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지지율 1·2위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안희정 충남지사는 노무현 정권의 공신이란 공통의 경력 때문에 ‘친노(親盧) 인사'로 쉽게 분류된다.
그러나 두 사람은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방식부터 이후 행로 등 모든 면에서 달랐다. 정책 노선도 큰 틀에선 '진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방법론에서 차이가 많다. 돕고 있는 이들도 '같은 친노'라기엔 너무 많이 달라졌다.
멀리서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문 전 대표와 안 지사는 태생부터 색깔까지 '친노 한 뿌리'로 묶기엔 무리가 있다는 게 야권의 공통적인 견해다. 게다가 당내 경선이 본격화하면서 두 진영의 감정 대립은 날로 격화하고 있다. '골육상쟁' '형제의 난(亂)'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① '문재인의 부산팀'과 '안희정의 금강팀’
문 전 대표와 안 지사는 노무현 정부 출범 때까지 각각 노 전 대통령과 오랜 기간 인연을 맺은 측근이었지만, 정작 두 사람이 직접 호흡을 맞췄던 적은 한 번도 없다.
노 전 대통령을 만든 대선 보좌팀은 크게 문 전 대표가 이끌었던 '부산팀,' 그리고 안 지사가 이끌었던 '금강팀'으로 분류된다. 문재인의 부산팀은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가 결정된 뒤 합류, 부산 지역에서만 활동했다. 반면 안희정의 금강팀은 당내 경선 단계에서부터 전국 선거를 지휘하는 사령탑 역할을 했다.
문 전 대표는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졸업했으나 시위 전력 때문에 지망했던 판사로 임용되지 못하자 곧바로 부산으로 내려가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이 때 만난 노 전 대통령과 1982년 ‘노무현 문재인 합동법률사무소’를 차렸다. 문 전 대표는 내내 정치와 거리를 두다가 2002년 10월, 대선 두 달 전 노 후보의 부산선대위 본부장 직을 맡아 합류했다.
안 지사는 1993년 노 전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한 뒤 만든 ‘지방자치실무연구소’에 합류하면서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김덕룡 의원 비서관 출신인 안 지사는 당시 월급 70만원을 받으며 연구소 생활을 하면서 생수 사업, 보험 모집인, 선거 홍보 기획사 일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자치실무연구소가 서울 여의도 금강빌딩에 있어 이 팀은 ‘금강팀’으로 불렸는데, 일찍부터 노 전 대통령의 대선 도전을 위한 베이스 캠프가 됐다. 안 지사는 금강팀의 정무팀장을 맡으면서 이후 대선 캠프의 살림살이를 책임졌다.
② 文 민정수석•비서실장으로, 安은 옥살이 뒤 충남으로
2002년 대선 직후 두 사람의 운명은 극과 극으로 엇갈렸다.
금강팀 핵심이었던 안 지사는 노무현 정부 5년 내내 아무 직책을 맡지 못했다. 안 지사가 대선 직후 불법정치자금수사 대상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노 전 대통령 취임식에도 가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듬해인 2004년 불법정치자금 혐의로 유죄가 확정돼 감옥까지 갔다.
반면 문 전 대표는 노무현 정부 초대 청와대 민정수석과 시민사회수석, 비서실장을 맡았다. 노 전 대통령 재임 내내 노 전 대통령 옆을 지켰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노무현 청와대 참모를 지낸 한 인사는 “대선 승리 이후 부산팀과 금강팀 간 불화는 없었지만, 상대적으로 일찍부터 더 많은 기여를 했던 ‘안희정 금강팀’은 도리어 청와대 입성에 실패한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금강팀에 몸 담았던 한 야권 인사는 “문 전 대표를 비롯한 부산팀이 선거에 큰 기여도 안 했으면서 숟가락만 들고 올라와 요직을 차지한다는 불만이 금강팀에 있었다”고 했다.
