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17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첫 정상회담을 했다. 미국 언론은 "메르켈 총리가 1990년대 트럼프가 나온 플레이보이지 인터뷰까지 읽고 정상회담을 준비했지만, 전에 없는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고 했다. 미국과 유럽을 대표하는 정상의 만남이었지만, 두 사람의 만남은 환영과 오찬까지 합해 4시간 정도였다. 직접 회담 시간은 한 시간 정도였고, 따로 공동선언문을 발표하지도 않았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어색한 모습을 연출했다. 백악관 내 집무실에서 마주 앉은 메르켈 총리가 사진기자들의 악수 요청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을 쳐다보며 "악수하실래요?"라고 물었지만, 대통령은 아무 말도 듣지 못한 것처럼 얼굴을 찌푸리고 손끝을 모은 채 기자들만 바라봤다. 메르켈 총리는 당황해 어깨를 으쓱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사진 촬영 내내 메르켈 총리 쪽으로 눈길조차 보내지 않았다. 트럼프의 '외교 결례'라는 비난이 일자, 백악관 숀 스파이서 대변인은 "대통령이 질문(악수 요청)을 듣지 못했다고 본다"고 말했다고 독일 슈피겔 온라인판이 전했다. 그러나 영국 가디언은 "트럼프가 메르켈 말은 못 들었을 수 있지만 여기저기서 '악수'를 외치는 취재진 목소리를 놓쳤을 리는 없다"고 했다.

트럼프, 심통난 아이처럼… - 17일(현지 시각) 미 백악관에서 열린 미·독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악수를 하는 포즈를 취해달라는 사진 기자들의 요청에도 정면만 응시하고 있다. 메르켈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몸을 돌렸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양손을 내리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누구?]

트럼프 대통령은 아버지가 독일계인데도 이날 자신의 뿌리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메이 총리를 만났을 때는 "우리 어머니가 스코틀랜드 출신"이라는 얘기를 꺼냈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가진 정상회담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지난달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와 만났을 때는 마치 아랫사람을 대하듯 19초간 손을 강하게 쥐고 흔들었고,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와 만났을 때는 악수를 하며 갑자기 손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결례 논란을 낳았다. 가디언은 "기이한 방식의 외교정책"이라고 했다.

공동 기자회견에서도 어색한 상황은 계속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모두 발언에서 "독일의 뛰어난 직업교육을 배워 미국에 접목하기로 했다"며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보여준 메르켈 총리의 리더십에 감사하고 앞으로 이슬람국가(IS) 퇴치에도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메르켈 총리도 "독일은 특히 경제성장 부문에서 미국에 많은 빚을 졌다"며 "앞으로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 리비아 등에서 (미국과) 일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덕담은 오래가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의 '안보 무임 승차론'을 꺼내 들면서 "나토에 대한 강력한 지지뿐만 아니라 나토 동맹이 공정한 몫을 낼 필요가 있다는 점도 (메르켈에게) 밝혔다"고 했다. 이에 대해 메르켈 총리는 "국내총생산(GDP)의 2%를 방위비로 지출하도록 하는 나토의 지침을 준수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독일의 지난해 국방비는 GDP의 1.19% 정도였다.

트럼프는 또 "무역정책은 공정한 정책이 돼야 한다고 믿는다. 미국은 수년간 많은 나라로부터 매우 매우 불공정하게 대접받았다"며 "이제 그것은 멈춰야 한다"고 했다. 이는 미국이 독일에 대규모 무역 적자를 내고 있는 것을 가리킨 것이다. 이에 대해 메르켈 총리는 한국과 유럽연합(EU) 간 자유무역협정(FTA)을 성공 사례로 들며 "미국과 EU가 무역 협상을 재개해야 한다"고 맞받았다.

특히 이날 한 독일 기자가 '오바마 전 대통령이 트럼프타워를 도청했다는 주장을 후회하는가'라고 묻자 트럼프는 얼굴을 찡그리며 "우리는 적어도 오바마 행정부와 관련해 공통점이 있다"고 답해 기자회견장에 헛웃음이 터졌다. 이는 오바마 행정부의 정보기관이 메르켈 총리를 전화 도청했다는 위키리크스의 2010년 폭로를 지칭한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 미국 정부를 사실상 '셀프 디스(자신을 스스로 나쁘게 말하는 것)'한 것이다. 이에 메르켈 총리는 황당하다는 듯 트럼프 대통령을 바라본 뒤 입을 삐죽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