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선릉로 112의 ○○번지. 이른바 '삼성동 박근혜 전 대통령 자택'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12일 밤 청와대에서 나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에 도착하기 전, 먼저 이곳 골목을 점령한 사람들이 있었다. 기자·경찰·박사모 회원들이다.

박 전 대통령은 12일 밤 집에 들어간 이후 전혀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그럴수록 박 전 대통령을 보려고 진을 친 사람들은 더 애가 탄다.

팀도 그래서 14일 삼성동에 찾아가봤다. 동네는 아이러니하게도 '탄핵 특수(特需)'를 맞은 듯 몹시 붐비고 있었다. 담장 밖으론 박 전 대통령을 향한 태극기 물결이 하루 종일 일렁였다.

주변 건물 옥상, '방송사 특수'

며칠 전부터 SNS에서 떠도는 찌라시.

“방송 기자가 역사적인 순간 그림을 놓치는 게 어떤 의미냐고요? 신문 기자가 종합 1면 톱 기사 10번 물 먹은 거나 다름 없어요. 강남구 삼성동 박 전 대통령 자택 주변 옥상은 이미 지난 대선 과정에서도 몇 번 ‘자리세’를 받았던 적이 있기 때문에 건물주들도 이런 취재 열기에 익숙해요. 건물마다 시세도 비슷한 편이고요.” (한 방송사 관계자)

박근혜 전 대통령 자택 주변 상황.

이날 박 전 대통령 자택 주변 건물 옥상에는 지상파·종편 방송사 취재진이 카메라를 설치하고 '뻗치기'(무작정 기다리는 전통적 취재방식) 취재를 하고 있었다. 높은 곳에서 피사체를 내려다보면서 촬영하는 기법인 '부감(俯瞰)샷'을 찍기 위해서다.

남의 건물 옥상을 빌리는 비용은 하루 백만원대, 며칠 단위로 천만원대를 넘어서기도 한다. 방송기자 얘기를 더 들어봤다. "왜 이렇게 비싼지 이해가 안간다고요? 대선을 예로 들어볼게요. 각 방송사들은 6개월 전부터 유력 대선 후보 자택 주변의 건물주부터 접촉해요. 옥상 빌리려고. 대선은 딱 하루만 빌리는 거라서, 단가가 더 높아요. 기자들의 경쟁 심리를 잘 아는 일부 건물주는 흥정도 합니다. '다른 방송사가 삼백 불렀다'면서 가격을 확 올려버리기도 하고, 한 건물 옥상을 두 세개 언론사가 '짬짜미'로 함께 쓰기도 하고…. 생중계 그림을 완전히 망쳤을 경우, 담당자를 문책하는 인사 조치가 벌어지기도 해요. 그만큼 중요한 사안이라 저마다 치열한 '옥상 확보' 전쟁을 치르죠."

지금 상황은 '대통령 선거'마냥 하루 찍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 기자들의 고민이라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의 '자택 은거'가 얼마나 길게 이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옥상 취재는 당분간 하염없이 계속될 전망이다.

대통령을 응원하기 위해 나왔다는 시민들 몇몇은 옥상을 가리키며 "저 카메라 좀 어떻게 치울 수 없느냐" "방송사가 무슨 권리로 대통령 집을 비추고 있느냐"며 분노하고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자택 주변 위성사진.


주변 커피숍·음식점, '태극기 살롱'
주변 커피숍에 들어가보니 박사모 회원으로 꽉 차 있었다. 저마다 스마트폰으로 여러 '카톡방'에 뜨는 박 전 대통령 관련 뉴스를 읽으며, 활발하게 정치 논평을 하고 있었다. 이 일대 음식점과 카페가 '박사모 살롱'으로 변신한 것.

박근혜 전 대통령 자택 주변 커피숍에서 14일 오후 박사모 회원들이 정치토론을 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 자택 바로 맞은 편 1층 J칼국수집(33㎡)은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오후 3시쯤에도 다섯개 테이블이 만석이었다. 손님들은 모두 태극기를 들고 있었다. 가게 종업원 A씨는 "손님이 너무 많아져서 건물 화장실에 가는 것도 불편하다"며 "음식을 시키지도 않으면서 들어오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입구에 앉아있던 중년 남녀는 "뉴스가 모두 조작됐다" "나도 처음엔 대통령을 욕했지만, 모든게 왜곡 보도 때문이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옆 테이블에선 5000원짜리 고기만두 한 접시를 시켜놓고 다섯명이 토론 중이었다. A씨는 "저쪽 테이블도 지금 두 시간째 안 가고 있다"고 했다.

근처 치킨집에선 "오토바이가 오가질 못해서 지금 배달 주문을 못 받고 있다"고 했고, 중국음식점에선 "네명이 자장면 한 그릇 시켜서 몇시간째 앉아있는데 좋겠느냐"고 했다. 그럼에도 음식점과 편의점·커피숍은 매상이 평소보다 20~30% 오른 가게가 많았다. 삼성동 주민이라고 밝힌 50대 남성은 "탄핵 반대 열기에 힘을 보태기위해 며칠 전부터 박 전 대통령 자택 주변 음식점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며 "오늘도 이곳 근처 돈가스집에서 식사를 했다"고 말했다.

삼릉초등학교 학생들, "무서워요"
박 전 대통령 집 담벼락은 마치 인기 아이돌의 집 주변처럼 팬레터와 장미꽃으로 장식됐지만, 자택과 맞붙어있는 삼릉초등학교 어린이들은 이런 분위기가 오히려 "무섭다"고 했다.
이날 오후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고 있던 삼릉초 5학년 어린이 여섯명은 자신이 들었다는 각종 '괴담'을 잔뜩 들려줬다. "어떤 할아버지가 편의점으로 제 친구 ○○이를 납치해서 태극기 뱃지를 달고 다니라고 했대요.", "엄마가 그러는데 이 동네에서 시위하다가 벌써 세 명이나 죽었대요." 어린이들은 이런 특별한 상황이 낯설고 무섭다고 했다. "친구가 중국집 하는데요, 부모님이 장사 잘 된다고 좋아하시는 것 빼면 우리는 다 무서워하고 있어요."

박근혜 전 대통령 자택 담벼락에 붙은 손 편지.

서울 삼릉초등학교는 최근 가정통신문에서 “정문으로만 통행, 하교 후 부모님과 연락 유지, 하교 후 운동장에서 놀지 않기, 방과 후 또는 휴일에 후문 근처 돌아다니지 않기, 낯선 사람을 따라가거나 이야기하지 않기” 등 안전수칙을 전달했다. 삼릉초 학부모들은 15일 ‘학교 주변 집회를 금지해 달라’며 학교에 탄원서를 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