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투스·와이파이 있는데..."세계최초 초고속 사물인터넷망 구축"
중구난방 공약발표 원인은...文의 낮은 이해도와 참모조직 난립 때문

"세계에서 제일 먼저 초고속 사물인터넷망(網)을 구축하겠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 2월 1일 서울 영등포구 꿈이룸학교에서 열린 '4차 산업혁명, 새로운 성장의 활주로' 토론회에서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문 후보는 지난 14일 한 정보통신기술(ICT) 관련 매체들이 주최한 포럼에서도 '사물인터넷망'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러자 전문가들은 "문 후보가 IoT의 기술 특성을 모르는 것 아니냐"라고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IoT는 센서와 근거리 통신망으로 일상 속 사물들을 연결해 만들어지는 다양한 서비스(Everything as a Service)를 일컫는 개념이다. IoT는 기존의 광대역 인터넷망과 근거리 통신으로 각 사물에 결합된 센서가 연결되면서 작동된다.

따라서 IoT망이라는 표현은 잘 쓰지 않는다. IoT망이 곧 와이파이(WiFi)이고 블루투스(Bluetooth)다. 이런 근거리 통신 기능들은 IoT기기들에 이미 내장돼 있다. 근거리 통신이라 속도가 문제되는 경우도 많지 않다. 다만 통신사들이 통신범위 확대·접속 안정성을 위해 IoT 전용망을 만들기는 했다. 그러나 SK텔레콤은 이미 전국망 구축을 완료한 상태다. KT와 LG유플러스도 오는 상반기 중으로 전국망 구축이 끝낼 것으로 보인다. 이들 망은 IoT기기의 단가와 배터리 문제 때문에 저속·저전력을 추구한다.

IoT의 품질은 평가하는 기준은 오히려 서비스의 창의성과 다양성이다. 따라서 '망 구축'보다 다양한 '서비스 개발'이 중요한 과제다. 이 때문에 업계의 관심사는 규제를 풀어 새로운 서비스의 가능성을 여는 데 집중돼 있다. 굳이 '하드웨어' 차원에서 접근하다고 해도 망보다 센서가 문제다. 센서 기술력이 높아지면 다양한 서비스 개발이 가능하다. 정부가 2014년 발표한 사물인터넷 기본계획을 보면 'IoT 서비스 발굴·개발', 'IoT기기· 내장 센서 산업 육성'이라는 과제는 있어도 'IoT망 구축'이라는 내용은 없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3월 2일 서울 구로구 G-벨리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ICT(정보통신기술) 현장 리더들과 간담회에서 민간 일자리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선대위, '4차 산업혁명'과 '4차 산업' 구분 못하나"

문 후보의 선대위 산하 조직인 '4차산업성장위원회(위원장 정장선)'는 문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의 한계가 드러난 사례다. 이 조직의 이름이 알려진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선대위 차원에서 '4차 산업혁명'과 '4차 산업'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일반적으로 4차 산업혁명은 정보통신기술(ICT)과 다른 산업분야의 '융합'에 따른 경제·사회의 급격한 변화를 일컫는다. ICT 기술 발전 초기의 정보화·자동화의 성과에 방점을 둔 '3차 산업혁명'과 구분하고 '융합'의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 '4차'라는 표현을 쓴다. 반면 '4차 산업'은 정보·교육·의료 등의 분야를 망라한 지식·정보 산업을 지칭한다. 전통적 산업분류에서 3차 산업인 서비스업과 구분하기 위한 표현이다.

선대위 관계자는 "'4차산업성장위원회'는 '신성장 산업' 및 '4차 산업혁명' 등에 대한 문 후보의 정책을 전문가 집단과 업계에 알리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조직"이라며 "국회의 관련 상임위 소속 의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결국 선대위는 지난 20일 '4차 산업혁명 추진위원회(위원장 변재일)'를 신설했다.

◆ "노동력감소 대응책이 촉발한 4차 산업혁명이 '일자리확대' 정책?"

문 후보의 4차 산업혁명 공약의 목표가 4차 산업혁명의 특징에 부합하느냐는 의문도 나온다.

문 후보는 4차 산업혁명을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계기로 본다. 그는 지난 12일 경제비전 발표 기자회견에서 4차 산업혁명 등 10대 핵심분야에 투자해 연평균 50만 개 이상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공약을 밝혔다. 이를 위해 IoT·빅데이터·지능정보사회의 기반을 만드는 인프라에 투자하겠다고 했다.

