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사진 하면 생각나는 학교는?’

이 질문은 적어도 대한민국 인터넷 상에선 딱히 이견이 없다. 경기도 북부에 있는 ‘의정부고등학교’. 몇 해째 이어지는 졸업사진 촬영 전통은 네티즌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으며, 졸업사진 촬영일이 되면 교내 상황이 실시간으로 소셜미디어에 중계되기도 한다. 이 쯤에서 네티즌이 선정한 지난해 최고 작품을 복습해보자.

유명 영화감독과 여배우를 패러디한 의정부고 학생들.

다시 봐도 가슴 주머니의 볼펜 디테일에 부… 아니, 무릎을 탁! 치게 된다.

그런데 1일 오전 한 인터넷 커뮤니티 이용자는 ‘의정부고등학교 졸업사진 전통에는 원조가 따로 있다’고 주장하며 증거로 빛바랜 흑백 사진 한 장을 제시했다. 작성자는 이 사진이 1929년 경성고등공업학교 졸업생들의 졸업 기념 사진이라고 밝혔다.

1929년 경성고등공업학교 조선인 졸업생들의 기념사진.

1929년이라는 느낌은 단번에 전달된다. 그런데 졸업사진이라기엔 사진 속 인물들의 복장이 수상하다. 졸업 사진에 어울리는 복장은 맨 앞줄에 학사모를 쓰고 앉은 남자 1명밖에 없다. 그의 오른쪽엔 왠 찰리 채플린이, 뒷줄에는 빠삐용이 있다.

이 사람이 훗날의 천재 시인.

학사모의 왼쪽에는 전통 혼례 복장을 하고 있는 신랑 신부가 있다. 분명 결혼 사진이 아니라 졸업 사진이라고 했다. 표정 살벌한 신부가 여성이 아닌 것 같긴 하다. 글 작성자는 신부 복장을 한 이 학생이 바로 시인 이상이라고 밝혔다. 날카로운 눈매와 뚜렷한 콧날이 두드러진 얼굴은 훗날 천재 시인으로 이름을 떨치는 그 남자가 틀림없어 보인다.

시인 이상의 본명은 김해경. 이상은 1926년부터 29년까지 경성고등공업학교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당시 졸업생 69명중 조선인은 17명이었는데, 그는 조선인 동기들과의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1928년 가을부터 함께 사진을 촬영해 사진첩을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천재 시인의 발랄한(?) 졸업 기념 사진을 본 네티즌들은 ‘저렇게 졸업사진 찍는게 전통이 있었구나’, ‘괜히 이상이 시대를 앞서간 천재 소리를 듣는게 아니라니까’, ‘선생님 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도 개성이 있다’ 등의 댓글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