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현대무용의 어법을 바꾼 혁명가' '현대무용의 전설'…. 피나 바우쉬(Bausch·1940~2009)를 수식하는 단어는 다양하지만 비슷하다. 그녀가 만든 '탄츠테아터(Tanztheater·극무용)'는 연극과 무용의 경계를 허물었다고 평가받는다.
국내에서도 대단한 인기다. 24일부터 27일까지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열리는 피나 바우쉬 부퍼탈 탄츠테아터의 '스위트 맘보' 티켓은 한 달 전에 전석 매진됐다. 보통 무용은 전공자나 학생 특별 할인석 비중이 50%까지지만, 이 공연은 2.5%다. 4회차 전체 4000석 중 겨우 100여석이다.
피나의 이름은 '현대무용'이라는 장르의 울타리를 넘어선다. 영화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그녀에게'(2002) 끝 장면에 피나의 '마주르카 포고'를 담았고, 빔 벤더스 감독은 피나의 '봄의 제전' '풀 문' 등을 넣어 '피나'(2012)를 탄생시켰다.
다른 장르의 예술가마저 그녀를 칭송하는 이유는 무얼까.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하는 걸까. 피나가 죽기 전 30년간 그녀의 '절친'이자 1980년부터 피나 작품의 무대를 디자인한 페터 팝스트(73) 무대감독에게 물었다. 방한한 팝스트는 "피나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소통하며 인간의 내면을 끌어내려고 했다"며 "우연인 듯 보이는 작은 움직임도 마음속에서 수천 번 상상하며 철저한 계산으로 이끌어낸 것"이라고 했다. 팝스트의 대답을 2C(courage, confidence)로 요약했다.
◇courage(용기)
피나와의 작업은 탁구 같다. 핑퐁핑퐁. 서로 정확히 포착해서 되치고 나면 공은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린다. 1+1이 3이 되는 경험이다. 내가 구상한 무대 모형을 거의 막판까지도 OK 하지 않는다. 제작사에 '설계도'를 갖고 가면 "장난해? 절대 안 돼"란 말이 돌아온다. 하지만 밤샘 작업으로 무대를 만들고 나면 그들은 "언제 또 작품 하지?"라며 설레 한다. 피나는 또 무대가 무용가에게 위험할지 여부도 엄격하게 따져 묻는다. '팔레르모 팔레르모'에선 6.5t 크기의 돌덩이 벽과 바위들 사이로 춤을 춰야 했다. 한번은 겨울을 표현하기 위해 소금 10t을 무대에 뿌렸다. 모래에 발이 푹푹 빠지는 느낌을 상상해보라. 하지만 무용가들은 피나 바우쉬를 믿고 자신의 감정을 펼쳐낸다. 피나의 용기가 무용가의 용기를 이끌어냈다.
◇confidence(자신감)
피나 바우쉬는 "이 작품이 말하려는 건 이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없다. 기본 텍스트, 이미지 한 장 없다. 처음 5년 동안은 계속 물어봤다. "피나, 무슨 생각인 거야?" 대답은 언제나 똑같았다. "미안해. 나는 항상 내면을 듣고 있어. 그런데 아직 밖으로 나오지 않네." 때로는 무한한 자유가 오히려 상상력을 극대화한다.
피나는 지시하지 않는다. "넌 요즘 무슨 생각을 하니?" "네 고민은 무어니?" 같은 감정이나 인간관계에 대한 질문을 쏟아낸다. 피나는 '어떻게'가 아니라 '무엇'이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가가 더 흥미롭다고 말했다. 무용가의 반응과 몸짓을 보다 마치 머릿속에 '불꽃'이라도 튄 듯 "그거다" 하고 잡아내 반복하게 한다. 이제 6주에서 8주 정도 같은 작업이 반복된다.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것을 이뤄냈을 때의 희열이란. 피나 죽은 지도 이미 8년. 안무는 당연히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도 피나의 자신감, 피나 안무의 자신감은 여전히 승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