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초까지 한·중·일의 임진왜란 관련 주요 문헌들이 일본에 집결됐습니다. 임진왜란에 대한 일본 측의 기억과 담론이 바로 이때 형성됐던 것이죠. 이 '전쟁 문헌'은 일본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요즘 가장 바쁜 소장파 인문학자라고 할 수 있는 김시덕(42)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교수가 새 연구서 '전쟁의 문헌학'(열린책들)을 냈다. '일본 고전 문학 학술상'을 수상해 학계를 놀라게 했던 '이국 정벌 전기의 세계'(2010) 후속작으로 15~20세기 동중국해 연안 지역의 국제 전쟁과 문헌의 형성·유통을 추적한 책이다.

김시덕 교수는“전쟁 문헌 연구는 전쟁 예찬이 아니라 평화 유지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기서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서 가장 널리 읽힌 한국 역사서가 조선의 '동국통감'이었음을 밝힌다. "전쟁 때 '동국통감' 판목이 일본으로 약탈돼 갔고, 에도 일본의 한국사 교과서 격인 '신간동국통감'의 저본이 됩니다." 조선과 임진왜란에 대한 일본의 관심은 유성룡의 '징비록'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임진왜란을 소설화한 숱한 작품이 유행했던 것에서도 드러난다. 소설은 임진왜란이 조선의 항복을 받아낸 일본의 승리인 것처럼 꾸며내고 침략의 정당성을 강변하기도 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일본인 입장에선 '과거에 우리가 섬을 벗어나 뭍으로 건너가서 무공을 떨치기도 했다'는 정치적 판타지이기도 했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다. "과거의 전쟁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앞으로 일어나리라고 예상되는 전쟁에 대한 경계와 준비, 즉 무비(武備)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측 문헌이 일본으로 흘러들어 가기만 했을까. 김 교수는 통설과 달리 "일본 문헌도 조선으로 유입돼 주요 지식인에게 영향을 줬다"고 말한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이르면 한·중·일의 종합적인 정보를 담은 '이칭일본전(異稱日本傳)'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圖會)' 같은 일본 책들이 조선에 수입되고, 이익·한치윤·이덕무 등의 학자들이 저서에서 그 책들을 인용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병자호란 이후 조선 후기 200년은 평화가 지속된 매우 이례적인 시기였는데, 그 시기가 현대 한국인의 기억에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그 때문에'평화가 일상적인 상황이고 전쟁이 특수한 상황'으로 여기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 전체로 보면 그 반대로 전쟁이 일상적인 상황이고 평화는 전쟁과 전쟁 사이의 휴지기였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전쟁과 군사(軍史)를 학문의 비주류로 취급해선 곤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얘기다.