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거품이 입술에 먼저 닿는다. 입 안을 가득 채우는 향미(香味)에 취하는 건 잠시. 꿀꺽, 짜릿한 목 넘김에 탄성이 터진다. “캬아~” 맥주의 맛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소리만 듣고도 입맛 다실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때는 테라스에서 흩날리는 벚꽃 바라보며 맥주 한잔하기 딱 좋은 계절이 아니던가.

입맛, 취향 따라 즐기는 ‘크래프트 맥주(craft beer)’ 전성시대다. 소규모 양조장에서 자체 개발한 제조법으로 생산되는 크래프트 맥주는 브루어리마다, 맥주마다 개성 넘친다. 한 잔을 마셔도 맛있게, 제대로 맥주를 즐기고 싶다면 주목해 보시라. ‘더 테이블’팀이 발로 뛰며 당신의 오감(五感) 깨울 크래프트 맥주를 찾아 나섰다. 이름하여 ‘맥로드(麥Road)’!

양조시설과 어우러진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가 이국적인 구스아일랜드 브루하우스. 이곳에선 직접 만든 신선한 크래프트 맥주와 다이닝을 즐길 수 있다.
오크통을 이용한 독특한 맥주 제조 방식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구스아일랜드 브루하우스의 배럴룸.

양조장과 펍이 한곳에, '브루펍'에서 맛보는 신선한 크래프트 맥주

맥주를 만드는 곳에서 직접 맛보는 맥주는 더 특별하다. 양조시설을 직접 보면서 그곳에서 생산된 신선한 맥주를 즐길 수 있는 '브루펍(brew pub)'이 인기인 이유다. 서울 역삼동 구스아일랜드 브루하우스(02-6205-1785)는 미국 시카고에서 탄생한 '구스아일랜드(Goose Island)'가 시카고 외 지역에 만든 첫 매장이다. 시카고 출신인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즐겨 마시는 맥주란다. 자체 양조시설을 갖추고 시카고 구스아일랜드의 여러 가지 크래프트 맥주와 서울점 한정 맥주를 제조해 판다. 바에 설치된 탭(맥주 나오는 꼭지)이 맥주 탱크와 바로 연결돼 있어 언제나 신선한 맥주를 마실 수 있다는 게 특징. 양조시설과 어우러진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가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거위 머리를 닮은 앙증맞은 맥주 탭은 절로 '인증샷'을 부른다. 직장인 박진경(35)씨는 "시카고로 여행 온 듯한 이색적인 분위기라 사진 찍기 좋고 입맛 따라 맥주를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

방이동 슈타인도르프에선 직접 양조한 독일식 정통 크래프트 맥주를 맛볼 수 있다.

잠실 석촌호수 인근에 있는 슈타인도르프(02-422-9000)는 설계부터 양조시설에 맞는 층고와 구조, 집수시설, 맥아창고를 고려해 만든 브루펍. 맥주의 본고장인 독일식 정통 크래프트 맥주를 판다. 물, 맥아, 홉, 효모만을 사용하는 독일의 '맥주순수령'에 따라 만든 헤페바이젠, 스타우트, 아이피에이, 페일 에일과 알트비어 스타일의 프로토를 맛볼 수 있다. 신청하면 연간 200㎘의 맥주 생산이 가능한 양조시설을 투어할 수 있다.

성수동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02-465-5208)는 오래된 창고 건물을 브루펍으로 재탄생시킨 곳. 크래프트 맥주와 성수동 특유의 낡은 공장 분위기를 함께 즐길 수 있다. 국제 공인 비어 소믈리에 자격증 시서론(Cicerone) 보유자인 김태경 대표와 국내 맥주 대회 그랜드 슬램 우승자인 스티븐 박 대표가 지난해 4월 문 열었다. 양조장에서 직접 생산하는 맥주를 비롯해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의 크래프트 맥주만 29종. 여기에 다른 국내 브루어리의 크래프트 맥주도 24종 판매한다. '첫사랑' '쇼킹 스타우트' '맑디맑은 바이젠' '뿅' 등 기발한 맥주 이름 쓰인 알록달록한 메뉴판, 맥주 종류만큼이나 많은 탭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성동구에서 근무하는 직장인이나 주민들에게만 판매하는 '성동구'라는 맥주도 독특하다. 맥주 전문가들과 함께하는 양조장 투어와 맥주 시음교육도 진행한다. 사전 문의 후 방문 가능.

1 오래된 창고를 브루펍으로 재탄생시킨 성수동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에서 크래프트 맥주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 2 개성 있는 맥주가 만들어지는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의 양조시설.

