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을 이탈리아 아시시 여행 때 일이다. 글라라 성녀를 기리는 산타 키아라성당의 새벽 미사. 성당 마당에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미사에 지각한 한 젊은 여성이 달려왔다. 급히 성당 문을 열던 그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 뒤돌아섰다. 그는 문 옆의 성수반(聖水盤)에서 성수를 손끝에 묻혀 십자 성호를 긋고 나서야 성당 안으로 들어섰다.
천주교 신자들이 성당에 들어설 때 성수를 찍어 성호를 긋는 것은 하느님을 만나기 전에 스스로 정화(淨化)하기 위해서다. 화학적으로 분석한다면 똑같은 H₂O일 테지만 성수는 사제가 축성(祝聖)한 물이다. 이 축성 과정을 거침으로써 평범한 물이 악을 쫓고, 더러움을 말끔히 씻어내는 성수가 되는 것. 지금은 성수를 손끝에만 묻히지만 과거 구약시대에는 성전 입구에서 손을 씻었다고 한다.
종교와 물은 불가분의 관계다. 대개 정화를 상징한다. 개신교와 천주교에서 물을 이마나 머리에 흘리는 세례(洗禮)와 강이나 연못, 침례탕에 온몸이 풍덩 빠지는 침례(浸禮) 역시 물을 통해 정화돼 새로운 신앙인으로 재탄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부처님오신날 등 중요 법요식에서 불상의 정수리에 물을 뿌리는 관불(灌佛) 의식도 이를 통해 신자의 마음이 정화되길 기원하는 것이다. 우리 조상이 기도할 때 목욕재계하고 정화수를 떠놓고 빌었던 것만 봐도 '물=정화'의 의미는 이해된다.
몇 년 전 터키 이스탄불의 한 모스크를 찾았을 때 여러 사람이 모스크 밖의 수돗가에서 단체로 발을 씻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이슬람 신자들이 예배 전에 하는 '우두(Wudu)'라는 의식이었다. 그런데 씻는 부위가 많다. 먼저 오른손, 왼손으로 시작해 입안을 헹구고 코, 얼굴, 팔뚝, 머리카락의 순서로 씻고 귀의 안팎을 닦아내고 마지막으로 발을 씻는다. 발가락 사이사이도 깨끗이 씻고 복숭아뼈 윗부분까지 씻는다. 이는 쿠란에도 기록된 예배 전 심신 정화 의식이다. 한국이슬람교중앙회 홈페이지에는 우두의 전 과정을 소개하는 동영상도 올라 있다. 한국이슬람교중앙회 이주화 이맘은 "이슬람에서 우두는 신체뿐 아니라 뉘우치고 회개함으로써 마음을 정화하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에 비단 예배 전뿐 아니라 나쁜 생각을 한 후에도 우두를 할 것을 권한다"며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심신의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는 뜻"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