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아사다 마오(왼쪽)가 금메달을 차지한 김연아를 바라보는 모습.

승부의 세계는 비정하다. 같은 하늘 아래 1등이 둘일 순 없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많은 스포츠 선수가 눈물을 흘린다. '피겨 여왕' 김연아(27)와 동시대를 살았던 아사다 마오(27·일본)가 그런 운명을 타고난 스케이터였다.

아사다는 10일 늦은 밤 자기 홈페이지를 통해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 '알려 드립니다'라는 제목으로 써내려간 은퇴문에서 아사다는 '갑작스럽지만 피겨 선수로서의 삶을 마무리하기로 결정했다'며 '지금까지 스케이트를 신고 많은 일을 극복할 수 있었던 건 여러분의 응원과 지원 덕분'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해 말 일본선수권(당시 12위)을 마친 후 나를 지탱해 왔던 목표가 사라졌고, 선수생활을 계속할 기력을 잃었다'면서도 '피겨 인생에 후회는 없다'고 덧붙였다. 2018년 평창올림픽 도전 뜻을 수차 밝혔던 아사다는 결국 22년 피겨 인생을 11개 문장의 짧은 성명으로 마무리했다.

아사다는 김연아와 함께 2000년대 중반부터 10여 년간 세계 여자 피겨 무대를 양분했다. 다섯 살 때 스케이트를 처음 신은 아사다는 어린 시절부터 '천재 소녀'로 주목받았다. 힘과 탄력을 타고난 그는 이미 12세 때 최고 난도 점프인 '트리플 악셀'(3회전 반 회전)에 성공했던 인물이다.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2004), 주니어 세계선수권(2005) 정상을 차례로 정복한 아사다가 2005년 말 성인 무대인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까지 정복하자 일본 내에선 'ISU(국제빙상연맹) 규정을 바꿔서라도 아사다를 2006 토리노올림픽에 보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만15세 이하 올림픽 출전금지'라는 선수 보호용 나이 제한 규정이 아니었다면 아사다는 토리노 챔피언이 될 수도 있었다. 그만큼 압도적인 선수였다.

김연아에 밀려 2인자에 머물렀지만, 아사다 마오는 세계 피겨의 중심을 아시아로 옮겨온 뛰어난 선수였다. 그는 평창올림픽을 10개월 앞두고 은퇴를 선언했다. 올림픽 금메달의 꿈은 이루지 못했어도 “피겨 인생에 후회는 없다”는 소감을 밝혔다. 2013년의 연기 모습.

독주가 예상됐던 그의 피겨 인생에 '필생의 라이벌' 김연아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2006년이었다. 주니어 시절 한 수 아래로 평가받던 김연아는 성인 무대에 들어서며 비약적으로 성장했고, 나서는 대회마다 아사다와 1~2위를 다퉜다. 세계 피겨의 중심이 유럽과 북미에서 아시아로 옮겨온 시기였다. 2007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김연아가 우승(아사다 준우승)을 하면, 1년 뒤 같은 대회에서 아사다가 우승(김연아 준우승)하는 식이었다. 나이도 같고, 생일도 같은 달(9월)인 두 사람은 연기와 점프뿐만 아니라 음악·의상·화장법까지 모두 비교 대상이었다. 아사다는 당시 인터뷰에서 "우리는 동갑이고, 같은 달에 태어났고, 키도 비슷하고, 같이 스케이트를 탄다. 운명인 것 같다"고 한 적이 있다.

[김연아 끝내 못넘은 아사다 마오, 비운의 은퇴]

둘의 운명이 결정적으로 갈린 건 2010 밴쿠버올림픽 때였다. 아사다는 주 무기 트리플 악셀을 갖고 있었고 김연아는 점프·표현력에서 완벽에 가까운 선수로 성장해 있었다. 두 요정의 밴쿠버 경쟁은 '세기의 대결'로 불릴 만큼 뜨거웠다. 승자는 총점 23.06의 큰 차이로 금메달을 따낸 김연아였다. 그때부터 '공식 2인자'가 된 아사다는 4년 뒤 소치올림픽에도 도전장을 냈지만, 김연아가 은메달로 선전한 반면 실수를 연발하며 6위에 머물렀다.

김연아가 은퇴한 후에도 아사다는 스케이트를 벗지 않았다. 올림픽 '금메달' 꿈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자신이 여섯 번의 타이틀을 거머쥐었던 일본선수권에서 12위까지 떨어지자 은퇴를 결심했다.

아사다의 은퇴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 주요 신문은 1면에 대서특필했고, NHK 등 방송사들은 '아사다 특별 방송'을 편성했다. 세계 피겨 선수들의 응원도 잇따랐다. 전 일본 피겨 국가대표 안도 미키는 인스타그램에 '같은 시대에 당신과 경쟁해 영광이었다'고 썼다. 한 한국 네티즌은 "아사다가 없었다면 김연아도 이렇게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22년 정든 얼음판을 떠나는 아사다는 은퇴문 마지막에 이렇게 썼다. '큰 결정이지만, 인생에서 하나의 통과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새 꿈과 목표를 찾아 나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