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실제 우주 공간에선 '고요하다'는 표현은 맞지 않다. 진공상태인 우주는 아예 소리가 없다. 'Silence'가 아닌 'Mute' 상태인 것이다. 공기 흐르는 소리조차 들을 수 없는 무음 상태에서는, 우주가 아무리 그 끝이 가늠조차 되지 않는 광활한 공간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 덩그러니 홀로 놓여진 사람은 오히려 엄청난 '폐소공포증'에 시달릴 지도 모른다.

지금 공포라는 감정을 생생하게 느끼고 있는 나 자신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우주는 너무 광활하여 내 존재는 먼지만도 못한 無와 다름없다. 그것이 또한 극도의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내가 산소가 부족하여 질식해 죽든, 온도가 너무 낮아 얼어 죽든 우주는 여전히 잔인하도록 고요할 것이다.

영화 '그래비티(2015)' 스틸

우주에 홀로 남은 사람이 광활한 우주에서 먼지처럼 떠돌 때 끝내 이 사람이 느끼게 될 감정은 뭘까. 오히려 공포를 초월한 편안함이 아닐까.

흔히 우주의 기원을 탐구하다 보면 결국 생명 탄생의 기원으로 그 고민이 이어지게 된다. 영화 '루시'의 클라이맥스를 보면, 뇌를 100%를 쓸 수 있게 된 주인공 루시가 만물의 이치를 깨닫는 순간의 이미지가 그러하다. 우주의 끝을 향해 뻗어나가는 루시의 깨달음은 결국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듯한 생명 탄생의 순간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영화 '루시(2014)' 스틸

우주에 대해 갖는 사람들의 감정은 이중적이다. 매우 낯설지만 무척 아름답고, 공포스럽지만 안정적이다. 이 이중적 시선은 사실 우주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는 우주 안에 살지만 우주에 대해서 알고 있거나 깨달은 것은 얼마쯤이나 될까. 그 지식의 양은 아마도 먼지만도 못한 수준이 아닐까.

우주를 다룬 영화들이 무척 많다. 그리고 영화들마다 우주에 대해서 갖는 시선도 아주 다양하다. 게다가 영상 기술력이 발전할수록 우주를 묘사하는 상상력도 놀랍도록 진일보했다. 각각의 영화는 실감나는 우주의 비주얼을 담고 있는 동시에 묵직한 주제 의식을 담고 있어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우주를 향한 태도도 영화마다 서로 무척 상반된다.

최근 상영된 우주 SF 영화들 중 걸작으로 평가된 몇 편의 영화를 살펴보려 한다. 첫번째 영화는 가장 최근에 개봉된 '라이프'다.

영화 '라이프'에서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발견된 외계 생명체로 인한 일련의 사건들을 다룬다. 세포로 발견된 화성의 생명체, '켈빈'이 점점 자라면서 무시무시하게 발현되는 생존본능은, 인간들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상황을 만든다.

'켈빈'의 가공할 만한 포식자로서의 면모는 과거 '에일리언'을 자동으로 떠올리게 하며, 영화사에서 능히 기억될 만한 '크리처'가 되기에 충분했다. 살기 위해 무엇이든 먹어 치우는 '켈빈'은 날로 영리해지기까지 하며 극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을 처단했다. 영화 속 '크리처'에 등장인물들이 이토록 무기력했던 사례가 또 있었나 싶을 정도다.

영화 '라이프' 스틸

우주를 향한 호기심이 불러온 참사. 영화 '라이프'는 폐쇄된 우주선을 순식간에 '밀실 살인'의 스펙터클이 펼쳐지는 공간으로 바꾸며 끔찍한 공포를 선사했다. 우주 SF 영화 사상 가장 비관적일 듯 싶은 결말을 보여주었고 관객들은 경악했다.

영화 '라이프'와는 정반대의 세계관을 갖고 있는 영화는 아마도 '컨택트'가 가장 적당할 것 같다. '컨택트' 역시 외계 생명체와의 조우를 그린다. '미지와의 조우'는 역시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두려움을 동반한다. '컨택트' 속 외계 생명체 '애봇'과 '코스텔로'는 생긴 것도 요상하다. 다리만 7개 있어서 별명이 '헵타포드'다. 갑자기 지구에 '도착'한 두 '헵타포드'들과 어떻게든 의사소통을 하려고 루이스와 이안은 눈물겨운 노력을 하고, 기다리고, 인내한다.

