연대가 아동복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에서 주요 아동복 브랜드의 청바지에서 환경호르몬이 검출돼 논란이 일었다.

시험 단체들은 청바지 생산 과정에서 사용되는 유해물질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정확한 안전기준 및 규제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당시 유해물질이 검출된 업체 중 하나였던 A 업체 관계자는 “한국의류시험연구원(KATRI)을 통해 전 제품의 원단과 약품, 세정제 등의 안정성을 시험하고 있어 우려할 필요 없다”고 밝혔다. 현재 대부분의 의류 업체가 의류시험연구원의 테스트를 거쳐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2010년에는 워싱 기술 중 하나인 샌드블라스트 공법이 논란이 됐다. 강한 바람으로 모래를 분사해 천을 깎아내는 이 공법은 자연스러운 마모 효과를 주지만, 작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리카(이산화규소∙SiO2) 먼지가 작업자의 호흡기로 들어가 규폐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가 커지자 이를 반대하는 반(反) 샌드블라스팅 운동이 일어났고 리바이스, H&M, 디젤, 지스타, 구찌 등이 동참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업체가 샌드블라스트 공법을 사용하고 있다.

친환경 워싱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유럽과 같은 패션 선진국에서는 오존 워싱과 레이저 워싱 등 에코 워싱 기술이 대중화됐다. 오존 워싱은 전기로 오존을 발생시켜 색을 변화시키는 기술로, 화학약품 없이 소량의 물로 워싱 효과를 낼 수 있다. 레이저 워싱은 레이저 광선을 통해 색을 탈색시키고 무늬를 만드는 기술이다.

레이저 워싱은 물과 화학약품 없이 레이저 광선으로 워싱 효과를 낼 수 있다.

국내에서도 친환경 워싱 기법이 시행되고 있다. 신진은 전통적인 물 워싱과 에코 워싱 기술을 병행한다. 김 대표는 “오존 워싱과 레이저 워싱은 환경 오염을 줄이고 작업환경도 개선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식입니다. 일반 워싱이 30ℓ의 물이 사용되는 데 반해, 오존 워싱은 3ℓ면 워싱을 할 수 있어요. 전기도 70%까지 절약할 수 있죠. 하지만 아직까진 인지도가 낮고 손으로 하는 워싱에 비해 자연스러움이 떨어져 수요가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유명 의류 업체들도 제조 공법을 개선하고 있다. 리바이스는 2011년부터 물 사용을 줄인 워터리스(Water Less) 진과 페트병과 맥주병을 재활용해 만든 웨이스트리스(Waste Less) 진을 선보였다. 리바이스에 따르면 워터리스 공법은 청바지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하루 60ℓ의 물을 1.4ℓ까지 줄여준다. 회사 측은 이 공정을 구축한 이후 지금까지 10억 ℓ의 물을 절약하는 데 기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쉽게도 국내 매장에서는 이 제품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 저가만 따지는 의류 업체들… 질 낮은 중국산 청바지 ‘난립’ 부추겨

국내에서 생산되는 청바지 제작 원가는 디자인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보통 2~3만 원 선이다.

하지만 패스트 패션으로 대표되는 SPA 브랜드의 청바지 가격은 3만9000~7만9000원대다. 기자가 한 SPA 매장에서 본 청바지도 보기 좋게 물이 빠진 최신 디자인이었지만, 가격은 3만9000원이었다.

한 데님 제조업체 관계자는 “여성용 청바지 한 벌을 만드는 데 원단이 1.3야드 정도 드는 데, 원단값만 4500~5000원이에요. 그런데 중국산 청바지의 수입 원가는 7000원입니다. 저렴한 인건비를 감안하더라도, 저품질의 원단을 사용하고 저급한 가공을 거쳤을 거라 짐작됩니다. 이런 옷은 질이 떨어져 몇 번 입을 수도 없어요”라고 말했다.

리바이스의 워터리스 진(왼쪽)과 웨이스트리스 진(오른쪽) 이미지

신진의 김 대표는 어떻게 만드느냐(친환경 워싱 공법)보다 낮은 가격에 더 가치를 매기는 시장의 분위기를 아쉬워했다.

“아무리 좋은 품질의 제품을 내놓아도 의류 업체나 유통 업체는 낮은 가격을 원해요. 품질 좋은 국산 제품보다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생산된 저가 제품을 더 선호하는 게 현실이죠. 우리만 해도 예년 이맘때 8000벌 이상의 물량을 처리했는데, 요즘엔 4000벌 수준으로 주문량이 뚝 떨어졌어요.” 15년간 동두천에서 데님 워싱 공장을 운영해온 김 대표는 저가 데님에 밀려 주문량이 줄면서 베트남으로 공장 이전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한편 최근 데님 시장에는 워싱을 하지 않은 청바지나 안 입는 청바지를 재활용해 만든 업사이클 청바지가 하나의 트렌드로 등장했다.

스웨덴의 청바지 브랜드 누디진은 후 가공을 뺀 생지 데님으로 청바지 마니아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인위적인 워싱이 아닌 입는 사람의 체형과 생활습관에 따라서 서서히 워싱 효과를 만들어간다. 이 브랜드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누가 더 오래, 누가 더 예쁘게 입었는지 경쟁하는 공모전을 개최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베트멍은 2014년 중고 시장에서 구한 청바지를 해체한 후 재조합한 업사이클 청바지를 선보여 새로운 유행을 만들었다. 이 청바지는 100~200만 원대의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없어서 못 팔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리바이스 청바지를 재활용한 리던(RE/DONE)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업사이클 청바지는 환경친화적이면서도 개성을 강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프리미엄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