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관이라고 우리나라 최초 룸살롱이 있어요. (3·1 독립 만세 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이) 대낮에 그리로 가서 낮술을 막 먹었습니다."
딱딱한 역사를 재미있게 강의해 '국민 역사 선생님'으로 불리는 스타 강사 설민석(47)씨가 1919년 3월 1일에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민족대표 33인에 대해 설명한 내용이 논란이 되고 있다. 설씨는 2013년 강의에서 민족대표들이 고급 요릿집인 태화관에 모인 이유에 대해 "마담 주옥경하고 (민족 대표) 손병희하고 사귀었다"며 "그 마담이 D/C(할인) 해준다고, 안주 하나 더 준다고 오라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또 민족대표들이 일본 경찰에 자수한 과정을 "낮술 먹고 소리치다가 경찰에 전화해 '나 병희야. 취했는데 데려가'라고 했다. (일본이) 인력거를 보내자 '안 타. 택시 보내줘'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 내용이 뒤늦게 알려지자 17일 인터넷에서는 "재밌게 표현하려다가 나온 말"이라며 옹호하는 측과 "역사를 왜곡한 것"이라고 비판하는 측의 공방이 이어졌다. '설민석'뿐 아니라 독립운동가인 '손병희'까지도 주요 검색 포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올랐다.
정유헌 민족대표 33인 유족회장은 "인기를 끌려고 자극적으로 표현해 망자(亡者)를 모독했다"고 비판했다. 독립유공자 단체 광복회도 "설씨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공식 서한을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설씨는 '역사 왜곡'이란 비판이 나오자 처음엔 "강의를 뒷받침할 사료가 있다"며 맞섰지만, 논란이 커지자 "유족들께 상처가 될 만한 지나친 표현이 있었다는 꾸지람을 달게 받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그는 "역사에는 다양한 해석과 평가가 존재한다. 여전히 민족대표 33인에 비판적인 입장"이라고 밝혔다. 표현이 지나치긴 했지만, 왜곡은 아니라는 것이다.
설씨 주장에 대해 진보 진영의 국사학계 원로 교수는 "당시 태화관은 공적인 모임 장소로, 33인이 모여 토론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라며 "역사적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주장"이라고 말했다. 김태웅 서울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민족대표 상당수가 기독교 신자였고, 당시에는 지금보다 훨씬 금욕적인 생활에 대한 규율이 강했다"며 "'대낮부터 술판을 벌였다'는 주장은 말도 안 된다"고 했다.
설씨는 과거 한 방송에서 "1876년 강화도조약에 '일본인이 우리나라에서 죄를 지으면 일본 법대로 심판을 받는다'는 치외법권(治外法權)이 포함됐기 때문에 명성황후 시해범을 처벌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김병헌 동국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은 "강화도조약에는 '조선이 지정한 항구에서 범죄를 저질렀을 때'라는 단서 조항이 있다"며 "궁궐에서 벌어진 사건과 강화도조약은 전혀 관계가 없다"고 했다.
스타 강사들의 역사 왜곡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유명 강사 최진기씨는 지난해 6월 한 케이블 방송에서 장승업 화백의 그림이라며 '군마도'와 '파초'를 소개했다. 그러나 두 작품 모두 다른 사람의 작품으로 밝혀졌다.
한 유명 사교육 업체 강사는 6·25전쟁에 대해 "미국이 의도적으로 남한을 방어선에서 제외해 북한의 남침(南侵)을 유도했다"고 했다. 강규형 명지대 교수는 "남침 유도설은 사실과 거리가 멀어 이미 학계에서는 구석기시대 학설로 통한다"며 "1980년대 대학 운동권에서 학습한 편향적인 내용을 그대로 강의하는 스타 강사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김상기 충남대 국사학과 교수는 "스타 강사들이 역사를 대중화하는 데 기여했지만, 영향력이 커진 만큼 책임감을 갖고 역사적 인물의 공과(功過)를 균형 있게 설명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