강남구 신사동 빈센트반골로 브루어리(070-4212-9010)는 갤러리 같은 분위기로 발길 모은다. 벽을 장식한 여러 가지 그림이 눈을 즐겁게 하고 맥주가 발효되는 향이 코를 자극한다. 직접 만든 바이젠, 페일 에일, 스타우트 등 크래프트 맥주와 4종의 게스트탭까지 각양각색 맥주가 입을 즐겁게 한다.

크래프트 맥주를 전문으로 포장, 판매하는 연희동 케그스테이션에서 페트병에 맥주를 담고 있다.

기꺼이 발품 팔며 맥주 탐방에 나서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맥주탐험대(cafe.naver.com/beermap)'를 운영하는 이석하(30)씨는 "크래프트 맥주가 인기 끌면서 개성으로 무장한 펍들이 많이 생겨 '펍 크롤(pub crawl·펍 순례)'이 하나의 문화가 됐다"고 했다.

테이크아웃으로 즐기는 크래프트 맥주

커피처럼 크래프트 맥주를 포장 판매하는 테이크아웃 매장도 등장했다. 연희동 케그스테이션(02-332-7138)은 크래프트 맥주 8종을 300cc부터 1500cc까지 4가지 사이즈 페트병에 포장해준다.

크래프트 맥주를 양조하는 '브루원'과 연남동 펍 '크래프트원'을 운영하는 정현철(43) 대표가 주택가에 만든 테이크아웃 매장. 정 대표는 "마니아가 아니라도 크래프트 맥주를 쉽게 접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아이디어를 냈다"고 했다. 산화를 막기 위해 이산화탄소로 산소를 뺀 페트병에 맥주를 주입해 팔긴 하지만, 포장한 맥주는 냉장 보관해 2~3일 내에 마셔야 한다. 외국인 단골도 꽤 많다.

40여 종의 크래프트 맥주를 캔으로 포장해서 판매하는 반포동 캔메이커. 매장 한 벽을 가득 채운 맥주 캔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인증샷을 부르는 캔메이커의 맥주들.

반포동 서래마을 캔메이커(070-8888-4605)는 40여 종의 크래프트 맥주를 캔에 포장해 판매한다. 자체 레시피로 만든 맥주와 국내 브루어리 맥주를 한곳에서 만날 수 있다. 포장용 캔이 매장 한 벽을 가득 채운 풍경이 이색적이다. 캔의 라벨 디자인도 다양하다. 지하철 2호선 강남역을 모티브로 한 '강남 페일 에일'은 인증샷 인기 메뉴. "인스타그램에서 본 강남 맥주가 인상적이라 직접 사러 왔다"는 직장인 김순정(34)씨는 "크래프트 맥주를 캔으로 포장할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하고 가격이 저렴해 여러 개 사서 지인들과 나눠 마실 예정"이라고 했다. 포장해 가면 매장에서 마실 때보다 2000원 싸다. 강기문(40) 대표는 "크래프트 맥주의 진입 장벽을 낮추려고 매장에서 마시는 것보다 가격을 싸게 하고 휴대하기 좋게 캔에 넣는 방법을 고안했다"고 했다.

수백 종의 크래프트 맥주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보틀숍도 인기다. 사진은 양재동 비어랩협동조합.

전 세계 수백 종의 크래프트 맥주가 한자리… '보틀숍'도 인기

더 다양하고 새로운 크래프트 맥주를 만나려면 전문 보틀숍(bottle shop)을 찾는 것도 방법이다. 양재동 비어랩협동조합(070-4408-0070)은 '맥덕(맥주 덕후)'들의 성지로 손꼽히는 곳. 벨기에, 미국, 독일, 호주 등 다양한 국적의 크래프트 맥주 종류가 250종에 달한다. 병과 캔에 담긴 맥주 가운데는 와인처럼 숙성해서 마시는 빈티지 에일이나 하이엔드맥주 등도 있다. 맥주 공방을 겸하고 있어 홈브루잉 체험을 하려고 찾는 이들도 많다. 직접 맥주를 만들어보고 싶다면 홈페이지(cafe.naver.com/craftbeer)에서 신청하면 된다.

150종에 달하는 크래프트 맥주가 진열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반포동 서래마을 보틀숍 크래프트브로스(02-537-7451)는 탭하우스를 겸하고 있어 국내외 신선한 크래프트 맥주도 함께 맛볼 수 있다. 맥주는 전용 잔에 따라 마셨을 때 고유의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데 이곳에선 맥주별로 구매 개수에 따라 전용 잔을 받을 수도 있다. 보틀숍에서 산 맥주를 탭하우스에서 바로 마실 수도 있는데, 이때는 병당 2000원이 추가된다.

보틀숍과 탭하우스를 겸하고 있는 반포동 크래프트브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