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원택 tvN PD

며칠 전 사내(社內) 방송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최근 연출을 맡은 'SNL 코리아 시즌9' 속 코너 '미운 우리 프로듀스 101'(SBS '미운 우리 새끼'와 엠넷 '프로듀스 101'을 패러디해 대선 정국을 풍자하는 코너다) 덕분에 들어온 요청이었다. 방송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고, PD 생활 전반에 대한 질의응답이 오갔다. 막힘 없이 대답을 이어가다가 마지막 질문에서 멈칫했다. 질문은 이랬다.

"PD에게 '열정'이란 무엇입니까?"

열정이라는 게 대체 뭘까. 말문이 막혔다. 열정(熱情)은 '더울 열'과 '뜻 정'을 합친 단어다. 글자대로 풀이하자면 '뜨거운 마음'이다. 객관적인 측정도, 증명도 불가한 '마음의 온도'인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이 온도를 누군가를 평가하는 잣대로 삼는다. '꼰대 상사'를 묘사할 때 등장하는 단골 대사가 "젊은이들은 열정이 부족해" 아닌가. 언제부터 열정이란 단어가 사람들 입에 쉽게 오르내리게 된 걸까.

열정을 쉽게 논할수록 그것은 우리 삶을 더 맹렬하게 몰아붙인다. 우리는 학교와 일터, 취업 시장에서 열정을 강요받는다. 누군가는 '열정페이'에 착취당하고, 누군가는 '열정 부족'이라는 탈락 사유를 받아든다. '마음의 온도'란 나 자신만 알 수 있거늘, 어째서 타인이 내 열정에 왈가왈부하는 사회가 된 걸까. 사랑에 정답이 없듯, 열정도 함부로 논해선 안 될 대상 아닌가.

짧은 순간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말문이 더 막혔다. 열정에 대해 논할 자격이 있는가, 의구심이 들어 입 떼기가 조심스러웠다.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이 카메라에 담기는 사이, 사내 방송 PD의 얼굴은 점점 굳어져 갔다. 생방송이었다면 분명 방송사고였다.

'나는 어떤 뜨거운 마음으로 방송을 연출하는가.' 속으로 자문자답(自問自答)을 하고서야 입이 떨어졌다. "열정이란 초심을 지켜나가려는 마음 아닐까요? 다시 정치 풍자로 기지개 켠 'SNL'처럼요."

사람들 각자가 제자리에서 '마음의 온도'에 집중한다면, 세상은 그만큼 더 뜨거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