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작품은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한다. 문학 비평은 작품에 담긴 현실의 맥락을 분석하고 해석한다. 역사의 전환기를 맞아 요즘 주목받는 문학비평가들을 차례로 만나 우리 시대에 대한 비평을 들어보는 시리즈를 마련한다. ㅡ편집자

장경렬(64) 서울대 영문과 교수는 미국 텍사스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89년부터 서울대에서 강의하면서 비평활동도 해왔다. 최근 일곱 번째 평론집 '예지와 무지 사이'(문학동네)를 냈을 뿐 아니라 우리 시조(時調)와 일본 하이쿠(俳句)를 비교한 연구서 '꽃잎과 나비, 그 경계에서'(서정시학)도 출간했다. 그는 평론집 서문을 통해 요즘 한국의 정치인과 정치 교수를 비평했다. "자신의 깨달음 또는 예지(叡智)에 매혹되어 그 한계를 애써 외면하려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

장경렬 서울대 영문과 교수는“인공 지능이 바둑에선 인간을 이길 수 있지만, 문학 번역은 인간을 따라오기 힘들다”며 문학의 인간성을 강조했다.

―'예지와 무지 사이'라는 평론집이 제시한 화두는 무엇인가.

"어둠 속에서 갑작스럽게 섬광과 마주하는 순간 세상이 환해져 어둠에 가려졌던 것들이 또렷하게 보이겠지만, 그와 동시에 그 빛으로 인해 잠시 우리의 눈은 멀게 마련이다. 세상이 환하게 보이는 순간 우리의 눈이 잠시 멀어 세상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인간사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이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일 수 있다. 말하자면, 인간사의 문제점을 꿰뚫어 보는 예지(insight)의 순간, 그 예지는 무지(blindness)와 함께할 때가 적지 않다.

―대선을 한 달 앞두고 '예지'를 대변한다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라의 미래가 잘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요즘 '세상이 다 보인다'는 예지에 찬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자신의 예지가 옳은 것인지를 성찰하도록 그들을 이끄는 예지도 필요하지 않을까. 대선 주자뿐 아니라 그들을 돕는다는 이른바 '정치 교수'들도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를 잠시나마 갖기를 희망한다."

―자신의 예지에 빠져 무지를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은 결국 독선에 빠지지 말라는 것인가.

"그렇다. 유학을 갔다가 1980년대 후반 서울대로 돌아와 보니, 학생들이 교련 반대 시위를 하고 있었다. 군사 훈련을 반대한다면서 군대식으로 정연하게 줄을 맞춰 횡대로 늘어선 채 일사불란하게 구호를 외쳤다. 교련을 반대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교련 시간에 배운 바를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자기모순은 나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 누구나 고민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촛불'과 '태극기'로 대립된 현실을 어떻게 봤나.

"어지러운 세태에 누구나 자신의 옳음에 대한 확신에 차 있는 모습을 보면, 하나의 거대한 희극 무대 같아 보인다. 자신의 무지를 의식하지 않은 채 예지에 차서 무대 위를 활보하는 사람들이나,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를 모르거나 이를 되돌아보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하다는 점에서 희극일 수 있지 않을까."

―"시인 같은 정치인이 많아서 정치가 혼란스럽다"고도 했다.

"정치인은 현실을 현실로 보아야 하는 사람이라면, 시인은 현실을 현실로뿐만 아니라 시처럼 볼 자유가 주어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도 정치인도 다 이상주의자일 수 있지만, 현실을 시로 볼 수도 있는 시인과 달리 정치인은 현실에 바탕을 둔 이상주의자여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정치인의 이상주의는 현실에 대한 책임 의식을 전제로 한 것이어야 한다. 반면에 시인은 현실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현실을 비판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에는 '시인 같은 정치인'이 많아 보인다. 정치인이 시인처럼 현실적 책임에서 자유로운 상태에서 현실을 보고 행동하니, 정치가 혼란스러운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서 시인이 해야 할 일은 자신을 흉내 내는 정치인들에게 그들이 시인이 아님을 깨우치는 일일 것이다. 아니, 시인 같은 이상주의적 정치인에게 이상주의라는 예지 뒤에 도사리고 있는 무지를 깨우치는 일, 그것이 시인이 해야 할 일이 아닐지 모르겠다."

―영문학자인데, 시조와 하이쿠를 비교한 연구서도 냈다.

"시조와 하이쿠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정형시 양식으로, 지극히 간명한 3행의 시적 진술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둘이 시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시조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진행되는 인간의 현실적 삶에 대한 이해를 지향하는 시라면, 하이쿠는 인간의 현실이든 자연이든 이에 대한 순간적 이해 또는 직관적 파악을 지향하는 시다. 따라서 전자를 '시간성의 시'라고 한다면 후자는 '초(超)시간성의 시'로 정리할 수 있다. 비슷해 보이지만 서로 다른 두 정형시의 작품 세계를 천착하다 보면, 두 민족의 문화와 문화적 에토스의 차이까지 살펴볼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교 논의를 시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