이를 두고 친노 진영 내부에선 '청류(淸流)·탁류(濁流)'설도 있었다. 문 전 대표는 노무현 청와대에서 요직을 잇따라 맡아 '꽃길'만 걸었던 반면 안 지사는 노 전 대통령측의 불법정치자금 비리 책임을 대신 떠안는 등 궂은 일만 했다는 것이다. 안 지사가 이번 경선에서 '맏이론'이나 '동지론'을 내세우는 데 대해 과거 친노 핵심 ‘동지’들에게 “이번에는 나에게 진 빚을 갚아달라”는 호소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③ 친노를 '폐족'한 安, '친문'으로 승계한 文
문 전 대표는 2009년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본격적인 정치의 길로 들어섰다. 당시 충격적으로 노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면서 친노 지지자들은 그 정신적 공백을 메울 누군가를 절실히 원했고, 마지막 ‘노무현 비서실장’으로서 침착하게 상주 노릇을 한 문 전 대표를 주목했다.
문 전 대표는 2010년 '노무현재단' 상임이사장을 맡으면서 공식적인 친노의 구심점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처음 총선에 출마해 당선되고 그 해 바로 대선 후보로 선출되며 급성장한 것은 친노의 조직적 지지 덕분이었다. 문 전 대표는 당초 ‘무색무취한 노무현 참모’에서 ‘야성 강한 정치인’으로 급속히 변모했다.
반면 안 지사는 '친노'를 활용한 정치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2007년 노무현 정부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직후 '친노 폐족'을 선언하며 단절을 선언했다. 친노 지지자들은 충격과 분노에 빠졌고, 일부는 안 지사를 '배신자'로 몰아세우기까지 했다. 안 지사는 당 최고위원을 지낸 뒤 고향인 충남에 내려가 2010년 도지사에 당선된 뒤 2014년 재선까지 성공했다. 그는 도정을 위해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에 동의하는 등 보수와도 협력했다. 안 지사의 이 같은 행보는 상대적으로 친노 세력과의 거리를 더 멀어지게 만든 요인이 됐다.
두 사람의 주변 인사들은 어떨까? '친노' 지지자들이 '친문'으로 조직적·감정적 변이가 일어난 것은 사실이다. 현재 문재인 캠프엔 현역 국회의원이나 '친문'을 표방하고 최근 합류한 새로운 인사들이 많다. 경선 결과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인 '당 조직세'에서 문 전 대표가 앞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른바 '친문 문자 폭탄'의 주도자들도 과거 열성적으로 ‘노무현 지지’ 활동을 하던 사람들이라는 게 정설로 돼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양측 캠프 참모진을 보면 원조 친노 인사의 비중은 문 전 대표에 비해 안 지사 쪽이 더 높다. 어느 캠프에도 몸 담지 않은 노무현 정부의 한 장관급 인사는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와 서갑원 전 의원,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처럼 ‘노무현 철학’의 핵심 계승자들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거의 다 안 지사한테 가 있어서 놀랐다"고 했다. 그러나 안 지사의 대선 캠프는 지역, 전문 분야, 출신 정파(政派) 등의 측면에서 문 전 대표 캠프처럼 전방위적 조직으로 확대되지는 못한 게 사실이다.
④ 대연정·사드 등 정책 노선 입장차 확연
두 후보 진영 가운데 정책 면에서 '어느 쪽이 더 친노 적자인가'를 따지기는 힘들다. 이를테면 안 지사 측은 “개혁 동조 세력과의 대연정 제안은 노 전 대통령의 연정 구상을 재해석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보수 정부가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생각하는 친문 지지자들은 “국민에 의해 파면 당한 박근혜 정권 인사들과의 연대는 야합”이라고 몰아세운다.
박근혜 정부에서 이뤄진 사드 배치 결정을 놓고도 문 전 대표는 "다음 정부에서 다시 논의해야 한다"며 비판적 입장을 밝히지만, 안 지사는 "국가 간 합의를 뒤집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친노계 인사들에게 '노 전 대통령이라면 어느 쪽을 지지했을까'를 물으면 답이 제각각이다.
두 사람의 노선 이견은 꽤 오래됐다. 지난 2007년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문제를 놓고 문 전 대표는 국가기록원에 보관돼 있는 대화록 원본 공개를 제안했지만 안 지사는 “전임 대통령을 현재의 정쟁에 끌어들이는 일은 옳지 않다”며 반대했다. 2012년 대선 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이슈가 불거졌을 때도 문 전 대표는 “재협상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안 지사는 “노무현 정부가 추진해 성사시킨 FTA를 이명박 정부의 재협상 때문에 반대한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라고 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