문 후보는 중소벤처기업부를 신설해 창업과 고용을 지원하고 규제를 완화하며, 성공한 벤처의 엑시트(자금 회수)를 쉽게 만들어 4차 산업혁명 분야의 창업을 대폭 늘리겠다는 공약도 냈다. 문 후보측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현재 10% 이하의 연간 창업 기업 증가율을 김대중정부에 준하는 20%대까지 끌어올리면 임기내에 창업을 통해 100만개 넘는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은 신산업에서 단기적인 양적 목표에 맞춰 노동 수요(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시작된 변화가 아니다. 4차 산업혁명의 흐름을 촉발시킨 기술혁신은 노동 공급의 감소에 대응 위해 출발했다. 독일의 스마트공장, 일본의 로봇, 미국의 인공지능 기술 모두 사람이 하던 일을 기계가 대신하는 기술이다.

벤처기업의 고용 창출 능력도 예전같지 않아 실질적인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을지도 미지수다. 지난해 5월 현대경제원연구에 따르면, 벤처기업 당 평균 근로자는 2010년 27.3명에서 2014년 24.0명까지 매년 감소했다.

한 ICT 전문가는 "4차 산업혁명 용어의 출발점이 된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은 저출산·고령화 기조에서 숙련된 기술을 갖고 있던 노동력이 은퇴하는 등 전체 노동 공급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독일이 제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고민한 결과"라며 "창업이 중요하긴 하지만 더 구체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너도나도 "내가 文의 4차 산업혁명 참모"

문 후보의 4차 산업혁명 정책의 난맥상은 선대위 안에 '4차 산업혁명' 정책 참모들이 난립한 결과다.

문재인 후보에게 '4차 산업혁명' 관련 정책에 대해 조언하는 전문가들 중 언론에 공개된 사람들만 십수명이다. 국민성장 소속 김정호 카이스트 교수, 선대위 일자리위원회의 유웅환 전 인텔 매니저 같은 기술 분야 전문가들이 있고, 당내 위원회를 맡은 물리학 박사 출신의 문미옥 의원, 벤처 기업가 출신 김병관 의원 등도 있다. 네거티브 규제 분야에서는 김광두 서강대 교수와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정책을 만들고 있다.

서로 다른 전공 분야의 전문가들 사이의 논의에는 한계가 있다. 투표일에 가까워지면서 추가로 영입된 인사들은 토론할 시간적 여유도 없다. 각 전문가 그룹별로 만들어낸 결과물은 상호검증을 제대로 거치지 못하고 언론에 발표됐다. 기술 및 창업 분야 외부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의 기술 발전 방향에 대한 정책을 만들고, 야당 시절부터 민주당의 통신정책을 만들어온 전문가들은 통신비 인하 정책을 만들어 내놓는 식이다.

참모 조직이 난립하다보니 문 후보의 4차 산업혁명 정책은 역설적으로 현 정부의 창조경제정책과 매우 닮게 됐다. 문 후보가 자주 이야기하는 스마트고속도로는 도로와 차량 등에 통신기술을 적용해 교통시설의 이용 효율과 안전성을 높이는 시스템인데, 국토교통부와 고속도로공사가 시범사업 중인 차세대 지능형 교통체계(C-ITS)와 같은 내용이다. 제목을 가리고 보면 미래창조과학부의 올해 사업계획과 문 후보의 4차 산업혁명 공약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다.

◆ 文, 뒤늦게 선대위 '4차 산업혁명' 관련 조직 정비

문 후보 선대위 안에서는 "지금이라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시야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선대위에 난립한 4차 산업혁명 관련 조직들을 정리하고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선거 기간에 정책도 교통정리가 안되는 상황에서 집권하면 정부정책을 총괄하는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어떻게 운영하겠나"라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문 후보는 뒤늦게 조직 정리를 시작했다. 21일 오전에는 선대위의 4차산업혁명추진위, 4차산업성장위와 민주당의 신성장특별위원회(위원장 김병관), 과학기술특별위원회(위원장 문미옥), 싱크탱크 '국민성장'의 전문가 그룹, 일자리위원회 ICT 전문가 등을 모두 묶어 '4차 산업혁명 및 신성장 전문가 네트워크'를 발족시킬 계획이다. 이들은 선대위 내에 4차 산업혁명 관련 정책을 종합하고 이들 사이의 정합성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