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미디어가 비주류에서 주류로 점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인터넷 방송은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이고 비주류 콘텐츠’라는 편견이 있다. 불혹(不惑)의 나이에 인터넷 방송에 대한 편견을 깨뜨린 아재가 나타났다. 나긋나긋한 말투와 ‘아재개그’로 무장한 1인 미디어 크리에이터 황종식씨가 그 주인공이다.
재미의, 재미를 위한, 재미에 의한
황종식씨는 ‘식빵’이라는 닉네임을 쓴다. 본인의 이름 마지막 글자인 ‘식’자와 군번인 ‘00년’에서 따온 ‘빵’을 조합하여 ‘식빵’이 되었다. 그의 방송 채널 ‘식빵월드’의 애청자들은 그를 ‘식빵아재’라고 부른다. 식빵아재의 주요 방송 콘텐츠는 ‘하스스톤’이라는 카드게임 콘텐츠다.
블리자드사에서 서비스하는 게임으로, 자신의 하수인카드(소환한 장기말)와 마법카드를 적절히 사용해 상대편을 이기는 것이 목표다. 매일 밤 10시부터 새벽 한두 시까지 아프리카tv, 유튜브, 트위치tv, 다음tv팟(현 카카오tv) 총 4개의 채널에서 방송된다.
“방송을 하게 된 계기는 신종플루였어요. 3년 전 신종플루가 확산되던 때 제가 걸렸거든요. 3일 만에 다 나았는데, 회사에선 혹시나 해서 2주간 휴가를 줬어요. 당시에 다른 분이 하던 하스스톤 방송을 즐겨 봤는데 ‘시간도 많겠다, 나도 해볼까?’ 생각하면서 시작했죠. 막상 해보니까 방송이 정말 재밌는 거예요. 마치 친구들이랑 게임하는 것 같았어요.”
식빵아재의 주요 방송 콘텐츠가 하스스톤인 만큼, 그의 채널 시청자들은 아재의 놀라운 플레이를 기대하며 채널을 방문한다. 그러나 아재는 종종 다른 게임에 빠져 그 기대를 저버리기도 한다. 시청률 하락이 걱정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요. 저는 제가 재미있으려고 방송을 해요. 제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 중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하는 하스스톤을 보러 오는 사람과 하스스톤을 하는 ‘나’를 보러오는 사람이죠. 저는 후자의 분들을 믿어요. 저는 억지로 재미없는 방송을 하고 싶지 않아요.”
한번은 한 인터넷 방송업체가 하스스톤을 주제로 전업 방송인 계약을 제안했다. 계약 조건은 퇴직을 고려할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거절이었다.
“일단 가족이 반대할 게 뻔했고, 그간 쌓아온 본업의 커리어와 앞으로의 수익을 생각하면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본업이었죠. 하지만 제일 큰 이유는 재미 때문이었어요. 만약 이걸 업으로 삼는다면 재미가 없어도 재미있는 척을 해야 될 테니까요. 여기서 제가 얻을 수 있는 건 오로지 재미였으면 해요. 그래서 방송을 통해 생기는 수익도 사적으로 쓰지 말자고 다짐했죠.”
‘내가 재미없으면 언제라도 방송을 그만둘 수 있다’고 말하는 그는 3년째 명절을 제외하고 매일 방송을 하고 있다.
‘엘리트 게임 라이프’
식빵아재는 1인 미디어 크리에이터 중에서 보기 드문 40대란 점 외에도 이색적인 이력이 있다.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시청자들은 식빵아재의 학벌에 놀라고 그의 철학이나 이야기에 더욱 깊이 공감한다. 실제로 게임 방송보다 이야기를 들으러 오는 시청자들도 많다고 한다.
“대학교를 8년 만에 졸업했어요. 입학하고 3년은 하루에 16시간씩 게임을 하면서 허송세월했죠. 그러다가 군대에 가서 정신 차리고 복학 후 2년 동안 졸업 학점을 다 채웠어요. 나름 조기 졸업이었죠(웃음).”
그의 이색 이력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롯데제과 입사 후 1년 만에 ‘드림카카오’를 개발해 큰 성과를 올렸다.
“졸업과 동시에 제과 회사에 입사했는데 부서에 선임 자리가 공석이었어요. 해당 부서에 신입인 저밖에 없었어요. 눈치 볼 사람이 없었죠. 이것저것 기획하고 시도했다가 실패도 많이 했어요. 그 가운데 ‘드림카카오’가 성공하면서 인정을 받았어요. 정말 운이 좋았죠.”
부서의 공석이 모두 채워진 뒤 식빵아재는 첫 직장을 그만뒀다. 금융회사로 이직해 지금까지 10여 년간 ‘엘리트 게임 라이프’를 즐기고 있다. 그 비결은 공과 사를 명확히하는 데 있다.
“회사에서 간혹 저를 알아보는 분들이 있어요. 최대한 회사 내에서는 비밀로 해달라고 하죠. 부업 수준도 아니고 취미로 하는 건데, 회사에서 계속 언급되면 부정적인 선입견이 생길 수도 있거든요.”
식빵아재가 진행하는 콘텐츠는 게임 방송 외에도 UCC 제작 콘테스트, 게임 캐릭터 성대모사 콘테스트, 노래자랑, 썰방(이야기 방송) 등 다양하다. 대회 우승자에게는 사비로 상금도 지급한다. 그는 UCC 제작 콘테스트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팟CC 콘테스트’라고, 영상 편집 대회를 열었어요.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수준 높은 작품들이 나오더라고요. 첫 대회에서 우승한 친구가 공대 4학년이었어요. 진로를 고민하고 있던 그 친구한테 제 유튜브에 올릴 동영상 편집을 맡겼어요. 결국 그게 계기가 돼서 그쪽 업계로 취업했어요. ‘식빵님 덕분에 제 인생이 바뀌었어요’라고 나중에 메시지가 왔는데, 정말 기분 좋았어요.”
식빵아재는 하스스톤에 등장하는 게임 캐릭터들을 성대모사하는 ‘쇼미더 하스’ 대회도 열었다.
“그때 우승한 친구가 20대 후반의 트럭 운전기사였어요. 우승 기념으로 그 친구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는데, 어릴 때 꿈이 성우였다고 해요. 꿈을 접고 트럭을 몰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어린 시절 꿈을 돌아볼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는데 울컥했어요. 인터넷 방송을 통해서 10만원이든 20만원이든 작지만 그들이 쏟은 열정에 작은 보상을 해줄 수 있어서 기뻐요.”
옆집 아저씨가 말하는 ‘낙원’
그는 “옆집 형, 아저씨 같은 푸근한 매력이 자신의 방송을 시청하는 또 다른 이유이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그는 시청자들이 가끔 방송 채팅창에서 또는 쪽지로 고민을 상담해 올 때면 ‘요즘 젊은 세대에게 옆집 형 같은 존재가 부족하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어떤 고민은 답을 하지 못할 때가 있다.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는 전업 인터넷 방송인이 인기예요. 인기 방송인이 되는 방법을 묻는 이들이 많아요. 제 아이들을 떠올리면서 꼭 말해주고 싶은 게 있어요. 자신이 해야 될 일을 하고 남은 열정을 쏟는 건 오케이예요. 그런데 티끌만큼이라도 해야 할 일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방송을 하는 건 절대 반대예요. 〈베르세르크〉라는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이 이런 말을 해요. ‘도망쳐서 도달한 곳에 낙원은 없다’고요. 현실에서 도피하지 않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