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정당 유승민 대선 후보는 순탄한 길을 걸었던 엘리트 정치인이다. 그러다 정작 자신이 한때 지지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어려운 길을 겪어야 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정면으로 맞서다 '배신자' 낙인이 찍혔고, 지역구(대구)에서 힘든 길을 걷게 됐다. 2000년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소장을 맡으며 정치에 입문했고, 4선(選) 국회의원을 거쳐 올해 대선 도전에 나섰다.

◇출생과 학창 시절, 연구원 시절

유 후보는 1958년 1월 7일 대구에서 유수호 전 의원과 강옥성씨의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유 전 의원은 판사 출신으로 대구 중구에서 13~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유 전 의원은 판사 시절인 1971년 대선에서 공화당 박정희 후보의 울산 지역 개표 결과가 조작 발표된 사건을 맡아 공무원들에 대해 실형을 선고했다. 같은 해 시위를 주동한 혐의로 구속된 부산대 총학생회장(김정길 전 행자부 장관)을 석방했다. 그 뒤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한 유 전 의원은 변호사로 일하다 정계에 입문했다. 유 전 의원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민자당 대선 후보가 되자 반발해 탈당한 골수 민정계였다. 유 전 의원은 아들 유승민 후보에게 "의협심을 가져라. 절대 비굴하지 말라"는 당부를 유훈으로 남겼다.

유승민(왼쪽) 바른정당 후보가 경북고 재학 시절 설악산 수학여행에서 친구들과 함께 있는 모습.

[바른정당 대선후보 확정된 유승민 후보]

유 후보에겐 '2세 정치인' '금수저'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그러나 유 후보는 유년 시절 중이염을 앓았는데 병원비를 마련하려고 어머니가 영화표를 팔다 암표 단속에 걸려 경찰 조사를 받은 적도 있는 등 넉넉하지는 않은 형편이었다고 회고했다. 경북고를 다니던 시절 유 후보는 대학 입학 예비고사에서 전국 차석을 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지만, 교내 음성 서클 친구들과 가깝게 지내는 '튀는' 모범생이었다. 고교 동기 박찬정 청주대 교수는 "성적순으로 끼리끼리 교제하는 게 보통인데, 유독 유 후보만은 모든 친구들, 특히 퇴학당한 친구들과 아주 가깝게 지냈다"고 했다. 유 후보는 고3 때 선생님에게 부당하게 맞아 가출한 친구를 찾기 위해 가출한 적도 있었다.

1976년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한 유 후보는 1981년 육군 수도경비사령부(현 수도방위사령부)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병장으로 제대했다. 군 복무 시절 당시 수경사령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자녀 개인 과외 선생 자리를 제안받았으나 "특혜나 대우는 싫다"며 거부한 일화도 있다.

유 후보는 1983년 미국 위스콘신대로 유학을 떠나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87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국책 연구 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이 됐고, 12년간 경제학자로 활동했다. 주전공은 산업조직론, 부전공은 수리경제학과 계량경제학이었다. 유 후보는 KDI연구위원 신분으로 1998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정책을 '관치경제'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는 칼럼을 썼다. 그해 방한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의 원탁 토론회 멤버로 초대받아 DJ 정부 경제정책, 미국의 대한(對韓) 정책 등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언제나 성과급을 많이 타가는 선임연구원이었던 유 후보의 본봉은 반 토막이 났고, 신문 기고 금지 등 제재가 거듭돼 KDI를 떠나게 됐다.

◇박근혜 비서실장에서 소신 정치인으로

유 후보는 2000년 여의도연구소장을 맡으면서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유 후보를 발탁한 사람은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였다. 유 후보는 이 전 총재의 경제정책 참모 역할을 하면서 2002년 대선에서 메시지 단장을 맡았다.

대선 패배 이후 1년 6개월간 한림대에서 연구교수를 하는 등 뒷전으로 물러나 있던 유 후보는 2004년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고, 탄핵 역풍으로 박근혜 의원이 당의 전면으로 나서자 함께 중앙으로 나왔다. 유 후보는 박근혜 당시 당 대표가 비서실장을 맡아달라고 찾아오자, 3차례에 걸쳐 "할 말 다 해도 되느냐"고 확인한 뒤 비서실장직을 수락했다고 한다.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에선 박근혜 후보 정책·메시지 단장을 맡았다. 그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박근혜의 정책적 능력은 부족했지만, 부패하지 않았고 애국심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며 당시 이명박이 아닌 박근혜를 택한 이유를 밝혔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이후 유 후보와 박 대통령의 거리는 멀어졌다. 유 후보는 정치적 위기가 닥칠 때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등 헌법 조항을 들고나왔다. 그는 출마 선언에서 "진정한 민주공화국을 만들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