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 순위에 ‘주적’이 올라왔다. 主敵. 가장 큰 적을 말한다. 전날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유승민 후보와 문재인 후보 사이 뜨거운 설전의 주제였던 단어다.
유승민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대화는 이랬다.
유: 북한이 우리의 주적입니까? 주적?
문: 대통령으로서는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유: 아니 아직 대통령이 안 되셨으니까.
문: 대통령이 될 사람이죠. 대통령은 앞으로 남북관계 풀어가야 될 사람이에요.
유: 대통령 되시기 전에 우리나라 대한민국 국방부 국방백서에 '북한군은 우리 주적이다', 이래 나오는데?
문: 국방부로서는 할 일이죠. 그러나 대통령이 할 말은 아니라고 봅니다.
유: 아니 문후보님께서 지금 대통령이 벌써 되셨습니까?
문: 그렇게 강요하지 마십시오. 후보님도 마찬가지로 대통령이 되시면 남북간 문제를 풀어가야 될 입장이에요. 필요할 때는 남북 정상회담도 필요한 거고, 그래서 국방부가 할 일이 있고 대통령이 할 일은 따로 있는 것이죠.
유: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문서에 북한군이 주적이라고 나오는데 대한민국 국군 통수권자가 북한군, 주적을 주적이라고 못한다 그거 말이 되겠습니까?
문: 저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유: 주적이라고 말씀못하신다는 거죠?
문: 제 생각은 그러합니다.
―유: 주적이라고 말씀 못하신다는 거죠?
문: 대통령 될 사람이 해야 될 발언은 아니라고 봅니다.
―유: 알겠습니다.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다
유승민 후보는 "국방부 국방백서에 북한이 '주적'이라고 나온다"고 했다. 그러나 '주적'이라는 표현은 13년 전인 2004년 국방백서에서 사라졌다.
국방부도 20일 "주적 개념은 우리가 쓰지 않는다"며 "여러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다만 "주적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북한 정권을 적으로 규정한 것만으로도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표현을 한 것"이라고 했다.
국방백서상의 '주적(主敵)' 표현은 지난 1994년 제8차 실무 남북접촉에서 북한측 박영수 대표의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발언이 나온 뒤 1995년 국방백서에서 처음 사용됐다. 그러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국방백서 이후 '직접적 군사위협', '현존하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 등으로 대체됐고, 이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 국방백서에서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 핵·미사일 등 대량 살상무기의 개발과 증강, 군사력 전방 배치 등은 우리 안보에 직접적이고 심각한 위협이다"라는 표현으로 바뀌었다.
국방백서에 '적' 개념이 부활한 것은 2010년 천안함 폭침(爆沈) 이후다. 당시 북한을 다시 '주적'으로 국방백서에 명시하는 방안이 거론됐지만, 군 내부적으로 "북한이 주적이라는 '주적 개념'은 계속 유지해왔고, 종전의 '직접적이고 심각한 위협'이라는 표현도 북한의 위협을 충분히 나타내고 있다"고 판단해 직접적으로 명시하지 않았다.
대신 '북한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다'라는 문구를 넣었다. 적의 범위를 북한군과 정권으로 한정해 북한 주민과 차별성을 둔 것이다. 이 기조는 지난 2016년 국방백서에까지 이어져 "위협이 지속되는 한 그 수행 주체인 북한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다"라는 표현으로 유지되고 있다.
19일 토론 이후 일부 네티즌들은 "헌법에서도 북한을 주적이라고 규정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제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조항에 따라 북한 지역을 헌법상 우리 영토로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주적' 썼나?
문재인 후보가 토론에서 "북한=주적은 대통령이 할 말이 아니다"라고 발언한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도 '주적' 표현 없애도 된다고 했다"는 내용의 기사 캡쳐 이미지가 인터넷에 퍼졌다. 2005년 3월 17일 프레시안에 실린 기사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남북한 관계에는 이중성이 있다"며 "군사적으로 북한은 주적이 맞지만 남북한 경제교류를 활성화시키고 통일에 대비해야 하는 면이 있다"고 했다. "주적 표현이 없어진다고 하더라도 당장 우리 군의 변화는 없을 것이며 군은 안보의식을 갖고 든든하게 나라를 지킬 것"이라고 언급했을 뿐, "주적 표현을 없애도 된다"고 말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주적개념이 필요없으려면 북한의 군사적 의지와 군사적 능력, 군사적 대치에 있어서 변화가 있어야 한다"며 "북한은 한반도 적화통일을 규정한 노동당 규약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재래식 무기의 40%를 휴전선 인근에 배치하고 장사정포로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