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아 최인아책방 대표·전 제일기획 부사장

오래전 인간 세상에서는 말보다 주먹이 먼저였을 거다. 그러나 문명화된 세상에서 승부는 대개 말로 이루어진다. 책방을 열기 전 오래도록 나의 일이었던 광고가 특히 그렇다. 소비자를 설득해 마음을 얻어야 하는 광고에 있어 말은 중요한 무기다.

광고는 준비하는 과정부터가 말이다. 광고주에게 아이디어를 설득하는 프레젠테이션 말이다. 이 작업이 잘되어야 고생해서 만든 광고 안(案)이 빛을 보기 때문에 광고 회사로서는 중요한 승부처다. 아이디어가 정해지면 광고 회사는 여러 차례 리허설을 하며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한다. 파워 포인트를 근사하게 잘 만드는 것은 기본이고 설득력이 높은 프레젠터를 골라 내세운다.

현역으로 일할 때 나도 프레젠터로 많이 나섰다. 남자 선배들이 도맡아 할 때였는데 내가 참여한 프로젝트는 점차 내가 프레젠터를 맡게 되었다. 핵심 아이디어가 내게서 나왔고, 따라서 왜 그 아이디어라야 하는지는 내가 가장 잘 설득할 수 있었으므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설득이란, 말이되 그저 말이 아니라 생각이라는 것을.

이 때문에, 누군가 써준 것을 그대로 말하거나 다른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것을 그저 입으로 옮겨 말해서는 아무리 제 것인 양 해도 힘이 없을뿐더러 티가 난다. 말이란 곧 생각이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자기 생각 없이 말을 잘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자기 생각이란 오랜 시간 천착해야 겨우 만들어진다. 생각하고 또 생각한 끝에 도달한 단단한 자신의 관점이 있어야 역시 단단하게 무장한 상대의 마음을 열고 설득할 수 있다.

엊그제 대통령 후보들의 TV토론을 보니 비로소 후보의 면면이 보였다. 앞으로 몇 차례 더 토론이 있다고 하니 유심히 지켜볼 작정이다. 마침 우리 책방은 '생각의 힘'을 내세운 터다. 어떤 후보가 과연 대통령으로서 생각하는 힘을 제대로 갖췄는지 책방 주인으로서 심히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