영화 '컨택트' 스틸

영화 '컨택트'는 '소통'의 대장정을 그린다. 이토록 매끈한 우주선을 띄워놓고 지구를 잔뜩 긴장시킨 '햅타포드'들은 대체 왜 온 것인가. 이들의 의중을 파악해야 하는 지구인들은 해괴한 외계인의 문자를 해석해내야만 한다. 이 '소통'은 지구인들의 존망이 달려 있다. 전혀 짐작조차 되지 않았던 외계의 언어를 끝내 해석해내는 주인공들의 고군분투는 새로운 언어를 익혀나가는 과정이 얼마나 성스러운 일인지 절감케 한다.

여하간 소통은 이뤄졌고 '애봇'과 '코스텔로'는 지구를 해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인간들에게 소중한 선물을 주고 홀연히 떠난다. 항상 공포심을 불러 일으켰던 외계인이라는 존재는 가엾은 인류에 깨달음을 주려고 몸소 지구에 행차한 '선지자'의 역할을 수행했다. 미래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언어를 가르쳐줬던 것이다.

'애봇'이나 '코스텔로' 같은 자비심 넘치는 착한 외계인 뿐 아니라, 우주를 더욱 친근하게 느끼게 해준 영화는 또 있다. 어떤 평론가는 '세상에서 가장 낙천적인 SF 재난영화'라고도 했다. 바로 '마션'이다. '마션'은 화성에 고립된 성격 좋은 어느 한 우주인이 수 년 만에 무사히 지구로 귀환한 이야기다.

마크 와트니는 우연한 사고로 홀로 화성에 고립됐다. 구조대는 몇 년 후에야 올 수 있을 것이나, 남은 식량은 고작 한두 달치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마크 와트니가 가장 먼저 생각했을 단어는 '죽음'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마크는 외로움에 몸부림치다 홀로 화성에서 속절없이 죽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기를 선택한다. 이때부터 영화는 긍정의 기운을 가득 머금은 채 등장인물 그 누구도 죽이지 않고 끝까지 간다.

영화 '마션' 스틸

'마션'에서는 우주 영화라면 흔히 등장했던 연료부족이나 산소부족 등의 위기 상황은 거의 펼쳐지지 않거나 사소하게 지나간다. 여러 난관이 있음에도 동료 우주인들이 단 한 사람을 구하겠다고 화성으로 되돌아갈지 결정하는 지점에서, '쿨'하게 'GO'를 외치는 장면은 유쾌하기만 하다. 죽게 될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들에게 숭고한 희생 정신을 들먹이는 게 오히려 민망할 지경이다.

예산 문제 따위는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리고, 온 지구적 응원에 힘입어 마침내 구출된 마크 와트니는 무사히 지구로 돌아왔다. 겉잡을 수 없이 낙천적인 이 우주영화는 이쪽 장르의 계보 안에서 무척 이례적인 스토리로 기억될 것이다.

지구 밖에서 지구를 바라본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우주 속을 유영하는 느낌은 또 어떨까. 너무 두려워 숨도 제대로 쉬지 못 할까, 아니면 태어나기 전 엄마의 자궁 속에 있는 것처럼 안온할까. 생을 반 포기하다시피 한 라이언 스톤은 우주의 고요함을 사랑해서 우주인이 되었다. 그런 그녀가 우주 한복판에 홀로 남겨졌을 때, 어떤 선택을 했나. 죽음을 택하는 건 쉽고 삶을 택하는 건 고통스러웠으니, 둘 사이 양자택일에서 답을 결정하는 건 무척 쉬웠을 터. 그런데 라이언 스톤은 사는 것을 택했고 사람들 틈으로 돌아갔다.

영화 '그래비티' 스틸

돌아갈 이유가 하나도 없었는데도 오직 계속 살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지구로 돌아간 라이언의 그 의지가 새삼 위대하다. 인간의 존재는 비록 우주의 크기에 비한다면야 먼지만도 못하지만 생의 의지만큼은 우주보다 광활하다.

미지의 영역, 우주를 향한 인간의 호기심은 앞으로도 끝이 없을 것이다. 그 호기심은 생의 의지라는 단단한 초석를 딛고서야 더 멀리 뻗어나갈 수 있다. 앞으로 나올 또 다른 무수한 우주 SF 영화들은, 두려움과 동시에 경외심과 겸손함을 갖고 지구 밖을 줄곧 탐험할 것이다. 얼마나 더 환상적일지, 상상의 우주여행만으로도 우리는 즐겁다.

['그래비티', 시사회 직후 기립박수… "우주를 체험한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