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에선 헌법재판소가 대기업의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을 대가성 있는 뇌물보다는 강요에 의한 것으로 판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영수 특별검사가 재단 출연금을 대가성 있는 뇌물로 본 것과 상반되는 것으로 “기업은 피해자"라고 밝힌 검찰의 수사 결과와 맥을 같이 한다는 것이다.
헌재는 10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선고를 인용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 등에 관여한 것은 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기업 경영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헌재의 입장은 검찰의 향후 대기업 수사나, 구속 기속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에서 기업 측에 유리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특검은 비선실세 최순실씨에 대해 박 대통령과 공모해 경영권 승계 지원 대가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부터 433억2800만원 규모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로 기소했다. 특검은 삼성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낸 출연금 204억원도 뇌물 혐의에 포함했다.
반면 검찰은 지난해 11월 최씨를 구속 기소하며 비자발적으로 설립된 미르·K스포츠재단에 재계의 출연을 강제한 혐의(직권남용, 강요)를 적용했다. 그러면서 “기업은 피해자"라는 입장을 밝혔다.
검사장 출신 한 변호사는 “헌재는 헌법수호 여부를 판단하지만, 기업의 재산권 침해라는 설명은 특검보다 검찰의 시각과 비슷하다고 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 헌재 “현대차, KT, 포스코, 롯데의 최순실 지원 모두 대통령 지시”
헌재는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 뿐 아니라 현대자동차그룹, KT, 포스코, 롯데 등의 최씨 관련 회사 지원 배경에 대통령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또 “미르·K스포츠 재단 운영에 대기업들이 관여하지 않은 점과 두 재단과 최씨 자신이 운영하는 광고 회사의 용역계약을 체결한 것은 최씨의 사익추구에 해당한다”고 했다. 헌재는 최씨가 미르 재단 설립 과정에서 광고회사인 플레이그라운드를, K스포츠 재단 설립 과정에서 더블루케이를 설립해 미르 재단과 용역계약을 체결했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미르·K스포츠 재단 외 현대자동차그룹과 KT 등 대기업들이 최씨의 광고 회사에 용역계약을 체결한 것도 최씨의 요청을 받아 박 대통령이 지시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하지만 삼성이 최씨 측을 지원한 것에 대한 판단은 빠졌다.
헌재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박 대통령 지시로 현대차그룹에 플레이그라운드 소개자료를 전달했고, 현대와 기아차는 신생 광고회사인 플레이그라운드에 9억여원에 달하는 광고를 발주했다”고 밝혔다. 헌재는 이어 “최씨의 요청에 따라 박 대통령이 안 전 수석을 통해 KT에 특정인 2명을 채용하게 한 뒤 광고 관련 업무를 담당하도록 요구해 플레이그라운드가 68억여원의 광고를 수주할 수 있었다”고 했다.
헌재는 포스코의 스포츠팀 창단과 롯데의 5대 거점 체육인재 육성 사업 관련 하남시 체육시설 건립도 박 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것으로 봤다.
헌재는 “박 대통령은 안 전 수석을 통해 그랜드코리아레저와 포스코가 스포츠팀을 창단하도록 하고 더블루케이가 스포츠팀의 소속 선수 에이전트나 운영을 맡기도록 했다”고 했다. 헌재는 또 “박 대통령이 롯데그룹 회장을 독대한 자리에서 5대 거점 체육인재 육성 사업과 관련해 하남시에 체육시설을 건립하려고 하니 자금을 지원해 달라고 요구했고, (그로인해) 롯데는 K스포츠에 70억원을 송금했다”고 했다.
◆ “검찰 특수본, 특검 수사 안따라갈 명분 생겨”
법조계에선 특검이 검찰과 다른 의견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을 기소해 검찰이 곤혹스러웠는데, 헌재의 판단으로 기존 주장을 고수할 명분이 생겼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지난달 28일 특검의 수사가 끝나고 검찰은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를 재가동했다. 하지만 검찰은 특검이 뇌물로 판단한 대기업의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특검으로부터 자료를 건네받아 검토 중”이라며 “대기업이 두 재단을 지원한 것이 강요 혐의라고 판단한 검찰의 중간수사발표 내용에 대한 입장은 자료 검토와 수사 경과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했다.
특검과 검찰의 다른 시각은 최씨에 대한 재판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법원은 검찰이 강요 혐의로 기소한 것과 특검이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한 사건을 병합하지 않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세윤)는 당분간 검찰과 특검이 각각 기소한 두 사건의 절차를 따로 진행하기로 했다.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헌재가 형사적인 판단을 한 것은 아니어서 형사재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진 않지만 기업에 유리한 입장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검찰이 기존 입장을 고수하는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