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한 백화점에서 아동용 의류를 봉지에 담아 도주하는 A씨의 모습.

희귀병에 걸린 딸 수술비와 생활비를 모으려고 차에서 쪽잠을 자며 돈을 벌던 30대 가장이 대형마트를 돌며 어린 딸 3명에게 줄 분유와 기저귀, 옷 등을 훔치다 경찰에 붙잡혔다.

울산 남부경찰서는 22일 상습절도 혐의로 A(37)씨를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12월부터 최근까지 울산과 부산의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을 돌며 13차례에 걸쳐 420만원 상당의 물품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가 훔친 품목은 점퍼, 선풍기, 진공청소기 등 주로 생활용품에 분유, 기저귀, 아동용 청바지, 아동용 트레이닝복 등 유아와 아동용 생필품이었다.

A씨는 훔친 물건을 6세 딸 쌍둥이와 3세 딸 등 자녀 3명과 아내가 있는 전남의 처가로 보냈다.

A씨는 쌍둥이 딸 한 명이 지난 2014년 말 척추가 휘어 장기를 압박하는 희귀병에 걸리면서 생활고가 시작됐다. 딸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생활비를 아꼈지만 막내 딸이 태어나면서 형편이 급격히 어려워졌다.

부산의 소규모 무역회사에서 근무했던 A씨는 수개월 전부터 월급이 올라 240만 원을 벌었지만 생활비와 자녀 수술비를 마련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A씨는 한 달에 20만 원 남짓한 여관비마저 아끼기 위해 얼마 전부터는 차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하지만 형편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A씨는 범행을 저지르다 덜미가 잡혔다.

경찰은 A씨의 어려운 형편을 고려해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고 입건해 조사 중이다. 경찰은 A씨의 사연이 전해지자 그를 돕겠다는 독지가의 전화가 2통 걸려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자신의 범행이 외부에 알려질 것을 우려한 A씨가 도움을 정중히 사양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지갑에 한 푼도 없는 A씨를 위해 담당 형사가 부산으로 돌아갈 차표를 마련해주고, 적은 액수지만 돈을 주기도 했다"며 "분명히 죄를 지었지만 A씨의 형편을 고려해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A씨가 차에서 잠을 자며 생활한 것을 가족들은 모르고 있다"며 "분명히 죄를 지었지만, A씨가 가족에게 줄 생활비를 계속 벌어야 하는 사정 등을 고려해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